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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곡자매 Jun 21. 2024

첫째에게 임밍아웃 하던날(2)

아기 천사에게 편지가 왔어요

**글을 읽기에 앞서 부탁의 말씀드립니다.

이 글은 어린이들에게는 꼭 비밀로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동심을 함께 지켜주세요 :-)



1편 보러가기: 첫째에게 임밍아웃 하던날(1)





엘리베이터에 붙어있는 안내문을 보니 주말 야간 진료는 평소 진찰을 받던 2층이 아니라 3층 분만실 층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이미 몇번이나 방문했던 병원이지만 어두운 밤에 분만실 층에 도착하니 처음 와보는 장소처럼 잔뜩 긴장이 됐다.

데스크에 가서 하혈이 있었던 시간과 양, 배의 통증 등 증상을 간략히 이야기하고 진료실로 들어갔고, 마침 담당 선생님이 오늘 당직이었다며 곧이어 들어와 초음파검사를 포함해 몇 가지 진찰을 해주셨다.


- 많이 놀라셨죠? 출혈이 있을 수 있는 이유는.. 피고임이 있거나 경부에 상처가 있거나 하는 등의 이유가 있는데 환자분은 지금 그 두 가지 경우는 다 아니요. 출혈이 생기는 이유는 워낙 다양해서요.. 현재 진료로는 이유를 알 수가 없네요. 우선 초음파로 보기에는 아기도 잘 있고.. 심장 소리도 이상 없어요.

- 그래요? 다행이에요.

- 집에 돌아가신 이후에 갈색 출혈이 있으면 남아있던 피가 나오는 거라 괜찮고요. 빨간 출혈이 있으면 새롭게 출혈이 발생한 거라 그때는 다시 병원 방문 하셔야 해요. 당분간은 안정 취하며 푹 쉬시고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말에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지만 현재 아기가 이상 없이 잘 있다고 하니 불안했던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초음파 사진을 손에 들고 진료실을 나왔더니 남편 얼굴이 사색이 되어있었다.


- 어떻대??

- 지금 출혈 원인은 정확히 모르겠다고 하시고, 초음파 봤더니 아기는 잘 있대.

- 그래? 아.. 다행이다. 담당선생님까지 호출해서 들어가길래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깜짝 놀랐어.

- 마침 담당선생님이 오늘 당직이셨나 봐. 놀랐구나 ㅎㅎ


- 하임아, 이거 봐. 엄마 뱃속에 정말 아기가 있대!

손에 들고 있던 초음파 사진을 하임이에게 건네주었다.

어쩌다보니 바로 초음파 사진까지 공개

- 여기가 머리, 배, 다리인가 보다. 아기 모양처럼 보이지?

- 우와! 헤에~??


남편이 옆에서 초음파 사진을 가리키며 알려주자 혀를 내밀며 눈이 동그래진다.


남편은 졸려하는 하임이를 안고, 나도 조심조심 걸어서 병원문을 나오니 아까와는 다르게 상쾌한 밤공기가 느껴진다. 별일 없이 집에 돌아가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엄마, 아까 우리가 아기 천사한테 답장 쓴 거 가져갔을까?

차가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서자 하임이가 갑자기 기억이 난 듯 묻는다.


- 그러게~ 가서 한번 확인해 보자.

- 응 내가 제일 먼저 가서 확인해 볼래. 엄마아빠는 엘리베이터에서 내 뒤에 내려! 내가 제일 먼저 내릴래!

지하 1층, 1층, 2층.., 그리고 5층.. 띵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우리 집 문 앞으로 뛰어간 하임이가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키며 발을 동동 구르며 외친다.


- (답장이) 없!! 어!!

내놓은 답장이 없어져서 너무 신기한 하임



당연히 있을 리가 없다. 병원에 가려고 경황없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와중에 하임이가 내놓은 답장이 눈에 띄었고 하임이가 엘레베이터에 타는 사이에 집어 냉큼 잠바 주머니에 넣었으니까. 나의 순발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하임이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아파트 복도에 기대 한쪽 다리를 꼰 채 중얼거린다.


- 여기(아파트 계단)로 왔을 텐데~~ 투명 인간 마법을 쓴 건가?

- (현관문을 열다 말고 멈칫) 꿈인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하임이의 혼잣말에 남편과 마주보고 입을 꾹 다물고 웃음을 참았다.


좋은 일로 병원에 방문한 것은 아니지만 마침 서프라이즈를 한 날 이렇게 함께 병원에 가서 초음파 사진을 보고, 아기 천사에게 쓴 답장까지 사라진 것을 보게 되자 하임이에게는 아기천사의 존재가 더욱 선명해졌다.


하루는 그렇게 언니의 마음에 안전하게 착지 완료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아침, 잠에서 깬 하임이가 꿈 이야기를 해준다.


- 엄마, 나 어제 무서운 꿈 꿨어. 여우가 나를 엄청 꽉 물고 안 놔줬어.

- 정말? 하임이가 태몽 꿔준 거 같은데? 하임이 태몽이랑 비슷해!

- 그래? 내가 하루 꿈꾼 거야?

- 응. 엄마 하임이 가졌을 때에는 너구리가 엄마 다리를 물고 안 놔주는 꿈을 꿨거든. 둘이 태몽도 엄청 비슷하다.


나는 종교도, 미신도 믿지 않지만 태몽의 존재는 믿는다. 일년에 한번 꿈을 꿀까말까 한 내가 하임이를 가졌을 때 너구리가 다리를 꽉 물고 놔주지 않는 꿈을 꿨는데 눈을 뜨자마자 꿈이 너무 선명히 기억나서 이게 바로 태몽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아니나다를까 이번에는 하임이가 굉장히 비슷한 꿈을 꿨다고 하니 믿지 않을 수가.

(여우 태몽을 검색해 보니 자손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영리한 아이를 얻게될 태몽이라고 한다.)





이날 이후, 하임이가 유치원에서 만들어오는 모든 그림과 만들기에 아기천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는 아기 천사에 대한 상상과 기대가 가득했다.

아기 천사의 존재를 믿게된 것 뿐만 아니라, 존재를 알게된 순간부터 사랑에 푹 빠지고 말았다.

4월 요즘의 관심사 : 동생이 언제오나 궁금한 우리 가족
아기 천사.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언니가
너는 아기 천사였어! 그때 니가 움지기는 강아지 선물로 좃잔아!
언니에 동생으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누구보다 하루가 가장 소중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하임이의 그림에 늘 등장했던 아기 하루


하루가 8개월차가 된 지금도 하임이는 가끔 아기 천사가 동생으로 태어나 자기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신기해하며 감격한다.

그래서 학원언니에게도 아기천사가 편지를 보냈던 날을 기억하며 소중하게 비밀을 이야기 했던 거겠지.

 

영원히 하임이가 몰랐으면 하는 작은 우리의 비밀.

하임이의 아기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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