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7.26-28,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속옷(underwear). 사전적 정의는 '겉옷의 안쪽에 몸에 직접 닿게 입는 옷' 혹은 '겉으로 나타나지 않은 가장 깊은 속이나 그런 내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부터 인간은 자신의 '그곳'을 노출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사실에 눈을 떴고, 나뭇잎으로 가리기 시작하며 옷이라는 것을 만들어 입었다. 옷의 역사가 속옷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속옷의 역사 역시 인류의 역사와 함께 변화해왔을 것이다. 그 역사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지만, 유럽 여행을 하며 속옷 - 특히 여자의 속옷에 대해 -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전세계에서 '자유'라는 수식어가 붙는 몇개 안 되는 도시 중 하나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을 때였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 이 도시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홍등가(red light district)로 향했다. 가이드북에서 본 대로 별 생각 없이, 관광지의 하나로 생각했고 역시나 깃발을 든 단체 관광객부터 삼삼오오 모여 여행하는 젊은 사람들, 유모차에 아기를 태운 가족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붉은 네온사인이 'SEX' 'PEEPSHOW' 같은 단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빛내고 있는 그 골목으로 들어가서, 내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커다란 가슴이었다. 폭이 1m나 될까 싶은 작은 골목 양쪽에는 정면이 유리문인 고시원만한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는데, 붉은 조명이 어두침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 방 안에는 작은 브래지어와 팬티만을 입은 여자들이 포즈를 취하며 서있거나 앉아있었다. 일부는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거나 스마트폰을 뒤적이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윙크를 하거나 손짓을 하며 들어오라고 유혹하고 있었다. 일부 방은 블라인드가 쳐져 있었는데, 방마다 침대와 샤워시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가 진행 중인 방들인 것 같았다.
저녁 9시, 해가 길어진 유럽은 아직 한낮이었고 사람들은 휘슬을 불며 여자들의 몸매를 감탄하거나, 유리창 속 여자들과 눈을 마주친 뒤 민망하다는 듯 얼른 눈을 돌리며 골목을 지나쳤다. 그러한 골목들의 끝에는 'CASINO', 포르노쇼를 볼 수 있는 극장들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줄을 서거나 가격을 물어보았다.
속옷은 일반적으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가리는 용도로 만들어지고, 또 그것을 사람들은 옷으로 가린다. 그러나 사실 속옷은 그 어느 옷보다도 보여지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지는데, 그 보여짐의 대상은 일반적으로 자기 스스로이거나 1인의 타자, 혹은 넓혀서 아주 소수의 타자에 불과하다. 물론 점점 속옷의 용도와 디자인이 다양해지고 있고 옷 너머로 보이기 위해 입는 속옷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아무리 유혹을 위한 목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옷 안에 가려진 채 살짝만 보여져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이 룰로부터 제외되는 대표적인 여성들로는 런웨이 위와 CF 속 모델들이 있는데 - 페멘(FEMEN, 상의를 탈의하는 방식으로 시위하는 페미니즘 그룹)같은 단체가 활발히 활동하는 지금같은 시대에 여전히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 도처에서마저 볼륨감있는 가슴과 엉덩이를 욕망의 대상으로 만들어 속옷을 팔려는 기업들이 도처에 널려있다는 것이 절망스럽지만 - 모델들의 모습과 암스테르담 홍등가 여성들의 모습은 그들이 속옷만 입은 자신의 몸을 공개하기까지의 과정이 가진 의미에서 굉장히 큰 차이가 난다.
네덜란드와 같이 성매매가 합법인 국가들은 - 독일이 2001년 성매매 합법화를 강행하며 내세운 논리와 같이 - 성매매를 금지한다고 해서 성매매가 근절되지 않으며 오히려 음성화되어 여성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일부(혹은 다수의) 성매매 여성들 역시 스스로 성매매 합법화를 외치며 노동권의 일부로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한국에서도 이 논쟁은 수십년째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성매매를 합법화하라는 성매매 여성들의 목소리를, 그들이 그 직업을 능동적으로 선택했고 자랑스러워하며 즐기고 있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성매매 노동자들을 포함해, 이들이 외치는 구호 가운데는 언제나 '생존권'이라는 단어가 포함된다. 이는 성매매라는 행위가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이를 막지 말라는 뜻일 뿐이다. 남성에게도 마찬가지인것처럼 성과 관련된 문제는 인간의 존엄성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성매매 여성들 스스로 당시에는 명확히 인지하지 못할지라도 신체적 그리고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남긴다. 성매매의 경험이 참전 군인, 혹은 고문을 당한 사람들과 비슷한 트라우마를 남긴다는 연구도 있다.
성매매 여성들이 이 업계에 발을 들이는 과정을 한국에서 알아본 적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저 잠시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개념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에서 시작하는데 생각보다 큰 금전적 보상에 놀라게 된다. 그 다음은 우연히 마음에 드는 손님과 2차를 나가게 되고, 그 비슷한 일이 한두번 더 벌어지면서 큰돈을 벌게 되면 완전히 발을 들이게 되는 과정이 발생한다. 그러다 나이가 들기 시작하면 더 이상 손님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게 되고, 일명 '보도'라 불리며 봉고차를 타고 다니면서 노래방과 오피스텔 등으로 손님을 받으러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몸을 팔아 큰 돈을 받아 챙겨 부귀영화를 누리느냐, 그것도 아니다. 성매매 산업 돈줄의 출처인 중년 남성들이 돈을 뿌리고 가고 나면 성매매 여성들은 그들로부터 받은 스트레스와 인격적 모욕을 그대로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이를 젊은 남자 호스트들에게 그대로 적용한다. 호스트 산업의 70% 수요는 일명 '텐프로', 주로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성매매 여성들이 채운다. 이 호스트들은 성매매 여성들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좀 더 수준낮고 저렴한 성매매 업소로 가서 풀어서, 결국 이 과정에서 돈은 이 산업의 중심에 서 있는 조직이나 조폭들의 손아귀로 다 들어가게 설계되어있다.
다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홍등가 여성들의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이들의 경우 위와 같은 성매매 구조를 넘어서 '인종'이라는 하나의 문제가 더 추가된다. 암스테르담 홍등가에서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 가운데 순수한 '더치(The Dutch)'는 극소수이며 대부분이 중동이나 동유럽쪽에서 온 외국인들이다. 이는 '난민(refugee)'이라는, 사실상 지금의 유럽을 둘러싼 모든 사회 이슈 중에서도 핵심으로 꼽히는 문제를 정면으로 관통할뿐만 아니라 심지어 '인신매매'라는 문제와도 관련된다. 동유럽 여성들은 성매매가 합법인 네덜란드와 독일로 팔려나가고 있다. 암스테르담 시민들이 누리는 성적 자유는 인신매매로 팔려온 가난한 나라의 여성들의 신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의 국가라고 하지만 사실상 세금을 쉽게 걷고 단속을 쉽게 하기 위해서라는 비판을 받는, 네덜란드의 성매매 자유화는 사실상 이렇게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들의 성판매에 기반한다.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으로 소개되며 가이드 투어에서 빠지지 않는, 그저 신기한 하나의 현상으로만 소개되는 홍등가에 밤이 내려앉으면 남자들 - 특히 노인들은 - 여성들의 유리문을 두드려 가격을 흥정한다. 'Fucking photographs, Respect ladies'와 같은 문구들을 붙여놓고 사진 촬영을 금지하지만, 이 공간에서 여성들을 존중하는 남녀노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쇼윈도 속에 들어가있는 속옷만 입고 움직이는 인형을 감상하면서, 그리고 그 속옷 너머를 상상하면서, 사람들은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은 채 그들을 인간이 아닌 육체로만 판단하고 지나친다. 얘는 얼굴은 예쁜데 가슴이 너무 작네, 얘는 가슴은 큰데 다리가 너무 뚱뚱하네...
심지어 '핍쇼(Peepshow)'라는, 단돈 2유로에 2분간 여성의 포르노쇼를 구경할 수 있는 쇼도 있었다. 고민하다 들어간, 한평밖에 안돼보이는 작은 공간에는 불투명한 유리창이 있었는데 동전을 넣으니 유리창이 투명해지면서 원통 안에서 음악에 맞추어 스스로의 몸을 만지는 나체의 여성을 볼 수 있었다. 이미 속옷만을 입은 여성들이 거리에 즐비한 상황에서, 바라보기만 하고 돈은 쓰지 않는 관광객들의 사이에서, 적은 돈이라도 쓰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 한꺼풀마저 벗어버려야 했던 것이다.
원통을 둘러싼 유리창에는 나처럼 2유로를 지불한 남성들의 얼굴이 가득했는데, 그들은 여성이 자신의 유리창 앞에서 몸을 만지자 환호하며 소리를 질렀다. 여성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내 쪽으로 몸을 돌렸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예의인지 배우지 못한 나는 그저 당황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녀뿐만 아니라, 수많은 스크린 중에서 유일한 여성이었던 나 역시 관찰의 대상이 되었는데, 스크린 속 남성들은 당황한 나의 표정을 재미있다는 듯 지켜보았다. 그녀는 내 표정에서 어색함을 발견한 듯 얼굴에서 미소가 옅어더니 몸을 돌렸고, 잠시 뒤 내 눈 앞의 스크린은 2유로를 더 지불하라는 의미로 불투명하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