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SGO 1
PC와 내 아버지의 월급이 공유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 건 금전적 가치이다.
1994년부터 지금까지 대중이 소비할 수 있는 수준의 PC의 가격은 150만 원에서 200만 원 사이였다.
IMF 시기에 회사를 옮긴 아버지의 월급은 2016년에 퇴직할 때까지 150만 원에서 250만 원 사이였다.
1997년 IMF가 왔을 때도 우리 집은 크게 영향이 없었다.
항상 경제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염색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사장님을 매우 고맙게 생각하였다.
이 전 직장과 달리 한 번도 월급을 밀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건 어머니도 같은 마음이셨고 나도 같았다.
몇 해전 어머니가 모아둔 아버지의 월급봉투를 보기 전까지 말이다.
항상 기본급이 최저임금보다 작았다.
아버지가 연장근로 또는 주말근무를 해야만 20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을 수 있던 것이다.
"씨발, 개새끼들..."
월급봉투를 보며 욕을 하는 내게 어머니는 무슨 일이냐며 물으셨다.
"아니, 요즘 직장인들도 종이봉투로 주면 얼마나 좋아.
은행계좌로 입금되니까 이렇게 추억이 없잖아. 추억이..."
고마운 사람으로 생각한 사장이 나쁜 놈이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정년퇴직할 때 고맙다며 회사에 떡을 돌린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40~50년대에 태어난 분들에게 지급된 노령연금은 충분히 지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아버지처럼 최저임금도 못 받거나 받아야 할 급여를 못 받은 분들이 많았을 것이다.
채권은 5년이 지나면 소멸되지만 저런 악덕기업을 단속 못한 정부의 배상금 성격으로 말이다.
각설하고...
이런 가정에서 PC를 갖는다는 것은 벤츠 자동차를 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친구가 가끔 가져오는 인쇄물도 처음 본 것과 비슷한 스토리였고
1995년에 사량용의 명작인 대하기정역사소설 "영웅문"을 접하고 푹 빠지고 말았다.
이때부터 고3 때인 1998년 겨울까지, 무협지 등 소설과 X-JAPAN에 빠져서 지냈다.
PC통신은 자극적인 소재의 글들을 제공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곳에서 엽기적이 그녀, 퇴마록 등 유명한 소설들이 창작되고 공유되었다.
나는 PC통신 세계의 1차 소비자는 아니었지만 2차 소비자로 만족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수능시험을 치르고 대학교 입학을 앞둔 1998년의 겨울방학 전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