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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곡자매 Mar 08. 2024

개 둘, 애 둘 데리고 바다 건너기

떠나요~ 일곱이서~

이사할 집과 날짜가 정해지고 이사업체 선정, 입주 청소, 애견 동반 항공권 예약, 이삿짐 정리 등등 큼직한 일들 차례차례 하다 보니 어느새 제주 이사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보통 육지에서의 이사는 같은 날 이삿짐을 빼고 들여놓는 것까지 가능하지만, 육지에서 제주로 이사할 때에는 이삿짐을 배로 옮기기 때문에 하루가 걸린다. 1박 2일의 이사 기간 동안 아이들과 개들이 지낼 공간이 필요하고, 자동차 탁송도 하루가 걸리니 공항에 도착해서 차를 바로 탈 수 있게 모든 일정들을 테트리스처럼 빈틈없이 잘 끼워 맞춰야 했다.


짐을 빼기 전날, 내가 아이들과 개들을 데리고 제주도로 먼저 이동하기로 했다. 개들과 함께 머무를 수 있는 에어비앤비 숙소를 2박 예약했고, 친정 부모님이 함께 내려가주시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카시트 2개, 캐리어, 개들의 켄넬까지 넣기 위해 미리 공항 밴을 예약해 두었다. 기사님도 친절하시고, 남편이 공항까지는 같이 가주기로 한 터라 그때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둘째도 금방 잠이 들었고, 켄넬 속의 보리와 콩이는 끼잉끼잉 울더니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조용해졌다. 창밖으로 창길게 늘어진 한강을 보며 당분간은 한강을 보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묘한 아쉬움이 들었다.

서울 안녕. 한강 안녕


부모님을 만나 체크인 및 반려동물 운송 서약서를 작성했다. 성인 1명당 강아지 1마리를 운송할 수 있어 아빠에게는 콩, 엄마에게는 보리, 나는 4개월 된 둘째를 함께 예약했고, 미리 예약해 둔 티캐리어(기내 전용 펫 캐리어)에 개들을 넣어 무게를 쟀다. (다른 항공사들은 대부분 케이지 포함 7kg 기준인데 비해 티웨이에서는 9kg로 규정이 넉넉한 편이라 티웨이를 선택했다.) 

콩이의 캐리어를 올려놓는 순간 무게가 9.5까지 훌쩍 올라가며 숫자가 왔다 갔다 해서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다행히 어지럽게 움직이던 숫자는 9.0kg에 멈췄고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며 어머머머!! 됐다! 하고 외쳤다. 개들이 그동안 살이 찐 것인지 캐리어 무게가 꽤 되는지 몰라도 하마터면 같이 못 타고 갈뻔.


 펫캐리어는 좌석 아래 들어가야 하기 때문인지 높이가 높지 않았고, 구부정하게 들어가 있는 개들의 모습이 너무나 답답해 보였다.

캐리어에 넣으면 이런 구부정한 상태가 된다

특히 다리가 길고 키가 큰  콩이가 잔뜩 등을 구부린 채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니 미안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캐리어 앞에 쭈그려 앉아 괜찮아 괜찮아하며 개들의 얼굴 쪽 그물망만 하염없이 쓰다듬었다. 이렇게 개들이 힘들고 긴장하는 순간에는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 주고 이해시켜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늘 생각한다.


부모님과 간단히 햄버거를 먹으러 갔는데 식당 앞에서 불편한 상태로 기다리는 개들을 보니 도무지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고맙게도 남편이 개들을 공항에 있는 펫파크에 데려가 자유롭게 산책도 하고 배변도 하게 해 주고 온다기에 겨우 식사를 마쳤다.

펫파크 가는 길

탑승 2시간 전에 미리 도착했지만 개들이 켄넬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해서 켄넬에 넣고 빼는 시간도 오래 걸렸고, 산책도 시켜주고, 간단히 요기도 하고 나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이젠 정말 탑승구로 가자고 일어서려던 차, 둘째가 울음을 터뜨렸다. 여태 갈아주지 못한 기저귀가 불편한가 싶어 유아휴게실에 들러보니 쉬가 아니라 엄청난 양의 응가였다. 날이 추워 둘째도 겉옷까지 여러 겹을 입힌지라 벗기고 닦이고 씻기고 손을 급히 움직여야 했다. 빠르게 뒤처리를 하고 가족들을 재촉해 뛰다시피 탑승구로 향했다.


티켓과 신분증까지는 꺼냈는데 체크인 후 가족관계증명서를 어디에 넣은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둘째를 아기띠로 안고 패딩을 입은 채로 백팩, 잠바 주머니, 바지 주머니 이곳저곳을 뒤지려니 진땀이 뻘뻘 났다. 겨우 찾은 등본을 직원에게 보여준 후 보안검색대로 향했고 우리는 다행히 아기가 있어 Fast track 전용 줄로 통과할 수 있다고 했다. 엄마아빠가 보리와 콩이를 챙겨주셨고, 나는 첫째와 나의 가방, 겉옷을 벗고 둘째를 안고 줄을 섰다.

개들은 켄넬 째로 X-ray 탐지기에 통과시키거나
직접 안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는 방법 중에 선택하시면 돼요.


켄넬 째로 X-Ray에? 생각도 못한 방법이었다. 들어가기 싫다고 버티는 개들을 겨우 켄넬에 넣었는데 이미 탑승 시간이 10분도 채 남지 않은 이 상황에 다시 꺼냈다 넣었다 할 생각을 하니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아찔했다. 그렇다고 캔넬째로 X-ray 탐지기에 통과시키기는 너무 걱정이 되고 싫었다. 

더 이상 내 머리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멈춰버렸지만 모두가 서서 내 결정만 기다리고 있었다.


- 아.. 어쩌지.. 아.. 아.. 잠시만요. 개들 그냥 켄넬째로 검색대 통과할게요.


 말하면서 목이 메었다. 안 그래도 좁은 켄넬에서 긴장해 있는 개들한테 못할 짓을 하는 것만 같았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내 표정을 살피던 직원분이 나한테 한번 더 물었다.

고객님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아마 개를 키우고 있거나 사랑하는 사람임이 분명했다. 직원분의 눈이 ‘제발 아니라고 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 아.. 아니요. 안될 것 같아요 그냥 제가 한 마리씩 안고 직접 갈게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행기를 놓치는 한이 있어도 개들의 안전과 무사가 우선이었다. 나는 개들을 직접 안고 가겠다고 다시 대답했다.


- 네! 잘 생각하셨어요. 아기는 제가 잠시 맡아드릴게요. 도와드릴 테니 천천히 하세요.


직원분이 둘째를 넘겨받아 한 팔로 능숙하게 안고, 나머지 한 팔로는 짐과 겉옷을 챙기는 것을 함께 도와주셨다. 그 사이 나는 개들을 빠르게 꺼내서 검색대를 통과할 수 있었다.


나도 아기를 안고 첫째의 손을 잡고 짐을 들고 있었지만, 퇴행성 관절염으로 절뚝거리는 아빠가 9kg 켄넬을 한 손으로 들고, 엄마는 7kg 켄넬을 들고 한참을 걷고 걸어야 했다. 탑승구가 참 멀게만 느껴졌다.

아빠 엄마 미안 보리 콩이 미안 ㅠㅠ

탑승구에 도착하니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하나씩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소식은 다행히 비행기가 30분 연착되었다는 것, 그리고 나쁜 소식은 비행기까지는 버스를 타고 또 이동해야 한다는 것.


만석인 버스를 타고 이동후 칼바람을 맞으며 비행기에 올라타는 줄을 기다리며 정신은 점점 혼미해져 갔다. 켄넬에 찌그러지다시피 엎드려있는 개들, 지쳐 보이는 엄마와 아빠, 다리가 아프다고 내 팔을 흔들며 울먹이는 첫째, 밥시간이 되어 울음을 터뜨린 둘째까지. 한 시간이 넘게 안고 있는 둘째의 무게는 이미 느껴지지 않은지 오래였다.


드디어 탑승하게 된 비행기. 기내 앞쪽 창가자리로 배정된 애견동반좌석에 앉아 앞 좌석 밑 공간에 켄넬을 두었다. 그래도 캐리어의 앞부분을 확장할 수 있도록 되어있어 개들이 조금이나마 편안해 보였다. 아기가 울거나 개들이 짖거나 울지 않을까 가장 걱정이었는데 둘째는 분유를 먹고 바로 잠들었고, 개들도 긴장이 풀려 잠들었는지 가는 내내 조용했다. 비행동안 잘 기다려준 첫째에게 폭풍 칭찬과 관심을 주고, 부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셀카도 찍으며 평화롭게 올 수 있었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공항에 내려서 탁송한 차를 바로 찾으러 갈 수 있도록 업체에서 보내준 문자의 주차장 위치를 몇 번이고 보고 또 보았다.


제주 공항에 도착하니 비가 오고 있었다. 개들은 여전히 켄넬 안에 찌그러져 있었고, 공항 바로 앞 건물 주차장인데도 나이 드신 부모님과 어린아이와 개들을 챙겨 가는 길은 이역만리처럼 멀기만 했다. 

카시트와 짐을 실으면 차에 자리가 부족해 엄마아빠는 택시로 이동할 계획이었는데 도저히 혼자 차까지 올 수가 없어 부모님이 함께 개들과 짐을 옮겨주셨다. 비도 오고 추운 날씨에 부모님께 다시 나가서 택시를 잡으시라고 하기 힘들어 어떻게든 다 같이 끼여 타보려 했으나 이번에는 유모차가 말썽이었다. 평소에 잘만 접히던 유모차가 어떻게 해도 접히지가 않는 것이었다. 이미 카시트에 앉혀둔 둘째는 악을 지르며 울어댔고, 첫째는 나에게 도대체 언제 출발하냐고 재촉하다가 한소리를 듣고는 잔뜩 골이 났다. 

두 개의 카시트 사이에 좁게 앉아 계신 엄마는 울고 있는 둘째를 달래느라 진땀, 아빠와 나는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20분 여를 유모차와 씨름을 하다가 도저히 방법이 없어 일단 우리는 차로 출발하고 아빠가 유모차를 가지고 따로 택시를 타고 오시기로 했다.


일단 출발은 했으나 평소 순둥이인 둘째가 이렇게 비명을 지르며 우는 모습은 처음이라 어디에 손가락이 낀 것은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숙소까지 네비에 뜨는 소요시간 38분이 얼마나 원망스럽던지. 이렇게 울리다가는 무슨 일이 날 것 같은 생각에 도저히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엄마에게 둘째를 좀 안아서 달래 달라고 부탁드렸고 엄마품에 안겨서도 크게 울던 둘째는 10분쯤 지나니 지쳐 잠들었다.

우리가 예약한 애견동반 에어비앤비는 구옥을 수리해 만든 숙소로 별도 주차장이 없고 공용 주차장이 1분 거리에 있었기에 큰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둘째가 겨우 잠이 들었고, 비가 오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씨였다. 심지어 우리는 지금 유모차도 없고 아빠도 없다. 운전하면서 머리로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안될 것 같아 숙소 앞에 차를 잠깐 세우는 방법을 택했다. 외워둔 비밀번호를 눌러 숙소 문을 열어두고 비를 맞으며 마구 뛰었다. 둘째를 받아 들고 숙소 바닥에 내려놓고 다시 뛰어와 개들을 한 마리씩 안아서 숙소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첫째의 손을 잡고 숙소까지 뛰었다. 마침 차로 돌아온 순간 뒤에서 다른 차가 한대 오고 있었다. 목인사로 죄송하다 인사를 하고 잽싸게 차를 빼서 주차장에 도달했다.


숙소에 들어서니 따뜻하게 보일러가 켜져 있었다. 3시 비행기라 5시면 숙소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6시가 넘어있었고, 햄버거로 간단히 점심을 먹은 터라 부모님도 첫째도 배고파했다. 배달 앱을 열어 참치김치찌개와 계란말이, 생선구이를 주문했고 30분도 안되어 음식이 도착했다. 따뜻한 숙소에서 갓 요리된 음식들을 먹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드디어 제주까지 무사히 왔고 부모님도 아이들도 개들도 편안해졌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고생한 모두들 따뜻한 곳으로 대피완료

그리고 그 후 이사하는 날까지의 2박은 어땠을까? 이 이야기도 말하자면 참 길지만 이미 숙소까지 오는 내용까지 쓰다 지쳐 이후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게 요약본으로 남겨본다.


1. 유난히 추웠던 날씨에 웃풍이 부는 구옥이었던 숙소.

첫째는 요즘 성장통인지 자다가 많이 깨서 힘들어한다. 새벽에 깨서 다리가 아프다고 울고. 목이 따갑다고 울고 덩달아 깬 둘째도 기침을 시작했다. 둘째도 손발이 차가워 이불을 덮어주고 살피느라 거의 밤에 잠을 못 잤다. 참고로 안 그래도 이삿짐 싸고 제주 이동까지 며칠 동안 쌓인 피로가 극에 달했던 때^^*


2. 제주까지 와서 숙소에서 애만 보시는 부모님께 죄송하고 좁은 숙소 안에만 있는 첫째에게도 미안해 근처 식당과 카페를 찾아가기로 했다. 

식사는 순조롭게 맛있게 먹었으나 카페는 문을 닫았다. 결국 차를 타고 두 번째로 찾아간 카페에서 아빠는 공기가 답답하다며 차에 가 계신다고 나가셨다. 아빠가 차에 있으니 마음도 불편한데 이사업체와 입주청소에서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 덕에 엄마가 둘째를 계속 봐야 하는 상황+첫째도 옆에서 지겹다고 징징. 결국 엄마와 나는 차 한잔을 다 못 마시고 카페에서 나왔다. 

오는길에 지쳐 잠든 첫째를 도저히 안을 수가 없어 집에 가서 자자며 겨우 어르고 달래서 반쯤 우는 애를 숙소 침대에 눕혔는데 아빠가 들어와 하는 말은?


한 시간 이따가 제주 사는 고모네와 저녁 먹기로 했다.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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