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22.01.03
호수 근처에서 사는 호사를 누린지 어느덧 2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예로부터 많은 예술가들은 작품 속에 호수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곤 했다. 멀리 가지 않아도 김동명 시인의 '내 마음은 호수요'라는 시구나 정지용 시인의 '보고픈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라는 시구가 반갑게 떠오른다. 지금 우리 곁에도 많은 호수가 있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치수를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우리 동네의 백운호수도 1953년에 농업용으로 조성되었던 곳이 지금은 많은 이의 터전이 되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졌지만 북적이는 삶을 70년 가깝게 견디며 이제는 짙은 자연성을 띠고 있다.
일상의 무더위를 삭이려 인적이 드문 한밤의 호수를 걷곤 한다. 신기하게도 호수는 매일 다른 표정을 짓는다. 거의 같은 얼굴을 하고 찾는 나와는 다르게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시도 같지 않다. 항상 그 자리에 있어준 호수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나는 우정이라고 믿었다. 어쩌면 호수에 비치는 게 내 마음인 줄 도 모르고 적절한 언어를 찾다 돌아서곤 했다.
새해를 맞아 이런저런 고민과 다짐을 안고 호숫가를 걸었다. 나이가 개별적인 삶이 어떤 시기인지 가리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진 않지만 보편적인 흐름을 가늠하는 지표는 되어준다. 나이에 'ㅅ ' 받침이 들어가면 중반이라는 속설에 따르면 나는 올해 삼십 대 중반이 되었다. 십 대나 지금이나 스스로 크게 다른 거 같진 않다가도 거울 속 내 얼굴이 낯설게 느껴지곤 한다. 막연히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 속에 소중한 사람들과의 동행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했다. 조금은 복잡해진 마음으로 바라본 호수는 아직 쓰지 않은 백지처럼 하얬다. 적당히 서늘하게 부는 바람만이 헛헛한 손을 살짝 감싸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