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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곡자매 May 31. 2024

제주에서 테니스를 시작했다

서라포바가 되고 싶어요.

제주에 오자마자 등록한 테니스 수업을 듣기 시작한 지 어느덧 두 달 반이 지났다.

매주 월, 목요일마다 오전 10시 20분부터 20분간 테니스 수업을 듣는다.


첫 주에는 라켓의 그립을 잡는 법과 스텝 등의 기본자세, 이어서는 포핸드와 백핸드로 공을 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라켓을 두 손으로 쥔 채 두 발로 폴짝 스텝을 가볍게 뛰고(스플릿 스텝) 오른쪽으로 세 번의 스텝을 더 움직이며 거리를 맞춘다. 두 번째 스텝에서는 라켓을 쥔 오른손과 몸통을 오른쪽으로 돌리고 왼손은 앞으로 뻗어 공을 칠 준비 자세를 한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스텝으로 공과의 거리를 맞추고 라켓을 휘둘러 공을 친 다음 어깨너머에 라켓이 도착하면 완성.

 

테니스 선수들의 영상을 보면 공을 치는 것이 이렇게 잘게 여러 자세로 나눠진 것을 모를 만큼 찰나의 순간인데 초보에게는 이 기본 동작이 여간 까다로운 자세가 아니다.

두 번째 스텝에서 오른손을 옆으로 옮길 때 팔과 몸통 사이는 주먹이 하나 들어갈 정도가 되어야 하고, 팔을 뒤로 돌리는 정도, 라켓을 든 손목의 각도, 라켓을 돌리는 방향 등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맞춰져야 탕! 하면서 공이 제대로 맞아 쭉 뻗어 나가는 쾌감을 느낄 수 있다.


하임이가 나에게 얼마 전에 이런 말을 했다.

- 엄마, 선생님들이 하는 말 중에 제일 어려운 말이 뭔지 알아?

- 뭔데?

- 적. 당. 히. 봐가면서. 도대체 적당히가 얼마큼 하라는 거야?


정말이다. 테니스를 칠 때에도 적. 당. 히 봐가면서. 관절을 꺾어야 하는데 도무지 그 적당히가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몸에 잘 익지 않았다. 공을 향해 라켓을 휘두를 때는 나이키 로고처럼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는 각도로 뻗어야 하는데, 동시에 몸통을 회전시키며 그 힘과 방향을 이용해야 한다.

라켓을 휘두를 때는 나이키처럼!


오히려 수업 초반에는 금방 잘 배워서 친다며 코치님께 칭찬을 많이 들었었는데 요즘은 이렇게 쳐도 저렇게 쳐도 잘못된 자세가 교정이 되지 않아 정체기다. 자세 영상도 많이 찾아보고 의식적으로 고쳐보려 해도 그럴수록 오히려 점점 더 자세가 산으로 간다.


- 회원님, 임팩트(라켓이 공을 치는 순간) 후에 팔을 몸 쪽으로 당기시면 안돼요. 앞에 큰 나무가 하나 있다고 생각하고 안듯이 라켓 헤드만 바깥쪽으로 이렇게, 이렇게요.


코치님이 보여주는 시범에 따라 몇 번 따라 해본다.


- 네네 맞아요! 그렇게요. 다시 한번 쳐볼게요~


하지만 그때뿐이다. 코치님이 공을 넘겨주면 또다시 나는 라켓 앞의 바보가 된다.

라켓을 휘두를 때 몸이 자연스럽게 회전되어야 하는데, 팔을 몸 쪽으로 잔뜩 당기고, 어깨도 들썩 따라 올라가 상체만 앞으로 쏟아지는 우스운 모양새가 되는 것을 나도 느낀다.

어깨를 신경 쓰면 스텝이 엉망, 스텝을 신경 쓰면 몸통을 안 돌리고, 몸통을 신경 쓰면 이번엔 팔목을 이상하게 꺾으며 라켓을 휘두르는 식으로 하나를 고치면 또 다른 하나가 고장 난다.


- 괜찮아요 회원님!


내가 친 공이 팅 소리를 내며 떨어지자 코치님이 앞에서 계속 용기를 주신다.


'코치님 제가 괜찮지가 않아요..'




이렇다 보니 내가 친 공이 정말 중구난방으로 날아다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지고 말았다.


수업 중간 잘못 받아친 공이 유난히 높이 날았다. 붕 나른 공은 코치님의 머리 위를 훌쩍 넘어 홈런을 맞은 야구공처럼 날아가고 있었다. 그쪽에 한 여성 회원분이 다른 코치님과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어 불안한 마음으로 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시력이 안 좋아 어느 순간부터는 공이 정확히 보이지 않았는데 잠시 후 여성분이 얼굴을 두 손으로 움켜쥐는 것이 아닌가.

코치님도 나도 깜짝 놀라 수업을 멈추고 뛰어갔다.


- 헉.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 아 네.. 괜찮아요. 괜찮아요. 수업 들으세요.


여성분이 한쪽 눈 부위를 손으로 감싼 채 나머지 한 손으로는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이야기하셨다.

마음이 불편한 채 남은 수업을 하고, 바닥에 떨어진 공을 주워 정리한 후 여성분을 찾으러 두리번거렸다.

여성분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함께 경기하는 분들이 무리 지어 앉아 계셨고, 그 한가운데 여자분이 얼음주머니로 눈가를 마사지하고 계셨다. 내가 다가가자 모두의 난감해하는 듯한 눈길이 느껴졌다.


- 많이 아프시죠. 정말 죄송해요.

- 아니에요. 괜찮아요. 제가 여기 서있던 게 잘못이에요.

- 아.. 어떡하지. 혹시라도 무슨 일 있으시면 저희 코치님께 전해주세요.


얼음주머니까지 대고 계신 모습을 보니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으니 당황해서 나오는 대로 아무 말이나 뱉고 죄송하다는 말만 연발하다가 코트장을 나왔다.

테니스를 치시는 부모님이 가끔 경기 중에 공을 맞은 팔과 다리에 멍이 드신 모습을 본 것이 떠올랐다. 얼굴에, 그것도 눈가에 멍이 드시는 건 아닌가 싶어 불편한 마음이 가득하다.


마침 테니스장 앞에 있는 카페가 눈에 띄었다. 한라봉 주스와 녹차카스텔라를 하나씩 사서 다시 코트장으로 향했다.


- 아까 다치신 분 혹시 어디 가셨어요?

- 아 네. 잠깐 화장실 가셨어요.

- 이거 아까 다치신 분 돌아오시면 좀 전달해 주세요. 너무 죄송해서.

- 아이고..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감사해요.


빵과 음료를 대신 전해받으신 분이 대신 감사인사를 했다.

정말 아까 그분이 얼음주머니를 대고 계신 모습을 마주했을 때에는 너무 미안한 마음에 도망이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렇게나마 성의 표현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테니스 시합 참가 모집이나 클럽 모집 공지를 보면 지원 조건에 구력이 최소 1년이고, 어떤 경우는 3년인 경우도 많다. 능력치가 아니라 시간을 본다는 것은 그만큼 기본기를 다지는 것이 오래 걸리고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거겠지.


나는 아직 클럽에 지원서도 내밀지 못할 만큼 갈 길이 멀구나 하고 생각하던 차에 작은 사고(?)까지 치니 다시 한번 겸손해진다.

테니스복은 또 왜 이렇게 예쁜 것들이 많은지 사그라들었던 쇼핑욕이 테니스복으로 화르르 옮겨 붙어 결제 직전까지 가지만 이 겸손한 마음이 쇼핑욕까지 조용히 잠재운다. 옷을 번지르르하게 입으면 막상 왕초보인 실력이 더 부끄러울 것 같아서.


아직은 트레이닝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가 어울리는 실력이지만 언젠가 나도 예쁜 테니스 치마를 입고, 모자도 쓰고, 누가 봐도 테니스장에 가는구나 짐작할 법한 모습으로 테니스장에 가는 날이 오겠지.


아. 테니스 잘 치고 싶다.

서라포바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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