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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수 Jan 29. 2023

일본 여행 3일 차(1)_다카야마, 안녕히

이방인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 준 고즈넉한 고장과의 작별

일어나 어제 산 컵라면과 우유로 나름 풍족한 아침을 먹었다. 밖으로 나오니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밤사이 눈이 왔나 보다. 생활에는 불편이 따를 줄 알지만 잠시 일상의 굴레를 벗어던진 이방인에겐 색다른 설경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다카야마의 대표적인 명소 중 하나인 히다 코쿠분지(국분사)에 들렀다. 1,200년을 넘게 산 은행나무 그리고 오래된 삼층탑과 대웅전이 고찰의 경내를 아름답게 채웠다. 절 곳곳에 쌓여 아직 밟히거나 녹지 않은 눈이 우매한 중생에게 순수와 고요를 자비롭게 베푼다.

이미 몇 번 걸은 길이어도 때에 따라 다르다. 심지어 이전에 없던 눈까지 내려 높은 산, 다카야마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여러 번 경험할 수 있었다. 

마침내 영업이 시작된 미야가와 아침시장도 볼 수 있었다. 주로 먹거리가 많았다. 가볍게 둘러보다 상인 중 한 분이 버섯 우린 물을 주셔 시식했는데 입맛이 확 도는 동시에 목 넘김이 후끈했다.

후루이 마치나미를 비롯해 새하얀 다카야마의 아침은 참 곱고 잠잠했다. 눈이 덧칠되어 더 빛났던 오래된 골목과 그곳에서 다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 깊은 인상으로 내 마음속에 남았다.

도시와의 작별을 앞두고 아쉬움을 달래며 괜히 더 걷다가 노점에서 당고를 하나 먹어 봤다. 간장 맛이 나는 떡 구이였다.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의 시구처럼 가야 할 때를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기에 텅 빈 꼬치를 꼭 쥐고 발걸음을 숙소로 돌렸다.

다카야마노히 버스센터에서 10시 버스를 타고 나고야로 출발했다. 설경을 두고 떠나는 게 아쉬웠지만 그 이상으로 이미 좋았다. 나중에 들으니 내가 떠난 다음 날은 폭설로 고속도로가 오후까지 통제됐다고 한다.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이다. 하늘이 도와 운이 좋았다. 운수와 별개로 가급적 감사를 택하고 행복에 이르고 싶다.

그림같이 하얗게 물든 설산과 여러 마을을 지나고 휴게소에 들렀다. 제설로 많은 분들이 고생하고 계셨다. 왜 나는 아직도 이미 10년도 더 지난 군 복무 시절 고성에서 겪은 100년 만의 폭설을 순간적으로 떠올리는 걸까...*

절경과 간식을 즐기며 나고야에 가까워지니 거짓말처럼 눈이 하나도 없었다. 뭔가 겨울에서 가을로 계절을 역행한 느낌이다. 다만 우연히 찾은 기후 현 히다 지방의 고즈넉함과 그 고장을 닮은 사람들이 베푼 호의가 방랑하는 이방인의 추운 마음을 날씨와 거리를 뛰어넘어 포근하게 감쌌다. 상대적으로 차가울 도시에 닿기 전에 그 온기를 가만히 간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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