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문화 적응기
- 우리 언제쯤 저녁에 같이 나가서 술 한잔 할 수 있을까?
- 그러게. 한 십 년 후..?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남편과 자주 아쉬워하며 했던 대화다. 인생에 육아라는 과업이 주어진 후로 수면시간, 제대로 된 식사, 원하는 시간에 씻을 자유 등 많은 것들을 잃으면서 저녁에 나가 술 한잔 하는 낭만은 당연히 진작에 포기했다.
맛집이나 카페, 쇼핑, 여행 등은 어떻게든 무리해서 가고, 밥이 코로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먹으면 되지만 아이를 동반하고 술을 한잔 한다는 것은 정말.. 긴장을 풀고 느슨해지고 싶은 의도를 전혀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안 하니만 못한 시도다. 먹을 기회가 있다 한들 다음 날 내가 숙취로 괴로울 때 그 누구도 내 회사일과 육아를 대신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제 무덤 파기나 다름없고. 그러다 보니 2017년 첫째가 태어난 이후 술자리는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둘째가 생긴 후 술자리가 대폭 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주에 내려온 이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많은 때에는 두세 번씩 동네 누군가의 집에서 한잔 하는 자리가 생기곤 하는데 그 중심은 아이들이다. 친구 집에 놀러 가면서 그 집 앞에 세우고 들어간 킥보드가 신호탄이 되어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옆에 나란히 자신의 킥보드를 세운 후 벨을 누른다.
그렇게 하나둘 모여든 킥보드는 3개, 4개.. 나중에는 8개쯤 된다. 아이들이 놀다 보면 식사시간이 되고 집주인, 혹은 다른 누군가가 고맙다며 아이들의 식사를 준비해 온다. 미리 입을 맞추고 준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끔은 사람보다 준비된 음식이 많을 때가 있다.
(한 커뮤니티에서 한국인에게는 포트럭파티가 불가능하다는 유머글을 읽었다. 정말 우리 동네 모임만 봐도 실감할 수 있다.)
- 출처 :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dcbest&no=209913
아이들을 먹이고도 남은 음식이 많으니 어른들도 함께 한 끼를 이렇게 해결하자며 앉아 먹기 시작하고... 집이었으면 1분에 한 번씩 엄마를 불러대는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노니 어른들 대화시간도 덩달아 평화롭다. 수다를 떨다 보면 목도 마르고 날이 더우니 한잔 하자며 맥주며 막걸리를 하나 둘 꺼내온다. 그러다 보면 또 누군가 안주를 만들어오고.. 집에 있던 또 다른 집 어른들을 부르고.. 그 어른들이 또 요리를, 술을 하나씩 손에 들고 오는 것이다.
처음에는 제주에서 같은 또래를 키우는 부모로, 이웃으로 만난 것도 인연이고 하니 인사자리로 몇 번 만나는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한 두 번 시작하고 점점 친목이 쌓이면서 수시로 모임이 만들어졌다. 오징어회, 장어구이, 바비큐, 낙지탕, 우동과 돈가스, 김밥과 떡볶이, 부추전, 김치전, 어묵탕, 피자와 치킨, 샐러드와 치즈, 카나페, 먹태..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음식이 등장했고, 다들 어찌나 손 빠르게 뚝딱 만들어 내오는지 매번 입이 떡 벌어졌다. 살림에 그다지 재능이 없는 나와 남편도 부랴부랴 집에서 냉장고를 뒤져 서투르게나마 음식을 만들어 갔다.
마치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쌍문동 골목 같았다.
같은 동네의 여러 가족들이 매번 음식을 나눠먹고 아이들은 약속도 하지 않고 누구야 놀자 하고 친구를 불러내 골목에서 함께 노는 모습이.
어른 모임까지 이어지는 날은 아이들에게 더욱 신나는 날이었다. 어른들이 놀고 있으니 아이들도 평소 자는 시간을 넘겨서까지 한껏 텐션을 올려 소리 지르며 뛰어놀았다. 층간 소음 걱정만 없어도 아이들에게 참 자애로운 부모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누구도 뛰지 말라, 소리치지 말라 나무라지 않는다.
일찍 헤어지는 날은 10시, 늦는 날은 새벽 2~3시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다. 나는 어린 둘째를 재우거나 일찍 잠이 드는 첫째 덕분에 대부분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마당에 나와 술자리가 한창인 거실을 뒤돌아보면 노란 조명과 둘러앉은 사람들의 모습이 신기하고 묘한 기분이 들곤 했다.
심야식당 영화에나 나올법한 저 낭만적인 자리에 방금까지 내가 있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리고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만난 사람들과 가장 자주 만나고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워서.
이름, 나이, 직업, 성격, 우리는 정말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유일하게 아는 건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의 나이와 이름뿐이었다. 기본적인 정보지만 어느 것 하나 쉽게 꺼낼 수 있는 질문이 없었다. 원래 제주에 살았는지, 아니라면 제주에는 어떻게 오게 된 건지, 왜 이 동네를 선택했는지, 무난한 질문부터 시작해 대화의 물꼬를 텄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내용도 있고, 이야기의 물길이 이쪽저쪽으로 흐르다가 질문을 하기도, 받기도 하며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 갔다.
제주 특성상 어딜 나가서 먹는 것 자체가 품이 많이 드는 일이고, 모두들 1학년 또래의 아이가 있는 같은 상황이다 보니 집에서 모이면 우리는 편하고 아이들은 신나고 일석 이조였다.
돌도 안된 아이를 키우면서 이렇게 자주 술자리에 참석할 수 있다니, 이런 이웃들을 만나다니, 우리는 정말 운이 좋다고 남편과 매일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는 작은 고민이 생겼다.
모임에 다녀올 때마다 남편과 마주 앉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2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