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세이
[ 눈이 오네요 ]
눈이 오네요
삼십육 점 오 도
내 살에 앉아
눈이 녹네요
한참 눈을 맞아요
머리칼에 어깨에
소복이, 눈을 감고
털어내야죠
잊어야 하니까
잊지 않으면
젖으니까
잘 마른 몸으로, 또
살아가야 하니까
눈이 오네요
아름답지
차창에 살포시 앉은 눈송이
와이퍼를 움직이세요
지워야 하니까, 그래야
갈 길을 갈 수 있으니까
그리움으로 앞을 가리고
살아갈 순 없으니까
눈이 내려요
삼십육 점 오 도
내 살이
그래도 그리움
만나자마자, 시큰한
콧등에
눈이 녹아요
" 보나 마나 맥주 한 잔 하면서 책이나 보고 있겠지? "
어제 늦은 밤 오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 어떻게 알았지? 나 몰래 CCTV 달아놨나?" 자정이 가까운 시간, 서울에는 눈이 많이 내리고 있다고 했다. 회식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내리는 눈을 쳐다보다가 전화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껄껄 웃으며 덧없는 농담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오래된 친구가 좋은 것은, 내용 없는 이야기를 시답잖게 주고받아도 심장이 조금 따뜻해지는 것 때문이 아닐까? 그 오랜 세월 얼굴 보면서 큰 다툼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친구의 관대함 때문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보고픈 마음이 슬쩍 들어 목도리를 매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달님도 별님들도 보이지 않는다. 내일은 눈이 오시려나.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은 언덕 위 카페테라스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새롭다. 눈이 소담스레 앉은 개천의 큰 바위와 강돌들 사이로 강물이 청량한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고, 내가 좋아하는 앞산의 낙엽송 숲에도 깊숙한 곳까지 눈이 쌓이고 있었다. 멀리 지리산 주능선은 제법 성긴 눈발에 가려 동안거에 들어간 고승처럼 심연 속으로 은둔해 버렸다. 안 그래도 조용한 산마을이 설산에 둘러싸여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잘 그려진 수묵화처럼 고귀한 기운을 연출하고 있었다.
어제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하였다. 서울에 있는 예식장까지 왕복 10시간의 행군이지만, 산골에 박혀 살아도 이 중요한 경사를 외면하랴.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사랑을 키워 오다가 그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가정을 이루게 된 어린 부부의 시작이 여간 이쁘고 기특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오늘 마을 후배의 모친께서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영업 중 짬을 내어 조문을 다녀왔다. 평소 효심이 깊었던 그녀는 푹 젖은 눈에 엷은 미소로 고맙다는 눈인사를 했다. 말을 꺼내면 눈물이 터질 것 같아 어깨를 다독이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지난봄에 아버지를 보내드린 나처럼 이제 그녀도 그리움을 지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희비는 덧댄 종이처럼 앞 뒤 하나로 붙어 있다는 느낌이다. 귀촌 와서 사귄 친구 중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B군은 대장암 수술을 잘 치르어내고 회복 중이라는 소식을 전해왔다. 2기이고, 다행히도 전이된 곳이 없어서 항암치료를 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라고 하니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감사할 일이다. 이렇듯 하루 이틀 사이에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살아가는 동안 기쁘고 슬픈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다가 기억 안으로 추려지고, 이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깊숙이 저장된다. 오래된 폴더는 때로는 잊히기도 하지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눈이 점점 더 많이 내린다. 탐스러운 눈송이. 한참 동안 눈 내리는 허공을 바라보며 순백의 몽환에 빠져 든다. 눈송이송이 하나마다 기억 한 줌씩, 특정 폴더를 열어 일부러 꺼내지 않아도 스냅사진처럼 소환되는 장면들. 소환된 기억들은 땅으로 떨어지기 싫은 눈송이처럼 주춤주춤 머리춤에 잠시 머물다가 스러진다. 기쁘고 슬프고 따뜻하고 아련하고 안타깝고 후회스럽고 우울한 것들... 그러면 회한 같기도 한 어색하고 부끄러운 감정과 그리움 같기도 한 다정하고 쓸쓸한 감정들이 가슴에 벅차게 차오르다가는 또 사라진다. 그렇게 잠시 자신을 놓치고 몽환 속을 유영하다가 문득 정신이 돌아오면, 왠지 마음이 홀가분하게 소급되어 다시 머리가 맑아진다. 약간 슬픔 같은 것이 느껴지지만 그 느낌이 나쁘지는 않다. 나를 구속하는 슬픔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한참이나 눈 속에 서 있었다. 이제 눈을 탁탁 털어내야 한다. 안 그러면 옷이 젖어 들어가 한기가 들 테니까. 기억을 피하거나 애써 지우려 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 그렇게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추억의 편린들이 나를 찾아오면 눈을 맞듯이 만날 뿐. 다만 그 조각들을 만나면, 아파하고 그리워하다가 이내 놓아주어야 하겠지. 기억들에게 내 발목을 잡혀서는 안 되겠지. 기억에 끄달려 관계의 슬픔과 아픔을 재현하거나, 어리석은 영광의 회환과 미련의 고통에 매몰되어서는 안 되겠지.
'인연 따라 사는 삶'이라고도 하고, '주어진 대로 사는 삶'이라고도 하는 '現存의 삶'이란 바로 '지금, 여기'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가르침이 면면히 있어 왔다. 이미 생성된 기억들은 바람처럼 언제든 나를 스치고 지나가게 내버려 두자. 땅에 발을 붙이고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나는 이렇듯 불현듯 찾아오는 그리움을 만나가며, 현존의 삶을 살아내 보려고 한다. 지극히 어려운 일이지만 지향인들 못할까 보냐.
성긴 눈발 속으로 열 마리 남짓의 까마귀 무리가 날아간다. 보기 드문 모습이다. 차가운 바람이 가세해 눈발이 옆으로 누우며 거칠어졌다. 까마귀들은 북쪽 산을 향해 눈바람을 헤치며 날아간다. 내리는 눈 속으로 가물가물 사라지는 검은 옷의 까마귀 무리가 마치 수행자의 행열인 듯 느껴졌다. 어둠이 이르게 찾아오고, 산 마을이 고요하게 눈에 덮이고 있다.
(p.s. 브런치북이 처음이어서 스토리에서 가져왔습니다. 양해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