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관리사님이 집에 왔다.
떨어진 출산율을 올리겠다며 정부며 각 지자체에서 출산 지원 정책을 내놓았다. 운이 좋게도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서 산후조리경비 100만 원을 바우처로 추가지원하고 있어 둘째 출산 후 산후관리 서비스를 이용해 보게 되었다. 모르는 사람과 한 공간에서 긴 시간을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첫째도 돌보려 조리원을 일주일만 예약했고, 특히나 둘째 출산 후 엉망이 된 몸을 추스르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4주간 예약을 해두었다.
휴게시간 1시간을 포함해 평일 9시부터 저녁 6시까지가 서비스 시간이고, 산모/신생아의 식사와 위생관리, 주 생활공간 청소, 세탁, 응급상황 발견 및 대응, 상담 및 말벗 등이 표준서비스 내용에 포함되어 있었다.
나긋나긋한 경상도 말투를 쓰는 관리사님은 오시자마자 아기의 몸무게, 수유량, 아기용품 및 조리도구 위치, 점심식사 메뉴와 시간 등을 물으시고는 "산모님은 이제 좀 주무세요" 하고 나를 안방으로 들여보냈다. 낯선 사람이 우리 집 거실에 아기와 단 둘이 있는데 불안하기는커녕 밤새 잠 못 잔 좀비 상태의 나를 구원하려고 온 구세주 같기만 했다. 침대에 머리를 대자마자 기절한 듯 잠에 빠져들었고 눈을 떠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2시간이 훌쩍 넘어 있었다. 세수를 하고 대충 머리를 묶고 거실로 나갔다.
"일어나셨어요? 식사하세요"
식탁에는 갓 지은 쌀밥이 한 그릇 가득, 미역국도 넘칠 만큼 한가득, 계란말이와 반찬들이 정갈하게 담겨있다. 처음 보는 누군가가 우리 집에서 내게 점심을 차려주고 있다니 낯선 기분이 들었다.
"관리사님도 같이 드세요"
"저는 산모님 식사하시고 먹을게요. 아기가 울 수도 있어서.. 먼저 드시고 저 식사하는 30분 동안만 애기 봐주세요"
그렇구나. 함께 식사를 하다가 아기가 울면 둘 중 한 명은 아기를 돌보러 달려가야 할 것이다. 마치 2교대로 일하는 것처럼 번갈아 식사시간을 가진 것을 시작으로 산후 관리사님과 함께하는 기간은 굉장히 새롭고 낯선 생활의 연속이었다.
식사시간 외에는 대부분 관리사님이 아기를 돌봤다. 산모의 건강회복이 자신의 가장 큰 목표인 것처럼 내가 아기를 오래 돌보거나 안는 상황이 없도록 했다. 수유가 끝나면 바로 아기를 넘겨받아 트림을 시키고 재우고, 내가 잠깐 아기를 돌보던 시간에도 아기가 울거나 대변을 보면 씻기고 달래는 힘든 일은 관리사님의 몫이었다. 아기가 잠든 시간에는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며 청소기, 걸레질, 빨래, 설거지 등의 남은 집안일을 하셨다. 간식을 먹을 때엔 혼자 먹는 것이 미안한 마음이 들어 커피를 같이 내려드리고, 빵도 권했지만 관리사님은 나와 달리 지금 간식을 먹으며 쉬었다가는 아기를 돌보며 다른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듯했다.
시간이 지나자 나도 당연하게 먼저 앉아 식사를 하고, 일하고 계시면 혼자 커피를 내려 먹거나 빵을 꺼내 먹기도 했다. 내가 아기를 안고 있거나 커피를 한잔 하며 쉬고 있을 때 관리사 님이 바삐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부잣집 사모님들이 일하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 이런 걸까. '사람을 부리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맴돌았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의도치 않게 가까이에서 관리사님을 지켜보게 되니 산후관리사라는 특수한 직업군에 대한 호기심이 들었다. 이제 막 세상에 처음 나온 연약하고 작은 신생아, 일생에 한두 번 겪을까 말까 한 출산을 겪은 산모를 돌보는 직업. 거의 대부분의 아기가 예정일에 나오지 않고, 산모의 몸 상태에 따라 조리원 기간이 변경되기에 관리사님의 일정도 덩달아 수차례 밀리고 당겨지는 것이 일상이었다.
또 누군가가 생활하는 집이라는 공간에 들어가 하루 8시간을 일하니 항상 보는 눈이 있고, 잠깐씩 쉬는 것도 편치 않을 터였다. 실제로도 관리사님이 아기를 재우며 깜빡 잠이 드셨다가 내가 안방에서 자다 나오면 깜짝 놀라 후다닥 일어나셨다.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지만)
아기를 정말로 좋아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라 마음이 아픈 직업이기도 했다.
3달이나 빨리 태어나는 바람에 2kg도 채 못 채우고 나온 한 아기는 병원에서도 몇 달을 입원하고서야 집에 올 수 있었다. 이미 몇 달간 마음고생을 한 아기엄마는 예민함이 극에 이르렀는데 아기는 하루 세 번씩 먹어야 하는 약을 자꾸만 토해내 엄마가 더 지치고 피폐해져 갔다고. 관리사님이 일하는 몇 달 동안 한 번도 아기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지 못했었는데 헤어지던 마지막날 그동안 감사하고 죄송했다고 사과하며 엉엉 울어 두 사람이 손을 붙잡고 함께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정해진 시간에 먹이고 재우는 수면교육을 하는 엄마를 만났을 때에는 수유량을 맞추기 위해 배고프지 않은 아기에게 수유를 하고, 졸린 아기를 깨우며 마음이 많이 아프셨다고 한다. 아기가 먹고 싶을 때 먹지 못하고 자고 싶을 때 자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기가 원하는 대로 하나도 해주지 못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드셨다고.
마지막으로, 둘째로 태어난 어느 아기를 돌볼 때에는 주말이 끝나고 월요일에 출근했더니 온 가족이 첫째와 놀고 있고 혼자 덩그러니 앉아서 가족들을 보고 있는 둘째의 모습에 눈물이 나는 걸 겨우 참았는데, 관리사님을 발견하고 반갑게 웃는 모습에 '주말 내내 저런 모습이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결국 눈물을 쏟고 마셨다고 한다.
이렇게 정을 붙인 아가들도 짧으면 2주, 길면 3달 후에는 이별이다.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금방 이별하는, 익숙해진 공간에서 또다시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해 적응해야 하는 직업. 누군가의 둥지로 들어가 보살펴주고 돌봐주는 감정노동이 꽤나 필요한 일. 한 가정의 삶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신기한 자리.
4주로 끝내려던 산후관리 서비스는 한 달의 연장, 또다시 추가 한 달을 연장했다.
첫째 아이가 유치원에서 옮겨온 기침을 시작으로 둘째, 남편, 나까지 모두 차례로 감기가 옮았다. 기침은 콧물이 되고, 중이염, 가래, 다시 기침감기로 증상을 바꿔가며 한 달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소아과 진료를 가고, 첫째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일정은 내 몸이 둘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밤에 아이의 열 보초를 서느라 못 잔 잠을 관리사님이 오면 쓰러져 잤다.
관리사님이 계셨기에 건강 검진도 다녀오고 첫째의 유치원 공연에도 참석할 수 있었고, 이사할 집을 보러 제주까지 두번이나 다녀올수 있었다. 첫째의 유치원 겨울방학도 미안하지 않게 함께 여기저기 다니며 보낼 수 있었다.
아기의 100일을 앞두고 정말 관리사님과 이별이다. 나보다 더 책임감 있게 내 아기를 돌보고, 마음을 써주는 누군가를 또 만날 일이 있을까.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어쩌면 가장 힘들고 외로웠을 시기를 덕분에 행복하고 안정적으로 넘어왔다. 가장 걱정했던 우리 개들도 참 예뻐해주셨다.
'아기 하나를 키우는데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힘을 발하지 못하는 요즘 시대.
'아기 하나를 키우려면 산후 관리사님이 필요하다'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