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내가
예술가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건 당연하게도 나의 능력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게으른 나의 생활태도에 대한 말이라 생각한다. 그저 내가 표현하는 단어로 말하자면 '잠수' 상태의 내게 누군가 건넨 말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떨쳐낼 수 없어서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아니 힘껏 잡아당기기로 마음먹은 짙은 우울의 상태가 될 때면, 나는 문자 그대로 잠수한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모습과 인간으로 가지는 무가치한 고뇌, 그리고 만족하지 못할 바에야 시작하지 않는 변명쟁이의 모습을 보고 던진 말이었을 것이다. 속된 말로 한량으로 하루를 지내는 내겐 무거운 수식어다. 나누면 배가 되는 감정들이 있다지만, 타인에게 한 입 베어 물어보라고 건넬 만한 대단한 것은 도저히 아니어서, 그럼에도 나도 모르게 주위에 자꾸만 내밀게 되는 우울이라서 그런 주기가 돌아올 때면 나는 겨울잠 같은 잠수로 들어선다. 때론 내가 내뿜는 이산화탄소의 냄새조차 역겨워지는 때가 있는 탓에, 내가 말하는 잠수는 멀어지라는 일종의 경고일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해두자면, 나는 일정한 주기로 찾아오는 미련한 그를 좋아한다. 고독은 맛있고, 외로움은 나의 무기다.
예술은 인류의 긴 역사와 함께해 온 고귀한 것으로 미천한 내게 갖다 붙이기에는 민망한 단어라 생각한다. 다만 역사적으로 증명된, 스스로를 괴롭히는 힘이 예술가로서의 재능이라면, 어쩌면 나를 이루는 커다란 조각은 제법 날카로울지도. 또한 천성적으로 배배 꼬인 심성이 바라보는 세상이 이토록 비관적이어서 타인의 하루에 불쾌함을 끼워넣는 재주가 있다. 내 앞에서 지었던 프런트 직원의 미소를 의심하거나, 멀어져 가는 고객의 등에 배꼽인사를 건네는 친절함이 낯설게 다가오는 건 전부 그런 이유 탓이다.
본능적으로 가진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과 낯선 언어의 웃음소리를 의심하는 경계심, 소심함의 인력이 끌어당기는 시선에 대한 적개심, 행동하지 않을 뿐이라며, 제 잘났다는 콧대를 세우는 자만심. 스치는 옷깃이 불쾌한 응어리 진 예민함. 가지지 못한 특별한 재능을 시기하는 질투심. 그리고 반복되는 '심'자가 영 거슬리는, 마음에 들지 않는 글 밖에 써내지 못하는 엉터리 글쓴이에 대한 증오와 그런 그를 미워할 수 있는 기저에 깔린 분노.
정리하여 이와 같은 것들이 예술가로서의 재능이라면 나는 썩 괜찮은 예술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며칠을 머무르기 결정한 숙소. 처음 봤을 때는 오래된 느낌의 조금 탁한 전구들이 줄 지은 차분한 느낌이 좋았다. 적당한 간격을 가지고 주기적으로 교체되는 가습기의 노력이 마음에 들었다. 분주한 직원들의 움직임과 종종걸음으로 걷는 짧은 보폭이 편안했다. 낯선 소리들에 차분해져서 보수적인 플레이리스트에 새로운 노래를 추가했다. 좋은 노래는 매일같이 찾아내도 끝없이 쏟아져 나온다. 모두 들어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내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은 것만 같아 아쉽다.
가지지 못한 재능을 보면, 장난감을 빼앗긴 어린아이처럼 고약해진다. 물론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으니, 뺏겼다는 설명은 내게 적합하지 않다. 내가 지닌 시기는 이질적으로 내가 낳는 초라한 글의 훌륭한 재료가 된다. 맛 없는 글의 원인은 본래 그리 싱싱하지 않은 재료 때문이라고 여긴다. 몇 줄의 문장으로 낳는 변명은 숨구멍을 틔운다. 내 글이 예술이 되진 않겠지만, 예술은 포장된 속 편한 공격수단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밝은 곳에서 무슨 글을 쓸 수 있는지 신경질이 난다. 귀에 꽂은 몇 백 번 돌려들은 익숙한 노래가, 익숙한 탓에 짜증이 솟구친다. 자고로 나 같은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은 빛이 차단되어야, 내 글에 어울리는 어두컴컴하고 눅눅한 공간으로 보호 받아야 글을 쓸 수 있다는 변명을 한다. 보기 좋게 교육된 친절함이 두렵다. 매끄럽게 닦은 입구가 미끄러운 듯 하다. 내 곁을 스치는 시선을 피한다. 떠나는 이들은 하나같이 소란스럽다. 24시간 열린 로비에 죽치고 앉아 근무자들을 보이는 면만으로 평가하며, 내뱉지 않는 오지랖을 떤다. 누군가가 떠오르는 짧은 머리의 왼손잡이가 거슬린다. 재미없는 진상을 떠는 동안, 통유리 바깥으로 차곡히 수분 적은 결정이 쌓인다.
아, 이로써 나는 다시 한 걸음 예술가에 가까워진다. 또 꺼내는 진부한 표현이 신물난다.
다만, 짧은 보폭은 여전히 편안했다. 카페트에 떨어지는 작은 발에 맞춰 종종, 하곤 입으로 소리 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