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의 마음의 거리
이번 어버이날은 전화 한통으로 끝이 났다.
어릴 적, 어버이날에 꽃을 사간 기억은 있다. 작은 손에 꼭 쥐고 간 카네이션 꽃바구니.
큰 맘 먹고 산 거였는데, 부모님의 반응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그날의 미지근한 온기가 마음 어딘가에 얼룩처럼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로 어버이날이 돌아와도 꽃을 건네는 일은 없었다.
습관처럼 지나가는 날이 되어버렸다.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내 행동을 조종한다.
어린이날이 다가오면 아이들에게는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려 애쓰지만,
어버이날은 그냥 그런 하루로 넘기고 만다.
그래도 올해는 호박즙도 준비했고, 용돈도 챙겼다. 겸사겸사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통화가 끝난 뒤엔 왠지 모를 공허함만이 남았다.
나는 어느새 부모님과의 통화가 두려워졌다.
엄마의 상태가 늘 불안정했으니까.
열 번 중 다섯 번 이상은 엄마의 목소리에서 흔들림과 걱정이 느껴졌고,
그게 하루를 송두리째 휘감았다.
감정을 망치는 전화 한 통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혼하면 부모의 마음을 더 이해하게 된다는데, 우리 엄마는 예외였다.
수화기 너머 엄마의 불안한 목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아빠의 무기력한 대답.
나는 가끔 그런 두 사람의 관계가 너무도 끈질기고, 그래서 더 슬프고 지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을 겪었고, 나는 지금껏 그 결정을 어느 정도 옳았다고 믿고 있다.
8살에 다시 재결합하지 않았더라면, 아빠의 인생도 더 찬란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때 재결합이 아닌 본인의 인생을 위해 더 냉정했어야 했을지도.
엄마의 병은 아빠의 인생을 잠식했고, 아빠는 술을 마신 날이면 어김없이 엄마 탓을 했다.
그 모습들을 지켜보며 자란 나는, 결국 사람 사이의 거리라는 것에 무뎌졌다.
맞지 않는 인연이라면, 더는 애쓰지 않고 흘려보내는 것이 익숙해졌다.
그러다 보니 지금, 어버이날에 전화 한 통조차도 용기가 필요하다.
사랑은 가깝다고 느껴지는 것만이 전부는 아닐지도 모른다.
때로는 거리에서부터 시작되는 마음도 있다.
지금 나는 그 마음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오늘, 그 마음을 용기로 바꾸려 한다. 조심스럽지만, 나만의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