#습관
너무 행복해서 불안해~!
어릴 적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를 종종 듣곤 했는데 행복하지만 이 행복이 영원할 것 같지 않아 불안하다는 것이 이해가 될 듯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며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는데 행복해서 불안하다기보다는 '행복한 상황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다가올 미래를 지레 걱정하며 현재를 살지 못하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 대사였구나'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불안의 자리매김은 무언가를 하지 않고 있을 경우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준비가 부족할 것이라는 불분명한 인과관계를 정답이라 여기게 되며 시작된 것 같다. 이런 잘못된 믿음하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혹은 강박적으로 찾게 되고 지속적으로 행하면 마음의 습관 혹은 행동의 습관으로 굳어지게 된다. 즉 불안함을 달래기 위한 심리적 안전장치가 습관이며 그 기저는 불안이었다.
불안을 잊기 위해 무엇인가에 몰두한다는 것은 근본 원인을 제거하지 못한 대증적 요법에 지나지 않으며 스트레스 상황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불안이 분노와 공격성을 지나 무감정과 우울의 단계에 도달해 버리면 무엇이 불안을 유발한 것인지 잊어버린 채 불안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악순환에 빠져버리게 된다.
입사 이후 대단한 것을 성취한 마냥,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자아도취적 시기를 지나, 정답이 없는 사회생활의 맨 얼굴을 인지하기 시작할 무렵 나에겐 불안이 싹트기 시작했다. 때는 입사 3년 차를 지나던 시기였는데 당시 엔지니어와 R&D 직군은 구조조정의 1순위라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뉴스에 오르내렸고 24시간 365일 돌아가는 시스템을 운용하는 업무는 나의 적성과 너무 맞지 않았다. 밤낮이 뒤바뀌는 스케줄표로 컨디션은 늘 좋지 않았고 숫자 하나 콤마 하나 잘못 입력할 경우 큰 장애로 이어질 수 있는 압박감과 끊임없이 변해가는 IT기술을 익혀야 하는 부담감은 서서히 나의 성격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변화시켰으며 그 기저는 불안이었던 것 같다.
이대로 살 순 없다는 결심과 함께 무언가에 몰입하는 경험을 통해 현실을 잊어보고 싶었고 고민 끝에 장기간 집중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기로 했다. 오래전부터 공학지식에 재무지식을 더하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여러 핑계로 선뜻 도전하기 어려웠던 자격증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진 않았지만 단계별로 1년에 한 번 치러지는 3단계의 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관련분야에서 4년의 실무경험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최소 3~4년 동안은 몰입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었다.
공부 시작 후 결혼과 육아 그리고 여러 번의 부서이동을 거치는 등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자격을 취득했는데 긴 여정을 끝낸 후의 감회는, 자신의 내면을 깊이 이해하지 않은 회피적 대응은 불안에 대한 본질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격증만 얻으면, 원하는 부서에서 누구나 하고 싶어 하는 업무만 할 수 있다면 삶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던 생각은 결국 있지도 않은 신기루를 쫓은 것이구나라는 성찰로 이어졌다.
불안은 사리지는 것이 아니라 늘 곁에 있는 존재하는 감정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지나치게 의식하지도 무시하지도 않아야 한다.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포용하고 긍정할수록 불안을 포함한 모든 감정이 조화롭고 자연스러운 내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습관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 행동해도 불안하지 않은 사람. 상황을 받아들이고 내 판단과 행동에 의해 어떤 상황이라도 대처가 가능하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 그에 따른 결과가 내 의지로는 안될 수 있다는 포용력까지 갖춘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