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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곡자매 Feb 23. 2024

둘째 출산 후 100일간의 기록(1)

누가. 출산을. 아름답다고. 했던가.

※ 주의

출산 후 통증 및 회복에 대한 (생생한)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둘째 임신 기간 내내 매일매일 바랐다. 제발 이번 출산 때는 조금의 진통만 겪고 낳게 해 주세요.

1톤 트럭이 바퀴로 배를 밟고 끊임없이 앞뒤로 왔다 갔다 하는 것만 같았던 고통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다섯 달 먼저 둘째를 낳은 친구가 서울OO에 위치한 모산부인과의 P선생님을 추천하며 자신의 은인이라고 표현했다. 첫째를 낳을 때 급속 분만으로 출혈이 많았을 뿐 아니라 그 후유증으로 항문 쪽 근육에 문제가 생겨 요실금도 아닌 변실금이 생겼고, 찾아가는 병원마다 수술이 어렵다고 했단다. 이 이야기를 P선생님께 했더니 이 근육은 출산 때에만 수술이 가능한데 마침 잘 왔다며, 진통 하나 없이 분만한 것은 물론 변실금을 싹 고쳐주었다고. 친구 이야기를 듣고 번쩍 눈이 뜨여 바로 P선생님의 진료예약을 잡았다.


새카맣고 커다란 눈을 가진 P선생님은 아담하고 야리야리한 체격이었지만 말투에 자신감이 넘쳤다.

선생님 저 첫째 낳을 때 정말 힘들었어요. 무통 잘하신다고 해서 찾아왔어요.


걱정 마요 엄마, 하나도 안 아프게 낳게 해 줄게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첫 출산 때 진통은 괴로웠지만 아기가 나온 후 깨끗하게 사라진 통증과 함께 모든 것이 놀라울 정도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푹 자고 일어난 다음 날부터 바로 걸어 다녔고 심지어는 조리원에 있는 2주가 답답해 집에 가서 개들 산책도 시키고 친구와 카페에 가서 아이스커피도 한 잔 하곤 했다. 처음 겪은 유축, 젖몸살, 밤 수유 등 멘탈이 무너지는 순간들은 있지만 이제 난 그 정도 힘듦은 각오하고 있는 유경력자이니 진통만 수월하게 넘어가면 될 것이다.


37주 차 태아 검진날, 자궁문이 많이 열려있으니 이른 시일 내에 날짜를 잡아 출산하는 것이 좋다고 했고 일주일 후인 38주 차에 분만 날짜를 잡았다. 허리에는 무통줄을 꼽고 배에는 진통 주기 및 수축을 체크하는 기계를 달았다. 입원한 지 5시간 여가 흘렀을 즘 잠잠하던 수축 강도가 드디어 세졌다며 간호사들이 P선생님을 호출했고, 그 순간까지도 아무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무통의 신으로 이름난 선생님의 명성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 내가 숫자 세줄테니까 그동안 코로 호흡을 길게 들이마신 후 숨을 꾹 참아요. 그리고 머리를 들고 대변을 밀어내듯 힘을 주면 돼요. 옆에서 몸 일으키는 건 도와줄 거예요.

호흡법은 유튜브를 보며 워낙 많이 연습을 한지라 어렵지 않았다.

‘선생님이 왔다는 건 분만 직전이라는 이야기이고, 나는 제정신이고 아무런 통증이 없다. 이제 낳기만 하면 끝난다.’

모든 신경을 호흡과 힘주는 것에 모았고, 다섯 번째쯤 윗몸을 들어 올리는 순간 선생님 손 위에 들린 까만 아기 머리가 보였다. 아기가 나오는 순간마저도 아무 느낌이 나지 않아 방금 저 아이가 내 몸에서 나왔다는 것이 놀라우면서도 ‘이렇게 아무 아픔 없이 출산이 끝났구나. 다 끝났다’ 하는 생각에 그동안의 걱정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 선생님.. 정말 감사해요. 이번엔 정말 하나도 안 힘들게 낳았어요

- 뭘요. 미리 입원만 하면 돼요. 지금은 무통 때문에 괜찮아도 무통 풀리면 새벽에 좀 힘들 거예요. 고생했어요.


선생님 말씀대로 문제는 그날 새벽부터였다. 양다리를 얼음물에 담가 놓은 것처럼 허벅지부터 발끝까지 참을 수 없이 시려서 잠들 수가 없었다. 5시간 동안 무통을 맞은 다리는 마취가 된 것인지 움직여지지가 않아 두 발을 비비는 동작조차 쉽지 않았다. 나보다 더 긴장했던 남편은 이미 옆에서 곯아떨어져있었고, 나는 밤새 ‘그래도 진통 없이 애 낳은 게 어디야. 오늘 새벽만 죽었다 생각하고 버텨보자’ 하며 손바닥이 닿는 허벅지 부분만 연신 비벼댔다.

한 시간쯤 눈을 붙였을까, 낯선 통증에 눈을 떴다. 회음부. 사람의 음부와 항문 사이에 있다는 부위. 내 몸에도 달려 있지만 내 눈으로 정확히 본 적 없는 생경한 이 부위에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따갑고, 쓰리고, 아리고.. 온몸의 피가 다 그곳으로 쏠린 것 같은 묵직하고 불쾌한 통증. 아랫도리에 낚시 바늘을 여러 개 꽂아두고 낚싯대로 팽팽하게 당기는 듯한. 혹은 찢어진 생 살을 마구잡이로 꿰맨 후 사방에서 당기면 이런 느낌일까? 독립투사들이 고문을 받다가 고통에 기절하기도 했다던 역사수업이 떠오를 만큼 끔찍한 통증이었다.


깜깜한 병실 침대에 똑바로 누운 채 얼굴만 간신히 돌려 한 손으로 검색어를 입력한다. 나처럼 현실을 믿을 수 없는 자연분만한 산모들의 글 제목이 줄줄이 검색된다.

[회음부 통증 원래 이렇게 힘든가요?ㅠㅠ]

[유도로 자분.. 회음부 통증 저만 이렇게 심각한가요]

[자분 후 회음부 이렇게까지 아플 수 있나요?]

그리고 이어지는 댓글들.

“계속 진통제 주사 놔달라고 하세요. 뻔한 말이지만 시간이 지나야지 나아져요.”

“저는 일주일을 서서 밥 먹었어요. 걷는 것도 앉는 것도 잘 못할 정도였어요. 너무 심하면 진통제 드세요.”

“저도 한 달 동안 고생했어요. 좌욕 많이 하시고 잘 말리세요.”

“아파요ㅠㅠ 너무 아파요 ㅠㅠ 도넛방석 꼭 쓰세요.”

절망적이었다. 이렇게 아픈 것이 정상적인 반응 중 하나라니. 간호실에 전화를 걸어 진통주사를 요청했고, 간호사가 확인해 보더니 치질도 심하게 생겨 통증이 상당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약기운이 돌고 나서야 겨우 조금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댓글에서 추천하는 좌욕과 가벼운 걷기는커녕 몸을 옆으로 돌리는 동작조차 큰 용기가 필요했다. 몸의 근육들이 얼마나 치밀하고 쫀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조금만 움직이면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가 쇳덩이가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듯 아팠다. 침대 헤드를 20도 정도만 세워 밥을 먹고 그 외의 시간에는 하루종일 누워만 있었다.

밥은 누워먹는다 쳐도 오로(분만 후 자궁내벽에서 떨어져 나온 점막 및 출혈)가 콸콸 쏟아져 피로 범벅된 패드를 수시로 갈아야 했다. 씻는 것은 포기해도 용변을 볼 때는 화장실을 가야 하니 남편에게 거의 매달리다시피 해서 움직였다. 밥 먹기, 패드 갈기, 화장실 다녀오기. 평소면 1분이 걸릴 것도 10분이 걸렸고 그마저도 하고 나면 숨이 차고 더 심해진 통증에 엉엉 울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통증 그 자체라기보다는 공포에 가까웠다.

움직이질 못하니 당연히 아기 면회도 갈 수 없었고, 출산 후 처음 아기 면회를 하던 때에는 아기가 세상에 나온지 3일만에야 얼굴을 보러 간 것이 미안해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아기를 안고 나온 간호사분이 둘째 엄마인데도 그렇게 우냐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래도 아가는 마냥 예뻤다

조리원에서 나오는 날까지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고, 다행히 산후관리서비스를 신청해 두어 집에 돌아온 후에는 관리사님이 아기를 돌보고 내 식사를 챙겨주셨다. 대부분의 시간을 안방 침대에 누워만 있으니 몸과 마음이 퉁퉁 붓고 헝클어졌다. 붙들고 있을 것이 핸드폰밖에 없었다. 친구들과의 채팅 단체방에 며칠째 앉지도 못해 너무 괴롭다고 하니 ‘나도 그랬다’고 하는 간증의 답변들이 쏟아진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해받기 어려운 경험인 데다 다른 상처나 병에 비해 말하기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부위라 말을 아꼈던 듯했다. 내가 이야기를 꺼내자 너도나도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이제야 터놓았다.


회복이 되고 있기는 하는 것인가 싶게 한 달에 걸쳐 아주 천천히, 조금씩 나아졌다. 처음으로 의자에 똑바로 앉던 날, 아무것도 짚지 않고 내 두 다리로 온전히 걸어 움직이던 날, 처음으로 의자에 앉은 자세로 아기에게 젖을 물리던 순간, 개들 산책을 나가 가을 해를 쬐고 보았던 단풍나무들. 출산 전까지 당연하게 누리던 일상으로 돌아오는 모든 첫 순간이 감사하고 감격스러웠다.


출산휴가는 괜히 3개월인 것이 아니었다. 최소한. 아무리 못해도 3개월은 회복을 하라고 주는 것이었다. 휴직 후 아기가 자는 동안 짬짬히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스트레칭부터 해가며 임신동안 떨어진 체력을 회복해야지 했던 다짐을 지키기는 커녕 무너지는 몸, 그리고 따라 무너지는 멘탈을 잘 잡고만 있어도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도닥였다. 출산 후 100일쯤 지나 받은 건강검진에서도 면역력 및 스트레스 저항도(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이겨낼 수 있는 정도)항목에 '매우나쁨'이라는 글자를 난생 처음으로 보았다.


임신과 출산의 숭고함과 아름다움만 가득한 글들 사이에 출산 후 얼마나 육체적으로 큰 변화와 증상, 고통이 따라오는지 생생하게 남기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가장 기본적인 일상조차 어렵고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막막함과 두려움에 휩싸일 때 가장 위로가 된 것은 같은 힘듦을 견뎌내고 있는 다른 이들의 경험이었다. 지금도 침대에 누워 울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내가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본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고통과 괴로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을 알고 있지만 가지 않는 시간, 하루아침에 너무나도 달라진 내 몸, 아무도 알지 못하는 아주 사적인 힘든 시간. 혼자만 걷고 있는 듯한 어두운 터널에 수많은 엄마들이 함께 걷고 있음이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고생하셨어요. 다들 대단하세요. 정말로 잘 견뎌내고 있어요.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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