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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기쁨 Feb 08. 2024

선부터 긋고 보는 사람

때론 이기적인 사람

지금의 초등학교 교실 책상이 어떤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초등학교 시절 책상은 하나로 두 명이 앉도록 생겼다.


여자와 남자가 짝꿍을 하다 보니 항상 싸움을 하곤 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책상에 그어진 선 때문이었다.


"이 선 넘어오기만 해 봐! 그냥 확 꼬집어 버릴 거야!"


자기 맘대로 선을 긋고선 어쩔 수 없이 연필이나 공책이 선을 조금만 넘어도 옆구리를 확 꼬집었으니 당연히 싸움이 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초등학교 학기 초에 처음 짝꿍과 한 것은 바로 책상에 '선 긋기'였던 것이다.


게다가 이미 선은 그었으니 물릴 수 없다는 논리로 나오면 답이 없다.




비가 오는 날씨다.


이상하게도 비가 오면 바에는 손님들이 많이 찾아온다.


이유는 모른다. 


그래서 나는 비가 오면 사람들이 외로움을 더 느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날도 역시 둘이 오는 손님은 없고 혼자 오는 손님들이 제법 가게를 찾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자주 오는 L은 그날도 역시 가게를 방문했다.


"바스키아. 오늘 비가 오니 센티해지는구먼."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쳐두고 자리에 앉자마자 L은 주문을 한다.


그는 자리에 앉으면 습관처럼 메모지에 낙서를 하는데 그날은 웬일인지 낙서를 하지 않고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혹시 메모지가 다 떨어진 건가 하고 메모지를 확인했다.


"내 이래서 바스키아를 좋아한다니깐! 신경 써줘서 고마워! 근데 오늘은 내가 생각이 많아져서 말이지."


"아니 무슨 일 있는 거예요? 습관처럼 낙서를 하셨잖아요?"


문득 궁금하기 시작했다.


"사실 며칠 전에 동네친구랑 대판 크게 싸웠거든."


"싸운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남자들끼리인데 뭐 잘 풀리겠죠."


"근데 그게 말이야... 그렇지 않을 거 같다는 거지. 친구 사이에 이해를 못 할게 뭐가 있겠나 하는 게 내 주의인데 그 친구는 마치 나에게 실망했다는 느낌을 준단 말이지."


그러면서 이야기를 들려줬다.


문제는 한 명과 싸운 게 아니라는 거네.
동네 친구들이 나에 대해서 하나같이 똑같은 생각을 한다는 게 더 큰 문제라는 거야.

나보고 이기적이라고 하는데 이유를 잘 모르겠어.

아니 친구들끼리 이기적인 게 어디 있나?
친구라면 그것도 동네친구들인데 서로 잘 알 거 아니야?

무려 3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들인데?

그걸 이해 못 해주고 '너는 이기적이다'라고 언제까지 친구라고 이해해 줄 수 없다고 하는데 그래서 싸웠지.


사실 싸운 이유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느낌으로는 오랜 시간 어떤 감정들이 수십 년간 누적되어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럼 L이 친구들에게 왜 그러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시지 그러셨어요?"


"그래서 당연히 물어봤지. 그랬더니 뭐라고 하는 줄 알아? 너는 친구라고 하면서 친구들하고 일일이 선을 긋는다고 하는 거야?"


"선이요? 무슨 선을 말하는 걸까요?"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무슨 선을 긋는다는 건지 나참!"


내 생각이지만 친구분들이 말한 '선 긋기'라는 것은 어떤 상황이든 L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긋는 행위였을 것이다.


예를 들면 금전적인 문제도 있을 수 있겠지만 모임 시간이라든가 메뉴 선택 같은 아주 사소한 일들도 포함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선을 먼저 긋는 사람이 유리하다.

자신의 상황에 유리하도록 먼저 선을 긋기 때문에 일명 '선방 치기'랑 비슷하다고나 할까?


게다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동네친구들이 아닌가? 

아마도 친구들은 그런 그의 행동에 오랜 시간 동안 그래도 '친구'라고 이해하고 묵인해 줬을 것이다.


하지만 풀지 못한 누적된 감정들은 아무리 30년이 넘는 친구 사이라 할지라도 그 시간만큼 쌓였을 테니 그 쌓인 크기만큼 언젠가는 크게 터지기 마련!


"아... 고민이야. 솔직히 이 친구들이랑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막막해. 그래도 나에게는 너무 소중한 친구들인데 말이야."


"그나저나 '선 긋기' 하니까 옛날 생각나네요."


L이 궁금한지 물어본다.


"옛날 생각? 그게 뭔데?"


초등학교 때 학기 초 제 짝꿍이 책상에 느닷없이 선을 긋는 거예요.
근데 억울한 게 뭔지 아세요?
내쪽으로 선을 그어서 자기는 영역을 넓게 가져가더라니까요!
조금만 움직여도 선을 넘었어요.
이럴 거면 차라리 제가 유리하도록 선을 먼저 그어버릴걸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선을 안 그었다면 짝꿍이 불편하지 않도록 알아서 중간을 넘어가지 않았을 텐데...


Stanley Turrentine - Come Rain Or Come Shine (1962년 음반 Up At "Minton's",  Vol.2)


내 얘기를 듣던 L은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 그날 역시 비가 왔다.


여전히 L은 비가 오는 날 가게를 방문했다.


"바스키아. 그 있잖아? 네가 해준 그 말."


"어떤 거요?"


"뭐야? 그새 까먹은 거야? 그 어릴 때 선긋기 놀이 이야기말이야. 그거!"


"아! 그랬죠! 하하하"


지금 생각해 보니 말이야.
진짜 내가 이기적인 놈이더라고.

친구들이랑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했다네.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고등학교 시절까지 그간의 이야기를 나눴는데 듣고 보니 나란 놈이 천하의 쌍놈이었더라고.

하하하하하하

난 내 친구들이 너무 고맙다네.
그래도 친구라고 지금까지 이해해 줬다는 게 말일세.

그런 친구들이 내 곁에 있다고 생각하니 행복하기도 하고 오늘 기분이 너무 좋구먼!
내가 오늘 바스키아한테 한잔 쏘지!


당신과 당신 친구들의 우정이 영원하길 바라며 건배!



미스터 T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Stanley Turrentine은 소울부터 비밥에 이르기까지 멋진 연주를 보여주는 Blue Note를 대표하는 색소폰 주자 중 한 명이다.


특히 'Sugar'라는 곡은 정말 잘 알려진 곡이다.


이 작품은 1961년 2월 23일 Minton House라는 클럽에서 벌어진 실황을 담은 음원으로 원래는 2장으로 각기 발매되다가 합본반으로 다시 리마스터링 되면서 소개가 되기도 했다.


풍성한 Stanley Turrentine의 색소폰 연주와 그의 연주에 촥 달라붙는 기타리스트 Grant Green의 싱글 노트로 펼쳐지는 블루지한 솔로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개인적으로 Stanley Turrentine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작품으로 이들의 멋진 라이브가 담겨진 작품이다.


Label: Blue Note

Title: Up At "Minton's", Vol.2

Released: 1962


Stanley Turrentine - Tenor Saxophone

Grant Green - Guitars

Horace Parlan - Piano

George Tucker - Bass

Al Harewood - Dru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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