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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Jul 25. 2019

[단편소설] 그 노인의 노래 (6) 끝.

그 노인의 노래 (6) 끝.


시현은 경찰서로 돌아온 뒤 민원인 대기실에 앉아 밤을 꼬박 새웠다. 상상은 다른 상상을 낳았고, 그 상상은 또 다른 상상을 불러왔다. 모호한 상상들은 저마다 머릿속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더니, 마침내 모자이크처럼 흐릿한 풍경 하나로 완성됐다. 그 풍경을 더듬거리며 노트북에 글로 옮겼다. 동이 트자마자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냐? 선배, 단독 쓰신 간병살인 사건이요. 혹시… 노인이 죽인 게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선배는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그거 현장검증까지 다 끝나고 이제 곧 검찰 송치 아냐? 네, 그렇긴 한데… 아니, 간병살인이란 게 핵심인데 할아버지가 범인이 아닐 수 있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자백에 증거까지 있다며. 차근차근 설명해보고자 다시 입을 뗐다. 그게… 선배의 단호한 말이 시현의 말을 막았다. 이제 핵심은 기획이야. 고령화 사회의 이 우울한 비극, 더 이상 가족 문제가 아닌 국가 문제다. 그런 거 있잖아. 무슨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있어. 선배의 단언을 듣는 순간, 갑자기 무언가 뜨끈한 것이 목을 치고 올라왔다. 선배는 이미 노인의 사정엔 관심이 없었다. 유치장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을 노인의 모습이 환영처럼 떠올랐다. 부연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아침부터 죄송합니다. 선배는 대답 없이 전화를 끊었다.


수사지원팀 내 면회실을 다시 찾았다. 면회를 신청해 노인과 마주 앉았다. 노인의 얼굴은 이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눈에 힘이 빠져 있었다. 기자들이 한참 씨름하던 기사를 마감한 직후 짓는 표정과 비슷했다. 말없이 앉아있자 노인 뒤편 의자에 앉아있던 경찰이 기지개를 켜며 물었다. 친척분, 할 말씀 없으십니까? 시현은 경찰을 보며 대답했다. 할 거예요. 전할 말 정리 중입니다. 경찰은 불량 청소년이라도 본 선생처럼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젓더니 눈을 감았다. 잠시 뒤 엷게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시현은 고개를 숙인 채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할아버지, 저 기억하시죠? A일보 기자. 오늘은 뭘 물어보러 온 게 아니에요. 그냥 할아버지한테 말하고 싶은 저만의 상상이 있어서요. 복날… 그날은 무더운 복날이었어요. 아마 요리를 좋아하는 할머니는 복날을 맞아 삼계탕을 준비하고 싶었겠죠. 할아버지도 말리지 않았어요. 할머니는 낮엔 멀쩡했으니까. 할머니는 앞치마를 입은 채 쌀을 불리고 파와 마늘을 씻었어요. 싱크대 오른쪽에 달린 수도꼭지를 열어서요. 그리고 닭... 닭을 찾으셨을 거예요. 할머니 눈에 들어온 건 손주였어요. 치매 증상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어요. 할머니는 손주의 다리를 잡아 도마 위에 올렸어요. 식칼을 꺼내 다리부터 손질하려 했어요. 왜인지 쉽게 되지 않았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어요. 아닌가 싶어 칼을 빼 다른 곳을 여기저기 찔러보고 베어보고. 그렇게 한참 씨름하다 문득 정신이 맑아졌겠죠. 그리고 비명… 애 낳을 때나 나는, 짐승 울음소리 같았다던 비명을 내지르다가 결국엔 오른손에 든 칼로 본인의 왼쪽 손목을 내려쳤어요. 깊은 곳의 동맥이 끊어질 정도로 세게요.


모르겠어요. 그때 할아버지가 곧바로 상황을 확인하신 건지, 혹은 시간이 좀 걸리신 건지… 하지만 할아버지는 결국 그 풍경을 목격했겠죠. 식탁 위에 놓인 결혼 40주년 기념사진을 봤어요. 거기 적힌 문구… 트로트 가수의 노래 가사죠? 꿈을 꾸며 들을까 몰라 나는 항상 당신 편인걸… 힘든 당신은 술이 물이고 내 맘은 물도 술인데… 그 노래 후렴이 그렇잖아요. 사는 내내 잊지 말아요. 나는 항상 당신 편이야. 그 문구가 적힌 액자에서 할아버지 손자국을 봤어요. 피가 묻은 손으로 액자를 들고 바라보며 결심했겠죠. 아내 편이 돼야겠다고. 주민들 말이 할아버지가 한 고집했대요. 시간이 없었어요. 아내 비명을 들은 주민들이 당장이라도 집 문을 두드릴 것 같았어요. 아내의 앞치마를 벗겨 세탁기에 급히 숨기고, 도마를 정신없이 씻고, 싱크대 주변에 튄 피가 마르기 전에 행주로 재빨리 닦았어요. 그리고 평생 쥐어본 적 없는 식칼을 들고 손잡이를 마구 만졌어요. 그러면서 생각했겠죠. 누가 무엇을 물어봐도 이렇게만 대답하겠다고. 내가 죽인 게 맞다, 그만하고 싶었다, 자세한 상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회사엔 보고 안 했어요. 하고 싶지 않았어요. 설령 보고해도 기사는 못 써요. 이건 자백이나 증거에 기반을 둔 이야기가 아니라 전부 제 상상일 뿐이니까. 선배는 제 취재 메모엔 핵심이 없대요. 저는 핵심이 무엇인지 잘 모른대요. 그리고 맞는 말 같아요. 저는 지금도 이 사건의 핵심이 뭔지 모르겠어요. 다만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이 상상을 할아버지께 얘기하지 않으면 왠지 할아버지가 너무 외로울 것 같다는... 그래서요. 그래서 왔어요. 


말을 끝낸 시현은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눈앞의 노인이 아랫입술을 꽉 문 채 어깨를 떨었다. 아내와 헤쳐 온 세파가 얼굴에 새겨놓은 듯한 주름을 따라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노인을 바라봤다. 잠시 뒤 노인은 눈을 꾹 감더니 고개를 하늘로 든 채 더듬거리며 말했다. 지금까지 수없이 반복했을 그 세 마디 문장을. 노인의 말이 끝난 면회실의 정적 사이로 경찰의 코 고는 소리가 한가로이 울려 퍼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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