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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Jul 25. 2019

[단편소설] 그 노인의 사정 (1)

그 노인의 사정 (1) 


박카스를 들고 거리에 서면 세상 남자는 금세 두 종류로 나뉜다. 장사가 될 사람과 되지 않을 사람. 다짜고짜 아무 남자의 어깨를 툭 치거나 막무가내로 팔짱부터 껴대는 건 초짜나 하는 짓이다. 복희(福喜)는 종로3가역 2번 출구 근처 극장 골목에 서서 떨리는 왼팔을 주물렀다. 9년째 이 일을 하다 보니 육감이란 게 생긴다. 단 1초. 저 남자가 성욕을 해결코자 이 거리를 찾았는지 알아보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이후 성패는 판별이 끝난 남자와 눈을 맞추는 데 달렸다. 마침 중절모에 회색 코트를 차려입은 노신사가 지나간다. 웃음 띤 얼굴로 지그시 바라보자 노신사는 꽃에 이끌리는 벌처럼 복희에게 다가온다. 누가 알랴. 저렇게 점잖은 노신사가 실은 불순한 목적으로 이 거리를 찾았다는 걸.

 

남들 다 메는 촌스러운 크로스백은 메지 않는다. 바지나 등산복 재킷도 마찬가지. 어깨가 약간 뻐근해도 꼭 세련된 숄더백을, 뼈마디가 좀 시려도 반드시 치마와 블라우스를 입는다. 영감들과 대화하기 위해 매일 신문도 구해 훑는다. 그 옹골찬 고집이 복희를 ‘양귀비’로 만들었다. 이 거리의 여자들은 이름 대신 별명이나 부산댁, 안성댁 같은 택호(宅號)를 사용했다. 양귀비란 별명은 복희를 거쳐 간 남자들의 대화 속에서 자연스레 피어났다. 성이 양씨라고 밝혔을 뿐인데 다른 여자들에 비해 돈값 톡톡히 한다는 이유로 그런 별명이 붙었다. 별명은 장사에 도움이 됐다. 3만원 부르던 가격을 4만원으로 올려도 남자들은 복희를 찾았다. 그 후 1000원 받고 파는 미끼를 600원짜리 박카스D에서 800원짜리 비타500으로 바꿨다. 한 병당 200원이 손해였지만 종국엔 이득이었다. 무한경쟁의 끝은 승자독식이다. 그 자리를 유지하려면 마땅히 투자를 해야 하는 법이다. 


복희가 거리로 나선 건 아들 때문이다. 9년 전, 24세였던 아들이 교도소에 들어갔다. 제 아비를 계획적으로 살해한 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아들은 식칼로 제 아비를 찔렀다. 법원은 그 행위를 정당방위나 우발적 살인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출소는 내년. 34세의 나이에 빈손으로 사회에 던져질 아들을 위해 돈을 모아야 했다. 아들은 복희를 위해 남편을 죽였기 때문이다. 


당시 54세였던 복희는 낙원동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렸다. 남편은 구제 불능이었다. 결혼 전엔 얌전한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술이 들어가면 전혀 딴판이었다. 잘 다니던 회사도 술자리에서 친 사고로 부지불식간에 잘렸다. 노을이 질 때쯤이면 불콰한 얼굴로 옷가게를 찾아 돈을 내놓으라며 행패 부리는 게 일과였다. 어느 날, 그는 마네킹의 팔을 비틀고 가게 바닥에 침을 뱉었다. 이어 복희를 밀쳐 넘어뜨리더니 왼팔을 마구 짓밟았다. 복희의 왼팔이 영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다. 

그래도 아들에겐 전화하지 말았어야 했다. 복희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자 아들은 집에서 한달음에 달려와 제 아비를 마구 때려 쫓아냈다. 다시 한번만 더 행패 부리면 죽여버리겠다는 폭언과 함께. 이튿날, 술을 잔뜩 먹고는 얼굴에 불이 난 남편은 옷가게를 찾아와 불을 질렀다. 소방차가 도착하고 화재가 진압되는 동안 아들도 달려왔다. 아들은 오는 길에 잡화점에 들러 식칼을 구매했다. 하필이면 카드로 구매해서 빼도 박도 못할 증거가 남았다. 정당방위나 우발적 살인이 아닌 계획적 살인으로 인정된 증거가. 그때부터 아들 생각만 하면 몸속의 무엇인가가 누선(淚腺)을 쥐어짜기라도 하는지 복희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들이 잡혀간 뒤 잿더미가 된 옷가게 앞을 며칠간 맴돌다 거리로 나섰다. 식당 설거지나 학교 청소를 해보려 해도 그놈의 왼팔이 문제였다. 종이상자나 파지를 주우려 알아보니 종일 해도 하루 수입이 2만원에 그쳤다. 멍한 눈으로 종로3가를 걷던 어느 날, 방송에서나 보던 ‘박카스 아줌마’들이 복희의 시야에 들어왔다. 탑골공원과 종묘공원 인근에선 통나무 같은 여자들이 바지에 등산복 재킷 차림으로 남자들에게 연신 박카스를 건넸다. 호가(呼價)를 엿들었다. 50~60대는 3~4만원 선, 70~80대는 1~2만원 선이었다. 집에 홀로 앉아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복희는 아직 50대였고 명색이 전 옷가게 사장이었다. 거리의 저 여자들보다는 매력적으로 보일 자신이 있었다. 여러 날을 뒤척이다 결국 박카스를 사 들고 거리에 섰다. 예상은 적중했다. 복희는 양귀비라 불리며 수월하게 돈을 모아나갔다. 


문제는 그 여자가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초선’. 남자들은 끽해야 4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그녀가 꽤나 어리게 느껴졌는지 그런 낯간지러운 별명을 붙여줬다. 초선은 63세 베테랑인 복희가 일궈놓은 자리를 빠른 속도로 위협해왔다. 그녀는 민들레 씨앗처럼 거리 이곳저곳을 살랑살랑 떠돌다가 복희의 단골 영업장이던 종로3가 극장 골목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복희가 골목에 서서 남자들과 눈을 맞춰도 그들은 그녀를 못 본 척 주변만 계속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마침내 초선을 발견하고는 여포처럼 성큼성큼 걸어갔다. 개중엔 복희의 단골도 꽤 있었다. 배신감에 흘겨보면 남자들은 눈길을 슬슬 피했다. 조바심이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복희의 왼팔은 더욱 욱신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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