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중에도 아이들은 아프다.
- 어머, 하루 토했어!
- 아이고, 아까 좀 많이 먹더라니.. 급하게 먹었나 보다.
시작은 둘째의 갑작스러운 구토였다. 저녁을 일찍 먹은 둘째가 우리가 먹고 있는 저녁에 탐을 내길래 밥을 더 줬는데, 그게 화근이었는지 밤 10시쯤, 밤잠을 자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먹은 것들을 게워냈다. 토사물에 엉망이 된 아이의 옷을 갈아입히고 따뜻한 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손과 얼굴을 닦아준 후 다시 잠을 재웠다.
다음 날 오전, 여기저기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고, 아침밥도 잘 먹는 걸 보며 전날 밤 일은 까맣게 잊고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난 이후부터 아이가 평소와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다.
- 오늘따라 유난히 찡찡거리네. 왜 그러지? 갑자기 껌딱지가 됐어.
- 그러게 좀 힘이 없기도 하고.. 오늘 바닥에 내려놓기만 하면 우네. 그런 시기인가?
그때 갑자기 내 어깨에 기대 있던 아이가 또 토를 하기 시작했다. 작은 몸을 들썩거리며 우엑 우엑하더니 점심에 먹은 것들을 토해내고, 이어서 아침에 먹은 것까지 모두 토해냈다.
- 아이고.. 어제부터 체했나 보다. 소화 안되고 있었는데 먹였나 봐.. 아침에 먹은 것까지 다 토했어.
- 그러게 동네단체방에 혹시 애들 체했을 때 먹는 약 있는지 여쭤볼게.
한 집에서 집에 백초가 있다며 가져다주셨고, 다행히 그 후 둘째가 더 이상 토하는 일은 없었다. 대신 깨있는 시간에는 계속 안겨있으려 하고, 먹은 것을 다 토해내서 기운이 없는지 낮잠을 평소보다 아주 오래도록 잤다. 깰 시간이 지났는데도 한참이나 일어나지 않아 중간에 몇 번이나 '아직도 자는 건가..' 하며 방에 들어가 봤다.
깨있을 때에는 이틀 동안 한 몸처럼 들러붙어 조금만 떨어져도 소리를 지르며 울어댔고, 흰 죽을 잘 먹지 않아 분유에 흰 죽의 만을 조금 섞여서 겨우 먹였다.
금요일에 시작된 증상은 느리지만 천천히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고, 주말이 끝날 때쯤 드디어 아이도 평소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 여보, 이제 하루 좀 괜찮아진 것 같아.
- 그러게. 정말 주말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끝나버렸네.
- 근데 이제 내가 아플 것 같다. 나도 너무 어지럽고 토할 거 같아. ㅎㅎ
그렇게 주말을 새하얗게 불태우고 월요일이 되었다.
첫째도 학교에 가고 둘째도 평소처럼 잘 노는 것을 보며 이제 끝났다는 생각에 밀린 집안일을 하며 마음편안한 오전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첫째에게 전화가 왔다. 아마 방과 후 수업이 다 끝난 모양이다.
- 여보세요. 하임아 다 끝났어?
- 응 엄마~ 나 걸어가고 있는데 머리가 아파서 혼자 못 가겠어. 나 좀 데리러 와주면 안 돼?
- 그래그래. 엄마가 나갈게 ㅎㅎ 어디쯤이야?
학교에서 걸어서 5분이면 오는 길이지만 늘 데리러 와달라고 하는 녀석이 귀여워 후딱 겉옷만 걸치고 뛰어나갔다. 머리가 아프다며 엄살을 부리길래 '그래. 평소 동생이 부러웠지. 엄마가 업어줄게' 하는 마음으로 집까지 업고 웃으며 돌아왔다.
첫째는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다가 잠이 들더니 깨어나고서는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혹시나 싶어 열을 쟀는데 이럴수가. 38.3도가 나온다. 오후 5시, 이미 병원들은 다 문을 닫았을 시간이다. 24시간 병원을 찾아보니 저녁휴게시간이고 저녁 6시 30분에 다시 오픈한다고 한다. 오픈 시간에 맞추기 위해 저녁은 우선 미뤄두고 아이를 태우고 출발했다.
- 엄마.. 얼마나 남았어? 나 너무 힘들어.
- 거의 다 왔어. 이제 주차만 하면 된다.
우웩! 우-웩 우--웨엑!
주차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뒷자리에서 첫째의 연달아 토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아이가 우웩 한번 할 때마다 차 시트 바닥에 토사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정신없이 들려왔다. 머리가 새하얘졌다.
- 하임아, 괜찮아?
- 엄마.. 나 토했어.(울먹)
- 괜찮아. 잠깐만 기다려. 엄마가 마트 금방 다녀올게.
병원 1층에 있는 대형마트에 달려가 키친타월, 물티슈, 쓰레기봉투를 사서 차로 돌아왔다. 휴지로 닦아 쓰레기봉투에 넣을 생각이었는데, 차 문을 열어 직접 보니 잠깐 치워서 될 양이 아니었다. 토한 것들을 보니 그동안 얼마나 속이 답답하고 힘들었을까 싶다.
밖은 깜깜하고 춥고, 아이는 옷이 젖어 축축하다고 했다. 일단 휴지를 잔뜩 뜯어 덮어두고 아이를 부축해 나왔다.
- 엄마.. 나 목말라.
- 그래그래. 토해서 목마르겠다. 물도 사서 가자.
서있는 것도 힘들어하는 아이를 마트 입구에 잠깐 쪼그려 앉아있게 한 후 얼른 생수를 사 왔다. 그리고 병원에 올라갔더니 입구까지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보였다. 겨울이라 다들 독감인가.. 일단 접수를 하고 안내 모니터를 보니 대기리스트가 띄워진 페이지가 끝없이 넘어간다.
[대기 50번 오O임]
드디어 아이의 이름이 화면에 떴다. 대충 한 사람에 2분씩만 계산해도 100분, 1시간 40분이다. 뒷처리 하느라 15분 늦은 대가 치고는 혹독하다. 하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다행히 빈 자리를 잡고 앉았고 아이는 힘없이 내게 기대 있었다. 아이는 끊임없이 "엄마 나 힘들어" 하며 울먹이다가, "엄마, 물 줘." 를 반복했고, 걱정될 정도로 물을 벌컥벌컥 마셔 어느새 생수 한 병을 다 비웠다.
엄마, 나 또 토할 것 같아.
- 그래? 얼른 화장실 가자.
급히 아이를 부축해 건물 복도로 나가 화장실로 향했다. 그때였다.
- 우엑 우엑 우에엑!
아이가 내 팔에 기대어 등을 새우처럼 구부리고 작은 몸을 들썩거렸다. 이미 먹은 것은 다 토해내서 나오는 것은 온통 물뿐이었고, 건물 복도에는 아이가 토해놓은 물이 우리의 발걸음을 따라 물길을 만들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아까 다 토해내서 물만 토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화장실에서 마저 남은 물을 게워냈고, 엉망이 된 복도를 지나 비틀비틀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 아이를 의자에 앉히고 수납대에 계시는 간호사님께 봉지와 휴지, 물티슈를 얻어 복도로 나갔다.
대기 인원이 많아서 복도에도, 계단에도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득 서 있다. 그 누구도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지 않았다. 그냥 그럴 수 있는 일이라는 듯무심한 그 표정들이 더 위로가 되었다. 아직 병명을 듣기 전이었지만 혹시나 전염성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그리고 어린아이들이 많이 올 텐데 하는 생각에 휴지로 닦고 또 닦았다. 바닥도 닦고, 벽에 튄 곳까지 다 닦아냈다.
그리고 또다시 병원에 들어와 대기. 집에서 6시에 출발했는데 8시 40분이 되어서 겨우 진료를 볼 수 있었다.
- 증상을 봐서는 장염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요. 요즘 독감이 유행인데, 아이들은 독감이어도 구토를 하기도 하거든요. 아직 열이 난 지 24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독감검사를 해도 결과가 제대로 안 나오니까.. 만약 내일까지 열이 이어지면 검사를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약국에 들렀다가 차로 돌아왔다. 평소 앞자리에 아이를 태우지 않지만 뒷자리에 토사물이 가득해 도저히 태울 수가 없었다. 아이는 앞자리에서 거의 쓰러지다시피 잠이 들었고, 마중 나온 남편이 아이를 안아서 침대 방까지 옮겼다.
집에 돌아오자 그제야 온몸의 긴장이 풀리는지 허기가 느껴졌다. 그때였다.
- 엄마, 나 또 토할 것 같.. 우엑!
새하얗게 밝은 형광등 아래, 침대 바깥으로 머리를 내놓고 아이가 또다시 토하고 있었다. 병원 복도를 닦으면서도 괜찮았던 마음이 울렁이기 시작했다. 금요일부터 둘째의 병간호로 몸이 지칠 대로 지쳤고, 갑작스러운 첫째의 열로 저녁도 못 먹은 채 병원에 달려가고, 구토한 것을 뒷수습하고, 병원 복도를 닦던 시간들을 다 이겨내고 정말 이제 아이만 잠들면 밥 먹고 조금 쉬어야지 했던 터였다.
침대 위에 깔아놓은 매트, 침대, 난방텐트, 바닥의 러그 곳곳에 아이의 토사물이 튀는 모습이 슬로 모션으로 보였다. 정말 몸이 부서질 것만 같고 이젠 정말 울고 싶었다.
하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난방 텐트의 뼈대 하나하나를 다시 빼내서 접고 또 하나를 빼내고.. 하다 보니 누워있는 아이 위로 텐트천이 덮였다. 아이는 이제 좀 괜찮아졌는지 "엄마, 텐트가 나를 완전히 덮었어." 하며 킥킥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안방을 치우는 동안, 남편 역시 차로 가서 뒷수습을 했는데, 남편도 사투 중인지 마당에서 한참이나 물로 씻어내는 소리가 났다.
내가 청소를 하는 동안 아이는 쓰러지듯 잠이 들어 있었다. 하도 토한 것들을 치우다 보니 나도 속이 울렁거리고 쓰러질 것 같았지만 밥이라도 먹어야 힘을 낼 것 같아 남편이 해 둔 양배추 덮밥을 조금 먹었다. 샤워를 끝내고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자리 앉았는데 갑자기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화장실로 달려가 늦은 저녁으로 먹은 것을 다 토해냈다. 목이 막히고 코가 따갑고, 눈물이 났다. 그 와중에도' 하임이도 이렇게 어지러운 기분을 느끼며 토할 때 굉장히 괴로워겠구나.. 힘들었겠구나.' 하는 너무나도 엄마 같은 생각이 들었다. 토하고 난 후 속은 편해졌지만 극심한 두통이 몰려왔고 침대에 누워 순식간에 잠에 들었다.
다음날, 둘째는 여전히 껌딱지에 칭얼거림이 심했지만 아이들의 증상은 많이 나아졌고, 나는 점심시간에 남편에게 아이들을 부탁하고 잠깐 누워 기절한 듯 3시간을 한 번도 깨지 않고 잤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잤는데도 컨디션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치 3프로 정도 배터리가 남은 상태에서 3시간 충전을 했는데 간신히 9프로 정도 된 느낌이랄까..
그렇게나마 남편과 번갈아 잠을 자면서 5프로씩, 10프로씩 누구 하나 방전 되지 않도록 쪽잠을 자며 충전을 했다. 남편도 너무 쓰러질 것 같았지만 '여기서 지면 다 죽는다'라는 비장한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 가족의 2024년 마지막 주, 특히 절정이었던 12월 31일은 기억도 없이 사라졌다.
이번 경험으로 느낀 것 네 가지가 있다.
첫째, 육아에서 가장 힘든 때는 누군가 아프기 시작할 때다.
순식간에 일상이 무너진다. 아이들이 낫고 나서도 나와 남편은 한동안 일상생활로 돌아오지 못했다.
둘째, 아이가 여럿이면 병간호 기간도 길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아이 하나만 6년간 키우다가 두 아이를 키워보니 늘 한 아이가 나을 때쯤 다른 한 아이가 아프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이미 녹초가 된 몸으로 또다시 병간호를 시작해야 한다.
셋째, 그나마 육아휴직이 우리를 살렸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래도 휴직 중이라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였다.
만약 우리가 지금 맞벌이 상태였다면? 혹은 한 명이 회사에 나가고 한 명이 아이들을 계속 돌봐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이렇게 지친 몸을 끌고 또다시 아침에 출근하고 하루종일 일하고 저녁에 돌아와 육아와 집안일을 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면?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나마 두 사람이 휴직 중이니 겨우 번갈아서 조금씩 쉬며 버텨낸 것 같다.
넷째, 배려, 배려 또 배려.
정말 나도 죽을 것 같지만 상대도 그만큼 힘들 것을 알기에 서로 조금이라도 쉴 수 있게 배려해 주었기에, 교대할 때마다 고생했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던져가며 겨우 지낸 것 같다. 이마저도 육아휴직이 없었다면 마음의 여유가 더 없었겠지.
그래서 결론은 결국 부부 동반 육아휴직 강력추천이다. 특히나 아직 제 앞가림 못하고, 면역력이 약한 어린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근데 아이가 또 둘 이상이라면..?
무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