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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쥐군 Mar 02. 2022

임신에 대해 안일했다.

#01 아이를 품는다는 것

혹자들이 조언해주길 임신 기간 동안에 아내의 심기를 거슬리면 평생 동안 구박받는다 했다. 사실 너무 많이 들어온 이야기지만 실제 나에게 현실로 다가왔을 때 이 부분은 액면대로 받아들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임신이 확실해지고 난 후 생각보다 빠르게 아내의 입맛은 크게 변화했다. 당장 김치를 못 먹는 것을 시작으로 평소 즐겨먹던 많은 음식들이 입에 맞지 않아 입맛이 떨어진 아내의 체력 보전을 위해 뭐라도 챙겨 먹여야 하는 상황에서, 인터넷이나 지인들이 말하는 무용담 같은 "어디 어디에서 무슨 음식을 공수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따위의 이야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매일 입버릇처럼 아내와 대화 시작과 끝에는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라던지 "당기는 음식 있어?" 같은 질문이 수없이 반복되었고, 아내는 언제나와 같이 "모르겠어.",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같은 답변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당장 일을 해야 하는 우리 부부의 입장에서 한 명의 컨디션에 큰 변화를 가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심적인 부담이 강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도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이 바로 임신 초기가 아니었나 싶다. 


어느 날 아내가 메신저로 링크 한 개를 보내줬다. 링크를 클릭해보니 안양 어딘가에 있는 만두 맛집을 소개하는 인스타그램 동영상이었는데, 기쁜 마음으로 40Km를 돌아서 퇴근하며 만두가 혹여 식을까 부랴부랴 귀가 후 아내의 말과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어? 진짜 사 온 거야?"라는 말과 함께 놀라움과 반가움이 묻어나는 표정.

다행히도 오랜만에 아내는 양껏 식사를 할 수 있었고, 어떤 만두가 입맛에 맞을지 몰라 모든 메뉴를 포장해온 나는 점점 더 뱃살이 늘어만 갔다.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첫 경험을 토대로 많은 일을 해오고 있다. 

첫사랑, 첫 번째 싸움, 첫 병원, 처음으로 먹어보는 음식, 처음 써보는 안경, 첫 번째 운전과 같이 모든 경험의 앞에는 첫 경험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첫 경험은 두 번째, 세 번째 경험으로 쉽게 이어지며 삶의 지혜와 경험으로 쌓여간다고 하지만 임신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대부분의 임신은 살면서 몇 차례 겪지 않으며, 이 모든 과정은 첫째 아이를 품으면서 첫 경험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임신이라는 한 단어에 대해서 첫 경험이라고 말하겠지만 실제로는 임신이라는 하나의 여정에서 수많은 첫 경험이 매일 여러 차례 반복된다. 


사실 나도 아내와 자녀계획을 이야기하고 임신 전까지만 해도 막연하게 임신이라는 단어 하나에 매몰되었으나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식사 문제와 같이 수많은 첫 경험으로 하나의 단어가 메워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내의 임신 기간은 약 40주 정도인데, 이 기간 동안 우리는 점점 부어가는 아내의 몸에 대해 계속해서 걱정했고, 부기를 빼기 위한 온갖 방법들을 도입해보았으며 돌아오지 않는 입맛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물론이고 점점 쌓여가는 허리 대미지를 해소하기 위한 공부와의 전쟁이었다. 

가장 아내가 힘들어했던 것 중 기억나는 것은 "엎드려 자보고 싶어"라는 것이었는데, 임신 기간은 물론 출산 후에도 꽤 긴 시간 동안 엎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아내는 잠자리에 대한 불편함이 상당히 컸으리라 생각한다. 

점점 부어가는 몸 때문에 날씬했던 시절에 입던 대부분의 못이 맞지 않거나 한 입만 먹고 헛구역질이 나오는 등 우리가 처음 생각해봤거나 상상해본 일들은 경험이라는 측면에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심지어 케바케라는 말이 얼마나 사람을 화나게 하는지도 이때 알게 되었다. 


모든 임산부가 가지는 감정과 신체 컨디션은 다를 것이다. 우리 부부 역시 그랬고 다른 부부들 역시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 누군가가 알려주는 정보는 최대한 수용하더라도 참고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일은 첫 경험이고 도전이 필요했다. 


다행히도 중기에 접어든 아내의 컨디션은 상당히 좋아졌다. 물론 몸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입덧이 조금 완화되었고 움직임에 있어 약간이나마 예전과 같은 기운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남편의 입장에서 꽤나 반가운 소식이었다. 

일부 임산부의 경우 극심한 입덧이 막달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해서 임신 초기의 입덧을 보고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대응책을 강구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18주가 넘어서면서 서서히 입맛이 돌아오는 아내를 보고 내심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이때부터 동네 산책이나 마실을 나가는 것에 대해서도 부담이 크게 줄어들었기에 이때 나는 이대로만 계속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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