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 보고 삽시다 ]
"오래 보고 삽시다."
같이 밥 먹고 헤어지며
다정히 건네받은 한 마디에
오늘따라 새삼스레 왜
가슴이 뭉클해졌을까
오래 보고 살려면
이뻐하려 너무 애쓰지 말고
마을 옆 개천물
강돌 어르고 흘러가듯
인연 따라 사는 게 답이겠지
애쓰면 애달파지고
애달프면 이내 미워도 지니까
오래 보고 살려면
저 있는 그대로 두고
무덤덤히 사랑해야지
그러니 그대,
나 애달복달
이뻐라 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그대
가만히 바라보나니
저기 앞산 자리 지키듯
한결같이 내 곁에
있어만 주오
"그런데 사장님..."
얼마 전 내가 운영하는 파스타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노신사 분이 계산을 하고 나가시면서 말을 건네셨다. 특별한 관계는 아니지만 한 마을에 살면서 저녁시간 가끔 단골카페에서 맥주 한 잔 동석을 하곤 했었다. 평소 말수가 적은 편이시지만 한 마디 이야기를 꺼내게 되면 섬세한 의견을 단정하게 내어놓는 매력을 가지신 분이다. 항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담긴 그의 균형 잡힌 언행 때문에 몇몇 어울려 사는 우리는 그를 '젠틀맨 사장님'이라고 호칭해오고 있었다.
"장사장님께서 '앞으로도 우리, 오래오래 보고 삽시다.'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순간 왠지 마음이 뭉클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젠틀맨사장님의 눈이 살짝 젖어 있다고 느낀 것은 나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나는 선뜻 걸맞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허허허 허허허 웃기만 했다. 혼자 하는 식당인지라 여러 명의 식사를 요리하고, 커피를 내어 놓기 바빠 대화에 참여하지 못했으니, 어떤 아름다운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자위하다가, "아마도 같은 마음이셔서 그랬을 겁니다."라고 화답을 드릴 걸... 하고 후회했다. 바쁜 시간을 잘 치르고 난 후 오늘 하루 뉘엿뉘엿 해가 질 때까지 오래 보고 살자는 따뜻한 말이 나에게도 길게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오래 보고 산다는 것은 좋은 관계의 지속을 말하는 것일 게다. 서로 좋은 느낌의 관계가 아니라면 그만 보게 될 테니까. 한편, 나쁜 느낌의 사람과 할 수 없이 지속적으로 관계해야 한다면 그것 만한 고역이 따로 없을 것이다. 그렇듯 우리는 일상에서 불편한 관계의 지속을 흔하게 경험한다. 관계에 대한 이러저러한 불편과 고통 때문에 서점에는 매년 생활심리학 서적들이 멋진 슬로건을 걸고 즐비하게 쏟아진다. 하지만 각자에게 적용되는 시원한 해결안을 얻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듯 보인다. 신간들이 계속 나오는 걸 보니 아마도...
지극히 짧은 발상이지만, 오래 보고 살려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그이는 그이답게' 지내는 것이 우선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를 나답게 만들어 지내려고 하면, 나는 한시적으로 으쓱하고 기쁠지 모르겠지만, 너는 필시 정체성을 잃어 많이 힘들어질 것이다. 네가 행복하지 않으면 결국 나도 더 이상 기쁘지 않을 테니 그렇게 관계는 파행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오래전에 애정했던 관계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홀로 빛이 나는 여인이었다. 첫눈에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은 생각이 비슷하다 맞장구를 치며 밤을 새워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너와 내가 서로 '통'한다고 느껴지자 점점 사랑은 깊어져 갔지만... 사랑이 깊어지자 자기동기화(自己同期化)가 일어났다.
'너는 나와 같아야 한다.'
필연적으로 나와 다를 수밖에 없는 그녀에 대한 나의 갈증은 항상 '왜 너는 나와 생각이 틀린가?'였다. 동기화를 꿈꾸는 나로 인해 그 사람은 아마도 숨이 막혔을 것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빛이 나던 사람은 내 앞에서 이내 빛을 잃어버렸고, 지금 내 곁에 없다.
자기화(自己化)에 대한 집착은 물감섞기와 비슷하다. 빨간색인 나는 파란색인 너를 빨갛게 만들고 싶어서 나를 섞는다. 그렇게 섞여져 혼탁해진 보라색에서는 내 색깔도 네 색깔도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자기화는 정체성의 본질을 탁하게 흐리며, 종국에는 관계를 파괴하게 된다. 내가 애정하고 집착한 사람들 중 지금 내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나를 애정하고 집착했던 사람들로부터 내가 멀리 떠나와 있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익히 알다시피 동양에는 무위(無爲)라는 개념이 있다. 심오한 뜻을 다 알 순 없지만, 무위는 종종 '의도하지 않음'으로 풀어쓰기도 한다. 이 지혜를 사람의 관계에 적용하면, 의도하지 않음이란 인연 따라 주어진 대로 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무위의 마음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대 있는 그대로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고귀한 선물이요, 크나큰 축복입니다."
산책을 하면서 산과 들과 물길을 무심히 바라본다.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연. 산은 산답게, 물은 물답게, 나무는, 새는, 하늘과 낮달도... 그렇게 이루어낸 경이로운 조화가 무구한 시간 면면이 지속되어 왔기에 부족한 우리가 자연에 곁들어 사는가 보다.
어느덧 창밖이 어둡다. 나는 언제쯤이나 좋아하는 사람들과 '오래 보고 살 수' 있을까? 미련한 마음이 오늘 돌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