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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정 Aug 12. 2021

오늘이 그날.

이렇게 잠자던 브런치를 깨우게 될 줄 몰랐네

불편해서 잠자리에 들지 못하는 밤이다. 확진자 수 증가 추세 이후에 한 동안 로컬 업무 여정이 없었다. 근 두 달만에 긴 지역 일정이 잡혀, 진주에 왔다. 최적화된 내 집 내 공간에 익숙해진 오감이 낯선 환경을 수용하지 못하는 거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에서 윤회하다 벌떡 자리를 털고 앉았다.


마침 숙소에 소박한 책상이 하나 있어, 침대로 끌어당겨 타이핑하기 좋은 자세를 잡아본 지금. 브런치를 열고 잠자던 하얀 지면을 불러왔다. 이런 날 쯤은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써도 좋지 않을까 싶다. 좀 졸릴 때까지 쓰고 싶은 말 쓰다가 스르륵 자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진주에 대하여

예전에 창원KBS에서 일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동료가 진주 사람이었고, 대학원에서 가까웠던 지인 분도 진주 사람이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작가. 아, 그리고 아주 아주 깔끔했던 성격. 다시 생각해보니, 그 깔끔하다는 인상은 '보수적'이었던 면을 그렇게 받아들인 게 아닌가 싶다. 그들의 생활태도가 그랬다기보다는 어떤 사안에 대한 판단에서 좋고 싫음, 할 일과 할 수 없는 일 등에 대한 판단이 명확했다. 여지가 없었다고 기억된다.

진주에 대해 오늘 보고 들은 바로 생각해 볼 때, 그들의 성향의 원류를 좀 알게 됐다랄까. 성급한 일반화일지도 모르지만, 뭐 자책은 말고 그냥 '일반화'해보련다. 예전에 진주 사람들은 진주성 내에 많이 살았다고 한다. 남강을 끼고 있는 진주성과 그 성내의 사람들이 성 밖으로 나와 마을과 도시를 만들며 지금의 진주시의 모습으로 진화되었다고 했다. 역사적으로 잦았던 왜의 침략과 그 방어를 위해 지형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이곳 사람들의 정서에는 선택의 여지가 적었던 기억이 남았을 것이다. 다양한 선택이 결여되었을 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간결해지고 어떤 면에서는 보수적일 수 있다. 촉석루에서 논개의 결단도 그리 나온 게 아닐까 상상해본다. 아무튼 그 깔끔했던 진주의 여성 둘,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요즘은 생각하는 것, 미루지 않고 바로 해요

진주로 내려오기 전날, 사과즙 1박스를 받았다. 4년 차 클라이언트이자 가끔 만나 깊은 이야기들을 나누는 분께서 보내주셨다. 톡으로 하셨던 말씀이 그랬다.


"맛있어서, 생각나서, 그냥 보내요. 요즘은 생각나면 미루지 않고 그냥 바로 행동으로 옮겨요."

박스를 열고, 사과즙을 꺼내서 차곡차곡 냉장고에 채웠다. 거의 비어있는 커다란 냉장고는 도어 포켓 칸 가득 찬 사과즙으로 두둑해 보였다. 1개를 뜯어 얼음 동동해서 마셔보았다. 달콤하고 향기로운 첫맛에 이어 말끔하게 넘어가는 뒷맛까지, 와... 사과즙이 이렇게 맛있었나 싶었다. 포장도 너무 이뻤는데- 맛까지 이러다니요. (사과즙 뒷 광고 아님)

나는 요즘 어땠나. 생각하는 것을 자주 묵히고, 삭히는 일도 잦다. 게으름이라기보다 '관조'랍시고 그냥 바라보기만 한다. 남의 일처럼. 딥 다이브 해서 그 색즉시공이고 공즉시색임을 맛보고 즐겨야 사는 즐거움일 텐데, 뭐하노.. 싶다. 아희야, 재 넘어 사리긴 밭은 지금 갈아야 하느니라. 거기서 밭이나 가는 행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이 중요해.



다시 듣는 Nirvana

친구 아들이 전자기타를 연주하는 동영상을 종종 공유한다. 연주곡들이 다 우리 시절 락이다. 그래서 그 시간의 열쇠를 얻게 된 나는 요즘 유튜브에서 이리저리 그 시절 음악들을 듣다 듣다 너바나에 귀착. 고여있다. 와우. 여전히 코베인은 아름다운 청년이구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음악이었다 정말.

이렇게 라떼에 빠진 중년이 되어가는 건가 싶은데, 너바나와 함께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냥 지금도 나중도 그들과 함께라면 Smells like teen spirit!


숙소 방음이 GG라서, 음악은 못 틀겠고 가져온 보고서나 봐야겠다. 근 한 달째, 끝까지 못 보고 숙제처럼 남겨두고 있다. 으흐흐 바로 잠들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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