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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곡자매 Jul 29. 2024

제주바다에서 처음 스노클링 하던 날

내일 토요일 OO식당 앞바다에서 스노클링 해볼까요?


동네 단체 카톡방에 뜬 번개 메시지를 보고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이번에는 기필코 나도 바다에 들어가야지. 오리발과 스노클링 마스크를 내 것과 아이 것, 두 개씩 챙기며 콧노래가 절로 난다.




몇 차례 가족들과 혹은 동네 사람들과 바다에 다녀왔지만 아이들과 함께 가다 보니 몸만 바다에 있지 육아하는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수영을 하는 아이들을 챙기느라, 위험하지 않게 지켜보느라, 함께 먹을 음식을 준비하다 보면 눈앞의 바다는 그림의 떡이었다. 아이들을 지켜볼 때 발만 겨우 바닷물에 슬쩍 담가보며 그래도 이런 아름다운 곳을 볼 수 있는 게 어디냐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해지는 풍경이 끝내줬던 김녕 해수욕장


지난주에도 동네사람들과 세기알해변에 다녀왔는데 스노클링과 바다수영으로 유명한 곳인지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새파란 바다에 온몸을 맡기고 자유롭게 수영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습하고 더운 날씨에 옷을 입고 있는 내 몸이 어찌나 갑갑하던지, 뒷감당은 생각 않고 바다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을 몇 번이나 가라앉혀야 했다.


수영인들의 천국이었던 세기알 해변. 부러운 사람들


그날 정말 바다에 못 들어간 게 어찌나 아쉬웠던지 어린아이처럼 꿈도 꿨다.


해가 쨍한 날씨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뚝길을 따라 걷다가 바다로 연결되는 다이빙 스팟을 발견했다. 꿈속에서도 수영복이 없던 터라 뛰어들까 말까 고민을 하던 터, 친구 한 명이 "나 뛴다!" 하고 풍덩 뛰어드는 것이 아닌가. 입고 있던 옷 그대로 에메랄드 빛 물에 뛰어드는데 첨벙하는 소리와 바닷물결에 함께 출렁이는 친구의 옷과 머리카락을 보자 참을 수가 없었다. 나도 질세라 달려가 물속에 몸을 던졌고 옆에 있던 친구들도 아이들처럼 너도나도 풍덩풍덩 뛰어들었다.

꿈인데도 그 물결을 헤치고 수영하는 맛이 어찌나 달콤하고 해방감이 들던지.


눈을 떴는데 '으아 바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제주의 여름 날씨는 사우나라도 들어온 것처럼 뜨겁고 습하기 때문에 다들 이른 아침이나 해 질 녘쯤 수영을 추천했다. "오 그런 방법이 있군요! 한번 도전해 봐야겠어요." 하고 호기롭게 대답했지만 막상 1학년 첫째와 8개월짜리 둘째가 있다 보니 실행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미션이었다.




번개 제안이 온 토요일은 마침 남편이 오전부터 개인 일정이 있어 오후 3시까지 나 혼자 아이 둘을 돌보기로 되어 있었다. 약속시간은 마침 4시, 남편이 돌아왔을 때  둘째를 맡기고 덜 미안한 마음으로 첫째와 둘이 바다로 출발했다.


먼저 온 일행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짐을 두고 오리발과 스노클링 마스크를 챙겨 들고 바다 쪽으로 걷는다. 화창하면서도 뜨거운 날씨인데 그래도 오후 네시쯤 방문하니 열기가 한 김 식혀진 상태다.


첨벙!


세상에, 물이 너무나 따뜻하다.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찬 물길이 조금씩 느껴지지만 물놀이하기에는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만큼 따뜻한 자연 온수풀.

먼저 스노클링을 하던 일행이 인사를 한다.


- 왔어요? 저~~ 기 까맣게 해초 있는 쪽 가보세요. 거기 물고기들 많아요.

- 그래요? 하임아 엄마랑 저쪽에 물고기 보러 갈래?

- 응 엄마 가보자!


첫째의 손을 잡고 엎드리는 순간 몸이 두둥실 파도에 휩쓸리며 바닷속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작년만 해도 발차기도 서툴렀던 아이는 1학년이 되었다고 이제 제법 능숙하게 오리발을 움직이며 함께 속도를 맞추어 헤엄친다.

발을 열심히 움직여 5m나 갔을까? 눈앞 풍경이 서서히 바뀌며 손가락 두세 개 만한 물고기들이 하나 둘 보이더니 곧이어 해초숲 사이사이 수십 마리의 물고기가 잔뜩 보인다.

순식간에 다른 세계로 이동한 것만 같은 신비롭고도 흥분되는 풍경, 감탄 또 감탄이다. 이런 기분을 하임이도 느끼고 있을까?


- 하임아 물속에 얼굴을 넣고 보니까 어때?

- 물고기가 이렇게 많다니 너무 신기하지 않니?

- 저 물고기 너무 예쁘다!


묻고 싶은 수많은 이야기들은 스노클링 마스크 안에서만 맴돌며 그저 으으 소리와 두 번째 손가락으로 가르키기, 엄지 손가락 따봉으로만 표현할 뿐이다. 하임이 역시 두 번째 손가락과 따봉으로 화답한다.


한참 물속 세상을 구경하고 다시 모래사장으로 나가던 길, 나비 날개처럼 커다랗고 파란색 지느러미를 가진 물고기를 발견했는데 그동안 보던 물고기의 색과는 다르게 형광에 가까운 파란색 지느러미라 더욱 묘한 느낌이 들게 했다. 나중에 돌아와 찾아보니 [성대물고기]라는 종이라고 한다.

나비처럼 신기한 아름다운 물고기였다


뭍으로 나오자 파도 때문인지 스노클링 마스크를 오래 껴서인지 멀미를 하는 것처럼 두통과 메스꺼움이 느껴진다. 하임이 역시 멀미가 난다고 했다. 맡아둔 자리로 돌아와 아이스커피와 크래커 등을 먹으며 속을 달래고, 하임이는 다시 수영을 하며 친구들과 해가 질 때까지 한참을 놀았다.


스노쿨링 천국이었다! 행복했다!


잠깐의 행복과 멀미를 맞바꿨지만 돌아와서도 제주의 첫 스노클링에 대한 여운이 한참이나 지속됐다.

첫째를 임신하고, 애가 어려서, 둘째를 임신해서 등등의 이유로 내가 진짜 바다에 들어가 헤엄치고 놀아본 게 정말 몇 년 만인지!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바다에 들어가던 감격스러웠던 순간을 전했고, 이야기를 들은 남편도 그 후 며칠 내내 바다수영을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나는 둘째가 너무 어려서 고생만 하고 올 것 같다고 넷이 바다에 가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대답했고, 남편도 동의했지만 마치 그 대화를 나누지 않은 것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오늘 바다 가는 거 어때?"하고 물었다. 아마 며칠 전까지 바다에 가고 싶어 죽을 것 같던 내 마음 같겠지. 우리는 결국 어느 저녁, 충동적으로 첫째와 둘째 모두 함께 챙겨 바다를 찾았다.


와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천국이나 다름없었던 바다는 지옥이 되었다.

둘째는 모래에 발만 닿아도 울며불며 난리를 치는 바람에 순식간에 모래투성이가 됐다. 한명이 활처럼 휘어지는 둘째를 떨어지지 않게 안고 또 다른 한명은 기저귀 안에까지 들어간 모래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는 사투를 벌였는데, 그러는 동안에 첫째는 계속 자기 혼자 논다며 골이 나 나와 남편은 1시간 만에  파김치가 됐다.


모래도 싫다 물도 싫다. 다~~~ 싫다!!!!!!! 진짜!!

- 미안. 이래서 걱정했구나. 다시는 넷이 오자고 안 할게.

- 응.. 그나마 오늘은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안 와서 다행이다.

- 그래도 물놀이 시작 전에 가족사진 하나는 건졌잖아. 그거면 됐지.


고생한 기억만 남은 바다 나들이었지만 다행히 물놀이 전에 그림 같은 구름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남겼다. 넷이 제대로 찍은 첫 사진인데, 풍경과 날씨가 다 했다.


아마 당분간은 다 같이 바다에는 절대 가지 않을 테니 참으로 귀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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