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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수 Oct 01. 2024

달빛을 살피고, 호수의 목소리를 들으며

#3 2022.01.17

산책은 홀로 하든 같이하든 모두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혼자 걷는 걸 선호한다. 영국의 대문호 C.S. 루이스 또한 일찍이 '산책과 대화는 각기 아주 즐거운 일이지만 둘을 섞는 것은 잘못이다. 야외 세계의 소리와 정적을 말소리가 삼켜버리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호수의 호젓함을 만끽하기 위해 주로 외따로이 걷지만 가끔 어머니와 함께한다. 그럴 때면 모자는 각자의 하루를 잔잔하게 나누고 호수는 묵묵한 경청으로 동행한다. 소소한 대화가 일상의 가치를 일깨워 줄 때면 지금의 평범한 행복이야말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것임을 깨닫는다.  

어느덧 깊어진 겨울만큼 호수와 툇마루 산책길에 눈이 조금 쌓였다. 보기엔 예뻤지만 평소보다 걷기 힘들었다. 눈 입장에선 억울할지 모르지만 강원도에서 군 복무를 하던 시절 배운 '예쁜 쓰레기'라는 별칭이 떠오른다. 보통 때와는 다른 피로도에 조금 더 예민해져 뽀드득거리는 소리도 거슬렸다. 힘들다고 느낄 즈음 문득 올려다 본 하늘엔 둥근달이 웃는 낯으로 환하게 떠있었다. 그 순간 아름다운 달빛을 살피는 일이 힘이 됐다. 양력으로 새해 첫 보름달이다. 미국에선 이 달을 울프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예전에 1월이면 배고픈 늑대들이 마을 근처에서 많이 울었고, 그 모습이 마치 달을 향하는 것처럼 보여 지은 이름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늑대는커녕 여우마저 씨가 말라버린 21세기의 한반도에서 들을 수 없는 소리건만 오늘만큼은 같은 달을 바라본다. 뒤늦게 잠잠해진 마음으로 걷다 보니 이제야 귀가 열린다. 얼어붙은 호수는 호숫가를 걷는 이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마치 심해의 고래 같기도 하고 우주의 심해 같기도 하다.

202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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