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처럼 얇은 집중력이 한 페이지도 온전하지 않아서 지나온 글자를 다시 읽는다. 필연적으로 늦어지는 독서 시간과 채우지 못한 목표량. 조금쯤 비워두고 지금에 집중하자. 내 말투처럼 느리게, 다듬어진 글에 매혹되며 지새우는 밤. 일정한 활자들이 파동처럼 느껴질 때, 한껏 기울어진 몸과 설렘. 새벽은 언제나처럼 고요하지만 무엇 하나 고요하지 않은, 그런 여름.
3.
뒷표지에 떠오르는 후유증.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 라는 허탄한 거짓말을 채우기 위한 책들의 뒤통수. 할당량 미달인 독서량은 감출 수 없고, 허탄한 시간만이 중첩된다. 독서가 깨우는 열등감. 애정해 마지않던 필명들은 못된 심보에 녹슬어 애증이 되고 다시, 비굴한 나는 이러한 문장을 낳는다. 늦은 마음에 흐르는 글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내 탓이지. 하얀 배경을 더럽히는 글들이 꼴 보기 싫다. 지운다. 못난 마음이 이것으로 지워지길 바란다.
4.
읽는다는 것이 두렵다. 왜냐 묻는다면 시릴 만큼 좋은 글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긴 고생 끝에 맺힌 열매 같은 글들을 하나 둘 먹다 보면 주름 없는 손등이 부끄러워진다. 나아가기 위해 읽을수록 벗겨지는 내 민낯엔 이성은 결여된 채, 비릿한 감정들만이 남는다. 그것이 비추는 문장들은 징그러운 벌레처럼 당신의 하루를 기어오르겠지.
오늘의 테두리는 여기까지. 이 모서리는 내일까지 닿지 않고, 지워진 시간들은 왼손의 스마트폰 화면 뒤로 숨겨진다. 복구되지 않은 밤들이 그리워질 때면, 언제나처럼 나보다 빠른 시간이 버겁다. 머리로 이해하지 못할 생각에 매달려 당신 등만 떠밀며 앞으로 보낸다.
핑계 한 번 참 길다. 예쁜 글에 베인 자존감이 반년 간 한 줄의 문장도 정말로 써내지 못했다면 핑계라는 단어가 적합할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5.
정수되지 않은 우울. 옛적에 썩어 문드러진 필터에는 녹슨 찌꺼기만 가득해, 오염된 숨을 털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