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잡곡자매 Jun 14. 2024

첫째에게 임밍아웃하던 날(1)

아기 천사에게 편지가 왔어요


**글을 읽기에 앞서 부탁의 말씀드립니다.

이 글은 어린이들에게는 꼭 비밀로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동심을 함께 지켜주세요 :-)





- 아줌마 혹시 하임이 엄마예요?

- 응 맞아. 어떻게 알았어?

- 핸드폰 화면에 하임이랑 하루 사진이 있어서 알았어요. 저 하임이랑 같은 학원 다니는 언니예요.


 근데 아줌마, 하루가 진짜 아기 천사 편지 보냈어요?

- 어머, 어떻게 알았어?

- 하임이가 비밀이라고 하면서 말해줬어요. 우와. 진짠지 아닌지 헷갈렸는데 진짜네요!


학교 건물 앞에서 하임이의 하교를 기다리는 동안 어린이 한 명이 내게 다가와 아기천사의 편지를 받은 것이 진짜인지 묻는다. 하임이보다 한 살 많은 2학년이라 믿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아주 태연하게 연기를 했더니 금세 눈빛이 초롱초롱해진다. 귀엽고 순진한 어린이들 같으니라고.


아기 천사의 편지를 받은 이야기를 하자면 작년 이맘때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부부는 몇 년째 둘째에 대한 고민을 하며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 고민한 이유는 아주 복합적이었지만 그중에서도 큰 비중은 하임이었다.


부모 눈에 어느 자식이 안 예쁘겠냐만은, 하임이는 정말 너무나 다정하고 사랑이 많은 아이였다.

말도 못 하는 어릴 때에도 친구가 놀러 오면 자기 의자를 빌려주고 바닥에 앉던 아이. 친구가 울고 있거나 속상해 보이면 자기가 아는 온갖 단어를 총 동원해 위로하고, 고구마며 사과를 꼭 한입 크기로 베어내 개들과 한입씩 나눠먹곤 하고..내가 일하거나 바빠서 식사에 늦으면 내 밥그릇 위에 숟가락으로 밥을 한 숟갈 떠서 반찬까지 올려두던 아이.


떼를 쓰고 울법한 상황에도 말로 설명만 잘해주면 "구래? 알아떠~" 하며 혀 짧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이해해 주고, 즐겁고 신나는 일이 있을 때면 눈을 빛내며 온몸으로 신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에 나는 늘 고맙고 행복해서 자주 눈물이 났다.


형이 있는 남편과 남동생이 있는 나는, 좋고 나쁨을 떠나 성장과정에서 형제자매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고 있다.

그래서 둘째를 갖는 선택이 하임이에게도 분명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지금 하임이의 모습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닌지가 가장 두려웠다. 6년간 외동으로 살아오다가 동생이 생기면 자신에게 집중된 사랑과 애정이 분산되는 것을 섭섭해하지는 않을지, 속상한 기억으로 남지는 않을까도.


게다가 6살까지 하임이는 꾸준히 '동생 극구 반대'파였다.




둘째를 갖기로 계획하면서 하임이가 그런 마음을 느끼지 않게 많은 관심과 시간을 보내기로, 남편은 내 껌딱지인 하임이를 위해 둘이 자주 데이트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서포트하겠다고 약속했다.


뱃속 둘째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 감사함과 동시에 하임이에게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하면 좋을지가 머리에 가득했다. 마냥 어린 나이도 아니고 뭘 좀 아는 나이이다 보니 유독 신경이 쓰였다.


그러던 어느 날, 7살이 된 하임이가 돌연 태도를 바꿨다.

- 엄마, 나 이제 동생 갖고 싶어.


마침 임신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확인한 때였으니 정말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 그래? 그동안 아기 천사가 우리 집에 와도 되냐고 몇 번 찾아왔었는데 엄마가 안된다고 했는데~

- 정말? 아기천사가 왔었어?

- 응~ 엄마 꿈속에 몇 번 왔는데, 우리 집은 하임이만 키울 거라서 다른 집으로 가라고 했어

- 나 이제 괜찮아. 우리 집에 오라고 해!!

- 또 오려나 모르겠네. 혹시 또 오면 그때는 우리 집에 와도 된다고 말해줄게

- 응 엄마 근데 좀 많이 안 우는 아기 천사가 오라고 해줘~


뜻밖에 하임이와 대화를 하다 보니 어떻게 동생의 존재를 알릴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기 천사가 하임이에게 보내는 편지와 며칠 전 하임이가 휴게소에서 사고 싶어 했던 강아지 인형을 선물로 준비했다.


나이가 좀 있는 채로 임신을 해서인지 임신 초기 하혈도 몇 번 있고, 입덧도 심해 마른 체형인데도 살이 3kg가 빠지는 둥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안정기인 12주가 지나고 14주차를 앞둔 주말, 더 이상 하혈도 없어 마음을 좀 놓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을 먹은 후 남편과 시그널을 몇 번 주고받은 후 현관문을 열었다 닫았다. 그리고는 놀란 목소리로 하임이를 불렀다.


하임아! 현관문 열어봐. 하임이한테 뭐가 온 것 같은데?


현관으로 달려간 내복바람의 하임이가 커다란 강아지 인형 박스와 편지를 들고 상기된 얼굴로 나타났다.

 편지 봉투를 열어 한참이나 편지를 읽는다. 이미 다 읽고도 남았을 시간에도 한참 편지를 들여다보며 집중한 아이의 얼굴을 살피며 남편도 나도 긴장감이 가득하다.

싱긋 웃는 것 같기도 하고, 당혹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긴장한 것 같기도 한 하임이의 얼굴. 좋은 걸까? 놀란 걸까? 도무지 어떤 표정인지 알 수가 없다.

곧이어 하임이는 아무 말하지 않고 편지를 남편에게 들고 가서 직접 읽어보라는 듯 넘겨준다.


- 오?? 오!!! 진짜로?


남편이 놀란 척 연기를 하자 그제야 하임이가 놀란 마음이 풀리는지 살짝 웃는다. 남편이 하임이를 번쩍 들어 올려 한 바퀴 비잉 돌며 우와아아 하며 소리를 지르니 활짝 웃는다.


- 하임아 기분 어때?


남편이 묻자 쑥스러운 듯 말없이 양손으로 따봉을 만들어 보인다. 신난 얼굴로 인형에 건전지도 넣어보고 너무너무 귀엽다며 감탄하고, 편지도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본다.

그리고는 다 함께 아기 천사에게 태명과 하고 싶은 말 등을 답장으로 써서 현관 앞에 다시 내놓았다.

태명은 하루라고 지어주었다. 보리, 콩, 밥(하임이의 태명)이를 합쳐 늘 ‘잡곡밥 자매’라 불러왔는데 동생까지 합쳐 ‘잡곡밥자매의 하루’ 라며 셋이 아주 대단한 아이디어라도 낸 양 기뻐하면서-

회사 로고가 나와서 부득이하게 가렸다

(궁금하거나 하고 싶은 말: 인형 갖고 싶은 거 어떡깨 알았어?)


남편과 하임이가 기쁨의 대화를 나누는 동안 갑자기 왈칵 이상한 느낌이 와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속옷이 피로 흠뻑 젖어있다. 그동안 보지 못한 많은 양의 하혈이다.

놀란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고 남편에게 조용히 이야기를 한 후,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를 했더니 바로 와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한다.


- 하임아, 엄마가 배가 좀 아픈데.. 우리 같이 잠깐 병원 좀 다녀오자.


하임이는 내복 위에 잠바를 걸쳐주고, 우리도 신발만 신은채 서둘러 차를 탔다.

9시가 넘어 이미 밖은 깜깜 했고 남편은 저녁을 먹을 때 술을 한잔 한 터라 내가 운전을 직접 해야 했다.

화장실에서 본 광경이 자꾸 떠오르면서 아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운전대를 잡은 손이 덜덜 떨리고 자꾸 눈물이 차올랐다.


‘하루야, 건강하게 잘 버텨주라. 제발’




이전 17화 제주에서 테니스를 시작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