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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우주 Oct 19. 2022

퇴근을 했다, 요가원에 갔다

지난 7년 간의 이야기

나는 잘 참는 편이다. 무던하게. 상황이 바뀔 가능성이 없다면 관계에서나 일에서나 보통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나에게 꼭 좋은 일이 생기지도 않으며, 타인은 나와 다르다. 크게 기대하지도 완전히 믿지도 않기에 그냥 ‘그렇구나’ 생각한다. 그런데 내 '몸'에 대해서는 그렇게 무던하게 참을 수가 없었다. 2013년 8월의 일이었다.


오랜만에 맞는 주말 휴일, 느지막히 침대에서 눈을 떴는데 오른쪽 다리가 나무 토막처럼 뻣뻣했다. 왜 이러지? 혹시 잠을 잘못 잤나 싶어서 주물주물 마사지를 해봤는데 소용이 없었다. 허벅지 뒷면부터 다리 전체적으로 은은하게 쥐가 난 것 같은 느낌이 계속 이어졌다.

 

손가락에 작은 가시 하나가 박혀도 온 신경이 거기에 집중되는데, 몸의 엄청 큰 덩어리의 감각이 이상하니 도무지 다른 걸 할 수가 없었다. 마치 사랑니 뽑을 때 맞았던 신경 마취 주사를 허벅지에 놓은 것 같았다. 물론 신경이 마비된 건 아니라 피부를 누르면 느낌도 있고, 절뚝이면서 천천히 움직일 수는 있었지만 뭔가 묵직한 불쾌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어제 뭔가 잘못 먹었나? 곰곰이 떠올려봐도 특별한 건 없었다. 단지 몸이 좀 피곤했을 뿐. 대학교를 졸업하고 9 to 6 삶을 시작한지 얼마 안된 새내기 노동자의 삶 2개월 차. 오랜만에 맞는 휴일에는 좀 편하게 쉬고 싶었건만. 아.... 근데 이게 얼마 만에 맞는 휴일이더라? 허벅지가 비상 신호를 보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새로 입사했던 홍보 에이전시의 사람들은 좀 특이했다. 정시 출퇴근은 잘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느지막히 와서 더 느지막히 퇴근하는 사람들에게 주말 출근은 밥 먹듯 자연스러웠다. 막내였던 나뿐만 아니라 팀장부터 팀원 모두가 주말을 포함해서 한 달 동안 2일 밖에 쉬지 않았다. 내가 했던 일은 주로 다른 사람들이 회의를 마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었지만 10~11시 사이에 출근해서 시계 바늘이 비슷한 시간을 가리킬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은 책상 앞에 비스듬히 앉은 채였다.

 

가만히 두 다리를 의자 아래 내려 놓다가, 한 다리를 다른 무릎 위로 꼬았다가, 한 쪽 발목을 반대쪽 허벅지 위에 올려 놓는다. 등받이에 아래 허리를 기댔다가, 머리를 기댔다가, 등 전체가 축 늘어지도록 몸뚱이를 축 늘어뜨려 놓는다. 양 발을 의자 위로 올리고 다리를 교차시켜 양반 자세를 한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뭔가 영혼이 반쯤 가출한 듯한 상태가 된다. 바로 이렇게.

Bad Sitting Posture

좀 움직여야겠다, 생각하더라도 정신적으로 모든 에너지를 탈탈 털리고 나면 출퇴근길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는 부디 빈 자리가 생기길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다. 다들 적어도 이렇게 하루 10시간씩 (지하철, 사무실, 식당 등 다양한) 의자에 앉아서 시간을 보낼 텐데, 다른 사람들의 다리는 괜찮은 건가? 평범한 회사원이라면 응당 이런 고통을 안고 사는 건가? 알 수가 없었다.

 

주말이 끝나고 돌아온 월요일 퇴근길에 요가원을 들렀다. 유튜브 선생님이 알려주는 햄스트링 이완 동작을 따라 하면서 이상한 느낌이 줄어드는 걸 보니 꾸준히 운동을 해야 될 때인 것 같았다. 몸을 혹사시키면서 월급을 받고, 다시 그렇게 번 돈으로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건 좀 웃기다고 생각했지만 별 수 없었다. 집과 가까운 곳에서 꾸준히 운동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때 가장 만만해 보이는 건 요가였다.

 

무거운 건 무서워!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집과 가깝고, 무던하고 잔잔한 나의 성품과 그나마 맞을 것 같았다. 학교 다닐 때부터 빨리 달리기, 뜀틀, 턱걸이 뭐 이런 식의 체육 활동에 크게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스포츠는 자신 없었지만 요가는 그나마 전통적인 스포츠의 좁은 범주에만 속하진 않는 것 같았다.

 

‘요가’라는 낱말과 연관되어 떠오르는 이미지; 우아해보이는 여성이 평온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늘이는 포즈를 취하는 것 또는 인도, 카레, 명상, 호흡, 수행 뭐 이런 단어들은 그나마 내 호기심 레이더 안에 있는 것들이었다. 너무 액티브하지 않고 차분하게 꾸준히 반복되는 활동; 책 읽기와  요가에는 뭔가 공통점이 느껴졌다.

 

그렇게 요가를 시작했고 역시 예상했던 것처럼 잔잔하게 회사-요가원-집의 삶이 7년동안 이어졌다. 그 사이 나는 잠깐 인도에 다녀왔고, 몇 번의 요가원을 거쳤으며, 제주도에도 다녀왔다. 겉으로만 보면 큰 비바람 없이 평온한 호수 같은 삶이었다. 완전히 만족스럽진 않지만 대체로 큰 불만 없이, 좋아하는 것들 사이에서 무난히 살아가도록 짜놓은 나의 일상은 계속되었다. 코로나가 닥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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