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나도 몰라
"사모님 여기 제주부동산인데요.
이야기하신 그 고양이 있는 집 있잖아요. 연락해 봤는데 개 두 마리는 절대 안 된다고 하네요. 제가 강아지 키우는 것까지는 어떻게 잘 설득했는데 두 마리라고 하니까 바로 싫으시대요. 돈 더 줘도 싫다고.. 아니면 봤던 집 중에 또 마음에 드는 집은 없으세요?"
집이 맘에 들면 개 키우는 것은 자기가 설득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던 공인중개사가 미안한지 말끝을 흐렸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남편은 휴가를 내고, 친정부모님께 아이들을 맡기고, 우리 둘은 식사도 생략하고 하루종일 제주 서쪽을 누비며 봤던 집이었다. 제주까지 가는 두 사람의 왕복항공권이 30만 원, 아침 8시 반에 출발해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던 고된 일정. 서울로 돌아와 이틀 동안 찍어온 수백 장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지도를 찾고 검색해 가며 비교한 끝에 최종 선택한 집이었는데 그 집이 안된다고 했다.
- 아아아아~~ 부동산에 처음부터 개 두 마리 키운다고 말했는데 이제 와서 안되면 어쩌라는 거지. 제주도를 계속 왔다 갔다 할 수도 없고.
- 그러게. 아니면 두 번째나 세 번째로 마음에 들었던 다른 집은 어때?
- 하나는 학교가 너무 멀고, 하나는 거실이 너무 작아. 다른 집 고르면 후회할 것 같아. 하.. 그냥 가지 말까?
이것을 핑계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제주에 가고 싶은 걸까 가기 싫은 걸까?
제주살이를 생각하게 된 계기는 사소했다. 긴 시간 둘째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남편에게 만약 둘째를 낳는다면 함께 육아휴직을 하면 어떻겠냐고 운을 띄웠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 예정인 첫째가 걱정되기도 했고, 힘들긴 했지만 첫째 육아휴직 때 내가 느낀 것처럼 남편도 회사일을 잊고 아이와 끈끈한 애착을 형성해 나가는 행복을 느껴 보길 바랐다. 마침 회사생활에 지쳐있던 남편은 흔쾌히 그러고 싶다 답했다.
둘 다 휴직을 하기로 결심하고 나니 회사 근처인 지금 집에 살 필요가 없어졌다. 어디로 이사할까? 하는 생각은 너무나도 달콤했다. 상상 속에서는 강원도로도 가고, 따뜻한 남쪽 끝으로도 가고, 하와이며 미국 너른 저택에서도 살았다. 아이는 영어가 자연스레 쑥쑥 늘고 나는 여유롭게 유모차 끌며 해변을 산책하다가 커피를 마시는 일상은 생각만 해도 흐뭇했다. [하와이 1년 살이], [미국 1년 살이] 등을 검색해 보니 1년에 쓰는 돈이 1억 이상이라고 했다. 영어는 둘째치고 적응하는 데에 1년은 걸릴 거라 적응할만하면 돌아올 때가 된다고- 모두들 1년살이는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무엇보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두 아이, 두 마리의 개들이 아픈 상황을 상상해 보면 막막했다. 보호자는 남편과 나 둘인데 돌봐야 할 존재가 넷이다. 현실과 두려움이 상상력에 제동을 걸어주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우리 부부가 일 년에 한 번 이상 방문하는 제주도를 떠올렸다. 제주에 와서 단독주택에 살아보면 어떨까. 거실에서는 아이들과 개들이 잔디 정원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모습이 보인다. 봄에는 유채꽃이 피고, 겨울에는 새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인 모습이겠지. 마당에 화로도 하나 사서 고구마와 마시멜로를 구워 먹고.. 또.. 눈뜨면 테라스에 나가 커피 한잔도 하는 아침. 유모차를 끌고 감귤밭 옆을 걸어 첫째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후에는 개들과 오름을 산책하거나 바다에 가서 서핑보드 위에서 쿨하게 균형을 잡으며 서핑을 하는.. 가정적이면서도 도전적인 내 모습도 상상하니 제법 멋지다. 맞벌이 엄마아빠 때문에 5년간 꼴찌로 하원했던 첫째에게 마당과 다락방이 있는 집에서 원 없이 함께 뛰어놀고, 어느새 9살이 된 내 개들과 마당에서 일광욕을 하며 늘어지게 자는 상상만으로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제주도 집 구하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제주도는 1년 치 월세를 한 번에 내는 개념인 '연세'가 기본이라 했다. 휴직 기간 동안 수입이 없을 터라 남편과 연세 2400만원선으로 타협하고, 첫째의 학교도 가깝고 동네에 또래들도 있는 마을, 어린 둘째가 있으니 소아과도 가깝고 개도 키울 수 있는 집을 조건으로 찾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아파트를 구할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제주오일장신문이라는 별도의 웹사이트로 매물들을 확인해야 했는데, 각 집은 대략적인 지역 정보만 있고 위치가 정확히 나와있지 않아 초등학교가 가까운지, 병원이 가까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나와 있는 정보대로 지도에서 '애월읍'을 찾으면 제주도를 피자처럼 8조각으로 쪼개 그중 한 조각만큼의 땅이 전부 애월읍이었다.
또 아파트와는 달리 단독 주택들은 각기 개성 넘치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내가 보고 있는 집의 내부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보고 있는 사진의 방이 1층인지 2층인지, 안방인지 서재인지, 주방 옆엔 달린 것이 창고인지 마당인지 화장실인지 파악이 되지 않는 집이 수두룩했다. 세로로 길쭉하게, 가로로 넓적하게 늘어난 비율의 사진들로 거실과 방 크기를 가늠해야 했고, 집 컨디션은 어떤지, 옆집과의 거리는 어떤지, 알면 알수록 더 미스터리였다. 부동산 간 매물을 공동중개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타운하우스라 하더라도 어떤 부동산의 매물이냐에 따라 구조나 마당위치, 뷰 위치가 완전 다른 집이기도 했다. 유일하게 인터넷에 정보도 꽤 있고, 내가 원하는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대단지 타운하우스가 하나 있었는데 그만큼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도 드는 곳인지 연락할 때마다 모두 반려동물은 불가능하다고 답변을 받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시 두 달간 손품을 팔아서 연결된 부동산과 집을 보러 다녔던 것이고, 나름 월세 200만원짜리 집인데 영 눈에 차지 않았다. 도보로 학교를 갈 수 있는 곳은 아예 없었고, 마당이 너무 작거나 거실 혹은 방이 너무 작은 집. 마당이 도로에 붙어있는 곳, 혹은 옆집이 너무 가까워 거실이 다 들여다보는 집, 바로 앞에 다른 타운하우스 공사가 한창인 곳 등 큰 단점이 하나씩 존재했다. 딱 한집 고양이를 키우는 집이 있었는데 완전히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큰 단점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이상하게도 여행 와서 즐겁게만 보이던 풍경이 죄다 고행길처럼 느껴졌다. 비가 와서 안개가 자욱한 중산간 지역을 지날 때면 고립된 느낌에 가슴이 턱 막혀오고 저녁시간에 죄다 문을 닫은 가게들과 불빛 하나 없이 어두운 도로를 보면 두려운 마음이 엄습했다. 제주시로 돌아가는 도로는 꽉 막혔고, 그저 아름답던 바다는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 자본주의 끝판을 보여주는 관광지로만 보였다.
다시 서울에 돌아와 도시의 편리를 누릴 때마다 두려움은 더욱 뿌옇게 짙어졌다. 30분이면 마트에서 주문한 물건들이 도착하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때에는 메뉴가 너무 많아 고민되는 이곳. 걸어서 5분이면 병원이며 마트, 우체국이며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를 골라 갈 수 있고, 눈이 오면 치워 주고 잡초가 자라면 깎아주고 주기적으로 해충약도 뿌려주는 이곳을 벗어나서 살 수 있을까. 마음 한켠에 '나만 그만두면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내 일에 있어서는 한없이 입이 가벼운 인간인 나는 임신기간 내내 휴직하면 제주살이를 하러 간다고 여기저기 떠들어댔고 듣는 사람마다 눈을 반짝이며 부러움의 말을 건넸다. 다들 만날 때면 '제주에는 언제 가는지, 지역은 정했는지, 집은 언제 구하는지'를 묻고, 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냐며 나를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이라며 추켜세워주었다. 그러다 보니 떠들어댄 이 말을 지키기 위해서 가는 것인지 내 마음이 진짜 제주를 가고 싶은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늘 그래왔듯 이 선택으로 내 인생에 또 다른 가능성들이 펼쳐지리라, 큰 변화를 앞두고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려니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선택한 고양이 집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모든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한번 흔들린 마음은 더욱더 쉽게 흔들렸다. 두 배의 이사비용, 대식구의 바다를 건너는 이사, 100일 된 아기. 괜히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육아로만 시간을 보내다 오는 건 아닐까. 들이는 비용과 수고에 비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있을까? 생활비에 쪼들려 1년 만에 쫓기듯 올라오는 것은 아닐까? 가슴속에 묻어둔 걱정들이 다시 곰팡이처럼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이의 입학도 2달밖에 남지 않았다. 마음이 급하다. 앞으로 우리의 휴직 생활은 어떻게 될까? 불안하면서도 당장 몇 달 앞의 우리의 삶조차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신기하고 궁금해 이게 사람 사는 맛인가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