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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기쁨 Feb 05. 2024

어린 아이같은 심정으로

떼를 쓰는 아이처럼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날이 있다.


이런 경우에는 정말 답이 없다.


잘 풀어보려고 노력할수록 얽힌 실타래마냥 풀릴 생각이 없고 더 꼬이기만 한다.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그냥 쉬지 뭐!


결국 마무리하지 못한 일은 내일로 미룬다.


'오늘 일은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명언은 일단 먹는 거니깐 개나 줘버리고 퇴근을 한다.


문득 위스키 한잔이 떠오른다.


이럴 때 술 한잔에 넘겨 버리는 이 맛을 즐기기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씁쓸한 하루였으니 버번위스키로 주문을 한다.


버번위스키를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버번위스키 3대장 중 나는 메이커스 마크 특유의 빨간색 왁스 씰이 고전적인 멋이 있다고 느껴서 메이커스 마크를 좋아한다.


솔직히 부드러운 걸 좋아해서 취향에는 버팔로 트레이스가 나에게 맞긴 하지만 외관이 주는 멋도 취향이니 그와는 다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가끔 블렌디드를 주문하기도 하지만 항상 글렌피딕 12년산을 주문하던 내가 버번위스키를 부탁하니 바텐더 형님이 물어본다.


"오늘 웬일이야? 버번위스키는 우리 바에서는 처음 주문하는 거 아닌가? 이거 좋은 일이 있는 건지 아니면 나쁜 일이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는데?"


"그러게요. 저도 도통 알 수가 없군요."


"싱거운 녀석. 아니 자네가 모르면 누가 아는가?"


"그건 오직 신만이 아시겠지요."


"다른 건 모르겠고 분명한 건 자네가 믿는 신은 자네가 이런 날 술 마시는 걸 좋아하지 않으실 거라고 확신하네만? 하하하"


이런 농담을 주고받는 것만으로 힘이 되곤 한다.


적어도 외롭다는 생각을 잠시 접어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바의 주인장이자 바텐더를 하시는 이 형님은 나이가 40대 후반으로 이곳에서 세라노로 불린다.


마드리드의 세라노 역 근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어릴 적부터 오랜 시간 가족과 함께 거주하셨다고 한다.


가족은 아직 스페인에서 지내고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곳에 대한 그리움으로 세라노라고 하신 듯싶다. 


어느덧 이 바에 들른 지도 벌써 반년이 훨씬 넘었다.


세라노
지금까지 제가 원해서 다니는 회사는 아니지만 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책임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어요.

일을 끝내면 나름대로 성취감도 있고 일을 잘 마무리했다는 자부심도 가지고 있지요.

근데 이번 일은 다른 부서들이랑 협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쪽에서는 이걸 시큰둥하게 받아들인다는 거예요.

이해할 수가 없거든요.
같은 회사의 일인데 협업하는 게 왜 그리 못마땅하게 생각하는지 말이에요.

그래도 꽤 중요한 일이고 제 나름대로의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진행하는 일인데 시작부터 도와주질 않네요.
그렇다고 제가 다른 위원님들처럼 힘이 있는 것도 아닌 말단 위원인데...


"회사 내에서 정치가 있는 모양이지?"


"정치요? 회사에서 무슨 정치를 한다는 건가요?"


"이런 순진한 친구를 봤나? 한국도 마찬가지인가 보네. 정치란건 말이지?"


하고 운을 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시기 시작한다.


우리가 알 수 없지만 부서 간의 성과로 평가받는 그런 회사에서는 이런 것들이 만연하기도 한다는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암튼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군요."


"자네가 그 부서를 설득하는 데 있어서 정보가 부족했던 건 아닐까?"


"그건 결코 아니에요. 애초에 이걸 기획하신 센터장님이 엄청 공을 들이시는 사업이라 자료를 상당히 디테일하게 정리해서 이미 넘긴 상태라고요."


"그렇다면 떼를 한번 써보지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쪽 부서에서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안보는 거 같은데 말이야. 시간마다 귀찮게 찾아가서 넘겨드린 자료도 보시고 궁금한 내용이 있으시면 문의 부탁드린다고 말이야."


"아니 회사에서 애들도 아니고 무슨 떼를 쓰다니요?"


이 친구 이제 보니 책임감이니 뭐니 운운해도 간절함이 없구먼.

정말 이 사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라도 상대방을 설득시켜야 할 거 아닌가?

진짜로 간절하다면 자료를 검토하고 봐달라고 어린 애처럼 떼를 쓰는 게 전혀 부끄럽다는 생각이 안들 거란 말일세.

애들이 떼를 쓸 때 '아 부끄러울 거야'라는 생각을 할까?
부모님께 선물을 바라는 어린 아이의 간절한 마음처럼 떼를 쓰는 게 부끄럽다면 자넨 아직 간절하지 않은 거야.

내 말이 틀렸나?
뭐 틀렸다면 어쩔 수 없네만...



Herbie Hancock - Speak Like A Child (1968년 음반 Speak Like A Child)


며칠간 타 부서장님과 관계자분이 귀찮을 정도로 수시로 찾아갔다.


"부서장님 오늘 자료 보셨나요? 혹시 의문점이나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이따가 점심 후에 한번 더 찾아오겠습니다."


이렇게 떼를 쓰길 얼마나 지났을까 해당 부서장님이 직접 찾아오시곤 사업 내용에 대해 센터장님과 좀 얘기하고 싶다는 말을 건네셨다.


"이거 이 사업. 잘해보자고! 우리 부서에도 상당한 경험과 도움이 되는 사업인데 말이야. 근데 센터장님 어디 외근 나가셨나? 안보이시네?"


어린 아이같은 마음이 통했을까?


그렇게나 귀찮은 파리처럼 나를 대하시던 그 부서장님이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센터장님을 찾으시는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결국 그 부서에서도 담당자가 배정되고 협업을 하면서 서로 원하는 결과를 얻었으니 드디어...


해치운 건가?



Herbie Hancock 하면 펑키한 스타일의 'Cantaloupe Island'를 먼저 떠올릴지도 모른다.

뛰어난 연주 못지않게 그는 또한 매력적인 작곡가로서 많은 작품들을 작곡했고 많은 곡들이 다른 뮤지션들에 의해 연주되면서 스탠더드 반열에 오른 곡들도 상당수 많다.


60년대 Blue Note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피아니스트이며 70년대에는 퓨전 재즈씬에서도 엄청난 음악적 역량을 펼치며 활동을 했다.


이 작품은 Blue Note에서 발매한 7장의 작품 중 6번째에 해당하는 음반으로 플루겔혼, 플루트, 베이스 트롬본의 세 혼 섹션이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으로 기억되는 음반이기도 하다.


Label: Blue Note

Title: Speak Like A Child

Released: 1968


Herbie Hancock - Piano

Thad Jones - Flugelhorn

Jerry Dodgion - Alto Flute

Peter Phillip - Bass Trombone

Ron Carter  - Bass

Mickey Roker - Dru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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