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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곡자매 Feb 16. 2024

제주살이 집 구하기 대작전(2)

집도 인연이 있다

전화를 끊고 답답한 마음에 다시 제주오일장신문 앱을 열었다. 처음부터 마음에 두었지만 개들 때문에 거절당했던 타운하우스의 처음 보는 매물이 하나 등록되어 있었다. 잽싸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J 타운하우스 임대 매물 보고 연락드리는데요.
혹시 반려동물 가능한가요? 개 두 마리예요.
네. 대형견은 아니시죠?
대신 청소비 부담해 주시고 원상복구 특약을 넣어야 해요.
네. 대형견 아니에요. 이야기하신 것 다 가능합니다.


쿵쿵 심장이 뛰었다.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 대박 대박. 된대!! 내가 맨날 이야기했던 그 타운하우스 있지? 학교도 걸어갈 수 있고 집 앞에 식당도 있고 마트도 있는 거기!! 집도 예뻐. 거실도 커!!

- 오 당장 다음 주에 날 잡을까? 나는 귀찮아서 그냥 두 번째나 세 번째로 마음에 들었던 집으로 가자고 하려고 했는데 일이 또 이렇게 되네. 당신 대단하다.

- 엄마. 나도 가고 싶은 집 있어. 내가 그림 그려줄 테니까 이런 집으로 구해와~~

남편의 칭찬에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던 중 옆에 있던 첫째도 덩달아 신이 나는지 자기가 그린 그림과 함께 말을 보탠다.


같은 타운하우스에 2개의 매물이 있다길래 6일 후로 부동산과 약속을 잡고, 면목없지만 친정부모님께 다시 한번 아이들을 봐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마음에 들어했던 집을 실제로 보러가게 되니 설레이는 마음 반, 이번 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말 제주살이는 포기해야겠다는 생각 반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또 간다 제주

약속 시간보다 1시간이나 빠르게 도착했다. 여유롭게 근처 식당에 들어가 점심식사를 하고도 20분이 남아 타운하우스 단지에 먼저 들어가 둘러보기로 했다.

베이지 색의 주택들이 여유롭게 배치되어 있는 단지에 들어서니 울타리마다 새빨간 동백꽃들이 활짝 피어있고 참새처럼 작은 새들이 여기저기 짹짹대며 날아다녔다. 어느 유럽의 시골마을 같은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이날 따라 겨울답지 않게 해도 어찌나 따뜻하던지- 너무 좋아서 미간을 찌뿌린채 남편의 어깨를 두드려가며 어떡해 어떡해 하며 예쁘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중개사 사장님을 따라간 집 마당의 왼쪽에는 빨간 열매를 가득 달고 있는 커다란 나무, 오른쪽에는 귤처럼 귀여운 노란 열매를 가진 나무가 앙증맞게 심어져 있었고, 너른 정원을 지나 갈색의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자 해가 가득 들어오는 넓은 거실과 원목으로 만들어진 계단, 주방 아일랜드장이 보였다. 걸어서 초등학교를 갈 수 있는 것이 이 집에 오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였는데, 집의 컨디션, 크기, 인테리어, 마당까지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가슴에 곰팡이처럼 퍼져있던 걱정들이 햇살에 모두 사라진 것만 같았다.

'나를 위한 집이구나. 이 집을 만나려고 모든 일이 이렇게 되었구나'


가슴이 벅찼다. 매매도 아니고 임대할 집을 구하면서 이렇게 가슴이 떨리기는 처음이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는지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는 어느새 '언제 이사올지, 계약금은 언제까지 마련할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부동산에 계약을 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피곤도 잊고 앞으로 어떻게 제주살이를 할지 남편과 신나게 계획을 세웠다. 집 하나만 더 봤을 뿐인데 손바닥 뒤집듯 마음이 180도로 바뀐 서로의 모습이 우스웠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등 떠밀려하는 것 같던 제주살이가 오랫동안 바래온 소원이었던 것처럼 이렇게나 설레고 손꼽아 기다려지다니, 마음이 얼마나 요사스러운가.


- 엄마~~ 잘 갔다 왔어? 집 어땠어?

- 너어무 예쁘더라. 집이랑 학교 사진 찍어왔는데 보여줄까?

- 응. 근데 내가 그린 그림 가져갔어? 그런 집 구했어?

- 어머 잠깐만. 진짜 하임이가 그린 그림이랑 똑같은 거 같은데?


바빠서 대충 훑어보았던 아이의 그림이 정말 오늘 보고 온 집과 비슷했다. 벽돌로 지어진 지붕을 가진 2층 집, 3층의 다락방, 과일나무가 있는 잔디마당과 울타리, 마당에 날아다니던 새 그림까지. 아이에게 사진을 보여주니 정말 자기 그림이랑 똑같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모두 갖췄다며 신나서 방방 뛰었다.

마당에 있는 과일 나무/ 벽돌 지붕을 가진 이층집+다락방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선명하게 알고 있는 아이를 보며 새삼 나는 내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번 제주 집을 구하며 알게 된 나의 한 가지 새로운 모습은 내가 꽤나 충동적인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구하게 된 집은 계획에도 없던 전세였기 때문에 자금 계획이나 이사 날짜에 변경이 필요하고, 덕분에 애초에 계획했던 1년의 휴직은 2년이 될지도 알 수 없다. 나는 항상 사람들 사이에 있었지만 의외로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도, 늘 꿈꾸던 주택과 시골 생활이 실제로는 잘 맞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1년이 되었건 2년이 되었건 제주에 흠뻑 빠져 마음껏 사랑하다 돌아오길 바란다.

이제는 겁쟁이 개 두마리, 100일된 둘째를 포함한 애 둘과 함께 어떻게 바다를 건너 이사할지가 관건인데..


아무 준비 없이 걱정 없이 1학년을 제주에서 누릴 우리 첫째, 네가 가장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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