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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Sep 03. 2020

나의 난임 병원 졸업기

아이를 만나기까지 힘든 날들이 많았다. 시간은 빨리도 흘러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다시 일을 하는 내 모습을 보면 그 당시의 내가 지금을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싶다. 그때는 삼신할머니가 미웠다. 누구는 뚝딱하고 아기가 생겨서 더는 낳고 싶지 않다고 하는데 나는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래도 임신은 남의 일이었으니 누구라도 미워하고 싶었다.

배가 부른 사람이 횡단보도 앞에 있으면 다른 길로 가고 유모차를 밀고 지나가는 엄마들을 보며 한참을 길 위에 서있던 적도 있었다. 난임 병원을 다니던 날들은 그런 일이 참 많이도 있었다.


난임 병원에 가기 전에 임신을 했었다. 신기하게도 준비하지 않았는데 아기가 찾아와 주었고 배가 불러오나 싶을 때 아기는 떠나갔다. 유산을 하고 수술장을 나와 링거를 맞고 있는데 옆 침대에는 아기를 출산한 엄마가 누워있었다. 그때 봄이 왔는데도 꺼진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리고 시도하다 결국 난임 병원을 가게 되었고 마음의 지옥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씩씩하게 병원을 방문했고 당연히 아기가 찾아와 줄 것이라 믿었다. 그것이 큰 착각이었다는 것은 처음의 인공수정이 실패한 후 그리고 시험관 아기를 시작하며 난자 채취의 쓴맛을 본 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처음 난자 채취를 할 때 내가 다닌 병원은 수면 마취가 아니라 부분마취를 했었는데 아파도 너무 아팠다. 간호사 분의 손을 꽉 잡다가 울음이 터져 호흡이 가빠졌고 진정제까지 맞아가며 난자 채취를 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난자를 채취하면 수정이 잘 될 것인지 또 한 번 마음을 졸여야 한다. 냉동을 할 수 있는 수정란이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에 따라 희비가 갈렸다.

난자 개수를 늘려야 하니 호르몬을 약으로도 먹고 주사도 맞아야 하는데 인위적으로 조절을 하니 몸이 버텨나 질 않았다. 배는 터질 것 같이 차오르고 기분은 좋아졌다 나빠졌다 롤러코스터를 타는데 복수가 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온 음료를 하루에도 몇 통을 마셔가며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모든 것은 다 버틸 수 있었고 잘 견뎌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수정란이 착상되지 않아 간호사분에게 실패했다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무너져 내렸다.

병원 전화번호가 뜨면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두근거리다가  이번에도 실패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 날의 기분은 말로 할 수 없었다. 애써 남편한테는 웃으며 이번에도 아니네 이야기했다가 화장실에서 통곡을 하며 운 일도 많고 하루 종일 어지러운 기분에 걷고 또 걷기만 한 날도 있었다.

아기는 걸음이 느려 늦게 오지만 열심히 오고 있을 것이라 믿고 싶어도 실패가 이어지면 실낱같은 그 믿음은 어느 순간엔가 사라져 버린다. 남편과 여행도 하고 기분전환을 위해 맛집도 찾아다녔지만 불안함을 애써 포장하는 몸부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일 년 여의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여섯 번의 실패 끝에 아이를 낳았다. 항상 피검사 수치가 나오지 않았으니 당연히 병원으로부터의 전화가 기대되지 않았고 처음 듣는 숫자에 머리가 멍해졌다. 다음 시험관을 위해 구청에 들러 벌써 지원금 신청을 끝내고 오는 길에 받은 그 전화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남편과 헤어지고 유학을 떠날까 심각하게 고민하는 날이 많았다. 아이가 없어도 현명하게 지내는 부부도 많지만 나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도망치고 싶었다.


또다시 병원을 다닐 예정이다. 둘째를 시도하러. 이미 한 번 해봤으니 현명하게 이겨낼지 아니면 아는 것이 더 무서운 일이 될 것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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