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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기쁨 Feb 01. 2024

미련을 남겨두는 사람

미련은 외로움의 또 다른 모습

과거의 미련을 두는 사람은 어리석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이미 지나간 일에 집착하는 미련한 사람을 그렇다고 어리석다고만 할 수 있을까?


얼마나 사랑했으면 이미 헤어진 누군가를 잊지 못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면 가끔 사람은 미련한 동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때론 사람이기 때문에 미련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몫이다.


나는 미련은 지독한 그리움과 외로움 그리고 지독한 추억의 흔적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그날은 손님이 오지 않았다.


보통 10시에서 자정으로 가는 시간대에 사람이 가장 많을 때이다.


하지만 이런 한가한 날에는 잔을 정리하다 말고 아무 생각 없이 멍을 때리곤 하는데 그 정적을 깨고 문이 열렸다.


늦은 시간 부끄러운 듯 들어오는 젊은 손님이었다.


나이는 적어도 20대 후반에서 많아야 이제 30대인 듯한 분이었다.


조용히 바에 앉아서 물어본다.


"제가 바는 처음인데 보통 어떤 양주를 마시는지 궁금하군요."


처음 오시는 분들은 취향을 잘 모르기 때문에 시음용 위스키를 드린다.


싱글몰트에서 블렌디드 그리고 버번위스키까지 시음을 하다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블렌디드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분은 싱글몰트를 선택한다.


"여기에 맞는 안주는 뭐가 좋을까요?"


가장 무난한 것은 싱글몰트 특유의 향을 해치지 않고 풍미를 더하는 다크 초콜릿 같은 것을 권한다.


"상당히 심플하군요. 위스키에 초콜릿은 생각도 못해봤습니다."


어색해하면서도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그렇게 새로운 취미를 얻은 것처럼 위스키 향을 음미하기를 한참이 지나서야 문득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바텐더분을 뭐라고 부르면 되나요?"


"여기 오시는 단골분들은 저를 바스키아라고 부른답니다."


"그렇군요. 바스키아는 사랑을 해본 적이 있나요?"


갑자기 훅 들어오는 질문이다.


"갑작스러운 질문이군요. 지금 사귀는 여자친구가 있습니다만 솔직히 말하면 사랑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는 좀 의문이긴 합니다."


"흠... 왜 그렇게 생각을 하죠?"


"글세요. 지금 생각해 보니 사랑이라는 것을 먼저 떠올리기 전에 익숙함이 큰 이유인 거 같습니다. 게임을 하다가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길드 모임도 자주 갖게 되고 같은 취미를 공유하다 보니 사랑이라는 감정을 거기에 대입해 본 적이 딱히 없는 거 같아요. 하지만 이것도 사랑이라고 한다면 저도 사랑을 하고 있는 거라 생각을 합니다."


"쿨하군요!"


쿨하다는 말이 정말 쿨 해 보여서라기보다는 그분의 입장에서 어떤 형태든 사랑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고 그분은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여자애가 있습니다.
사귄 건 아니지만 다른 친구들이 보기에는 사귀는 것처럼 보였을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붙어 다녔어요.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었을 때도 자주 붙어 다녔습니다.
마치 사귀는 연인처럼 말이에요.

그렇다고 '여자사람친구'라고 하기에도 애매했습니다.
둘이서 여행도 다녔다니까요!

물론 믿지 못하시겠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진 않았답니다.
나름 그녀에 대한 배려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긴 하지만 바보같이 보이나요?

이런 제가 바보같이 보여도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마음속에는 오랜 시간 그녀에 대한 사랑을 키우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네요.

몇 달 전 그녀가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저한테 자랑을 했는데 아마 그때부터였는지 모릅니다.
도통 잠을 못 자겠더라고요.

게다가 거의 매일 연락을 했던 사이였는데 그 이후에는 연락을 아예 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데 회사 근처에 작은 바가 보여서 무작정 들어왔네요.

혹시 이게 그녀에 대한 미련일까요?


"죄송하지만 사귀신 것도 아닌데 미련이라는 표현을 하신 이유가 궁금하네요."


"음... 그러면 저만의 짝사랑이었을까요?"


"그건 제가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습니다. 사실 미련이라는 단어가 서로 사랑하던 사이였다가 헤어질 때 생기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는데 미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신 게 그냥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손님이 지금까지 그녀와 같이 지내 온 추억이 아깝다는 생각에 미련이라고 하신다면 사랑이라는 감정과는 좀 다른 게 아닐까요?"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제가 답을 드릴 수 없다는 걸 손님이 더 잘 아실 거 같습니다."


"아... 그렇죠. 하하하 죄송합니다. 제가 초면에 너무 제 얘기만 하고 있었군요."


근데...
어차피 그런 감정을 미련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녀에게 손님에 대한 마음을 한번 확인해 보고는 싶을 거 같네요.
한 번도 확인해 본 적이 없으시다면요.
사람 마음은 모르는 거니까요.


Yusef Lateef - You've Changed (1961년 음반 Into Something)


자정이 넘은 어느 늦은 시간에 여성 분과 함께 그때의 젊은 손님이 오셨다.


사실 같이 오신 여성분이 어떤 여성분이지 알 수 없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일전에 얘기했던 자신이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여성이라는 말을 넌지시 건네며 여성 분에게 권할만한 위스키 종류를 부탁한다.


이 여성분은 첫인상이 좋았는지 버번위스키를 선택한다.


"바스키아. 그럼 이 위스키에 어울리는 안주는 뭐가 있을까요?"


"버번위스키가 살짝 바닐라 같은 단맛이 나서 육포를 페어링 합니다만 바닐라 특유의 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바닐라 아이스크림도 페어링을 하곤 합니다."


그 여성분이 놀란 표정으로 물어본다.


"위스키에 아이스크림이 안주가 될 수 있나요?"


흥미로운 듯 쳐다보시다가 아이스크림을 주문한다.


그가 해준 이야기는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그녀의 말은 거짓말이었다고 한다.

오랜 시간 서로 좋아하는 감정을 지닌 채로 10년을 넘게 간직한다는 게 그녀에게는 힘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라도 관계를 끊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가 그녀에게 마음을 확인하고자 연락했을 때 그때는 정말 많이 울었다고 한다.

이제야 확인을 하는 자신이 너무 미웠다고...


두 분의 행복사이로 미련이 다시 찾아오지 않도록 기원하며 건배!



Yusef Lateef는 원래 이름은 William Emanuel Huddleston이다.


49년에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Yusef Abdul Lateef로 개명한 뮤지션이다.


초기에 그는 비밥에 전통한 상당히 테크니컬 한 연주자로 정평이 나있었지만 60년대 이후 그는 비밥뿐만 아니라 라틴, 프리재즈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면서 독특한 발자취를 남긴 뮤지션이다.


대표적으로 Impluse! 에서 발매된 <Live At Pep's> 시리즈를 들어보면 독특한 그만의 음악 스타일과 연주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후반부 그는 색소폰 못지않게 클라리넷, 플루트, 오보에 연주를 리드 악기로 자주 활용하면서 이 방면에서 수많은 뮤지션들 그러니깐 Rahsaan Roland Kirk 같은 뮤지션들이나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락 밴드인 Jethro Tull의 Ian Anderson에게까지도 영향을 줬다.


Label: New Jazz

Title: Into Something

Released: 1961


Yusef Lateef - Tenor Saxophone, Flute, Oboe

Barry Harris - Piano

Herman Wright - Bass

Elvin Jones - Dru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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