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면

내 인생의 노래들 ④ 김지연

by 조운

겨울, 내무반, 그리고 시 한 줄

군대의 겨울은 유독 차갑다.
몸을 에는 바람보다 더 서늘한 건, 어쩌면 마음 한켠의 고요함일지도 모른다.
쫄병 시절, 자대배치 받아 내무반에 홀로 남겨져 대기 중이던 어느 겨울날.
온기라고는 무심한 색상의 군용毛布(모포) 한 장뿐이던 그때,
우연히 라디오 사이로 흘러나온 노래 한 곡이 내 귓가에 닿았다.


“찬바람이 불면 내가 떠난 줄 아세요…”

김지연의 목소리는
그 순간 내게 시(詩)의 기억을 데려왔다.


사랑이라는 상상, 그 시절의 내가 쓰던 시

고등학교 시절, 나는
사랑을 ‘해 본’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상상하며’ 시를 쓰던 사람이었다.


대상 없는 연정(戀情),
얼굴 없는 누군가에게 보내던 시의 문장들.
잉크 자국이 번진 공책은,
그 누구보다 간절히 사랑을 꿈꾸던 나의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그 상상이,
그날 라디오 속 그 노래에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군복을 입고 있었지만,
나는 그 순간만큼은
시를 쓰던 소년이었고,
사랑을 꿈꾸던 사람이었다.

“무사히 여기서 나간다면…”

그때 다짐했다.
“이곳을 무사히 벗어난다면,
나는 진짜 사랑을 해보리라.”


찬바람이 불면 떠오르는
그 노래 한 줄,
그 날의 내무반 풍경,
그리고 그 약속.

이제 나는 그 시절을 지나
군화도 벗었고,
사랑도 몇 번 해봤지만,
그때의 다짐만은
늘 첫 마음처럼 내 안에 남아있다.


그리고 오늘, 무더운 여름날
찬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하는

그 오후를 기다리며
김지연의 목소리 속에서
또 한 번 그 시절의 나를 만나본다.



� 노래 정보

제목: 찬바람이 불면

아티스트: 김지연 (1990년 발표)


찬바람이 불면
내가 떠난 줄 아세요
스쳐가는 바람 뒤로
그리움만 남긴 채

낙엽이 지면
내가 떠난 줄 아세요
떨어지는 낙엽 위에
추억만이 남아 있겠죠

한때는 내 어린 마음
흔들어주던
그대의 따뜻한 눈빛이
그렇게도 차가웁게
변해버린 건
계절이 바뀌는 탓일까요

찬바람이 불면
그대 그리워지겠죠
그렇지만 이젠 다시
나를 생각하지 말아요

한때는 내 어린 마음
흔들어주던
그대의 따뜻한 눈빛이
그렇게도 차가웁게
변해버린 건
계절이 바뀌는 탓일까요

찬바람이 불면
그대 외로워지겠죠
그렇지만 이젠 다시
나를 생각하지 말아요
그렇지만 이젠 다시
나를 생각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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