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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기쁨 Feb 15. 2024

몰래 비집고 들어오는 작은 틈

커지는 마음의 틈

한 주간 너무 바빴다.


회사의 정부 과제로 교수님들을 모시고 자문단을 구성해 지방을 다니느라 제대로 쉬지를 못했다.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노곤해진 몸을 달래고자 침대에 눕는다.


하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다음 주도 지방을 다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결국 대충 옷을 챙겨 입고 집 근처 바로 향한다.


언제나처럼 구석에 앉아 위스키를 시킨다.


그날따라 손님이 많았다.

게다가 세라노는 다른 손님과 대화를 주고받는 중이었다.


멍하니 음악을 듣고 앉아 있다 보면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느낌을 받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가 내 어깨를 두드린다.


"한잔 같이 하시죠?"


나이는 내 또래처럼 보이는 멋진 분이었다.

하지만 뭔지 모르게 지쳐 보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보다는 한살이 많았지만 한 살 정도는 친구 아니냐는 말로 너스레를 떨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요즘 회사 일로 힘이 드네.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일명 '신의 아들'이라 군대를 안 가서 남들보다는 회사생활을 일찍 했다네.
게다가 내가 또 빠른 생일이라 내 친구들은 나보다 한살이 많지.
족보가 제대로 꼬였다고나 할까?

회사에 입사한 지 벌써 4년 차가 돼 간다네.
이제 또 슬슬 신입들이 들어오는데 아직까지는 나랑 동갑이거나 나이가 많다는 거야.

근데 이게 나이가 어리다는 게 약간은 뭐랄까...
단점이 된다는 거야.

남들은 '그게 무슨 단점이냐? 나이가 어리면 무조건 장점'이라고 하는데 나한테는 그렇지 않더라고.


"그러고 보니 회사에서 나이가 어린 게 문제가 되나?"


"근데 그게 그렇더라고. 내 입사 동기들 나이가 나보다 3살 많게는 4살 정도 차이가 나는데 진짜 힘든 건 같은 입사 동기들인데 자기들끼리만 어울린다는 거지. 그나마 한 분은 형동생하면서 회사생활을 하는데 많은 힘이 되더라고. 그분 얘기로는 입사 동기들이 내가 군대 안 간걸 아니꼽게 보나 봐."


"별 일이군. 그나저나 실례긴 하지만 군대를 안 간 이유를 물어봐도 되나?"


"당연히 어딘가 몸이 고장 났으니까 그렇겠지. 사실 내가 이래 보여도 허리가 병신이라네. 하하하"


"어쩌다가 다친 건가?"


"어릴 적 교통사고를 당했지. 우리 아버지는 그걸로 항상 나한테 미안해하신다네. 이제는 안 그러셨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흠... 하필이면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허리를 다치다니!"


"뭐 그렇지.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무리하지만 않으면 불편한 건 없어. 어쨌든 문제는 새로 들어온 신입들도 나를 그렇게 본다는 거야. 사실 이해는 가.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을 선배라고 부르려고 하니 그것도 짜증이 나겠지."


화제를 바꿔 내 대학생활과 유럽 여행을 하고 싶어 휴학하고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이야기 그래서 남들보다는 1년 늦게 졸업하고 지금 하는 일도 사실 전공과는 다르게 아르바이트에서 비정규직으로 전환해서 이제 일한 지 1년 채 안된 이야기를 했다.


"와우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다니 그건 부럽군. 여행은 아니고 나는 업무 때문에 이집트에 한 달을 머문 적이 있지."


"이집트? 중동 지역은 위험하지 않나?"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갔다 오니 그렇진 않더군. 아참 자네 그거 아나? 피라미드를 만들 때 그 큰 돌들을 어떻게 잘랐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궁금해지네. 그 당시에 그런 큰 돌을 어떻게 잘랐으려나? 무슨 기계가 있을 리 만무하고. 그래서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소문이 있지 않은가? 하하하"


나도 그런 줄 알았지.
근데 그 큰 돌을 자르는 방법을 들었을 때는 엄청 신박했다네.

큰 돌을 자를 크기로 선을 일단 긋는다네.

그리고 거기에 작은 나무토막을 끼워 넣을 틈을 곳곳에 만들고 나무토막을 그 틈에 끼워놓는다네.
그리고 그은 선에 물을 흘려서 채워 넣으면 나무토막이 물을 먹겠지?

시간이 지나면 나무토막이 물을 먹어 부피가 살짝 커지면 그게 그 큰 돌을 원하는 크기로 반듯하게 자를 수 있다는 거야!!

생각해 보게.
나무토막이 물을 먹으면 커져봐야 얼마나 커지겠나??



Mal Waldron - Potpourri (1957년 음반 Mal/2)


집에 들어와서 침대에 눕는다.


바에서 만난 그 친구가 해준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맴돈다.


솔직히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회사 생활이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든 나도 모르게 패배감을 가지고 살아온 게 아닌가 싶다.


그 작은 부정한 생각의 틈이 어느새 내 마음에 큰 균열을 일으키며 지금까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착잡해진다.


그 마음의 틈이 커지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추스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새벽이었다.



Mal Waldron의 <Mal> 시리즈는 재즈 팬들 사이에서 컬렉션의 대상이 되었던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Mal/2>를 좋아하는데 이유는 좋아하는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Jackie McLean, Bill Hardman, Art Taylor 같은 당시 최고의 뮤지션들이 참여하고 있다.


스탠더드 곡과 자신의 오리지널 튠이 적절하게 셋 리스트에 담아내고 있으며 그중 'Potpourri'는 그의 오리지널로 전통 비밥의 본령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이 곡은 Idrees Suliemann의 불을 뿜는 트럼펫과 Sahib Shihab과 John Coltrane의 멋진 색소폰 연주가 멋진 앙상블을 이루는 곡으로 이 음반에서 'Don't Explain'과 함께 개인적으로 손에 꼽는 곡이기도 하다.


Label: Prestige

Title: Mal/2

Released: 1957


Mal Waldron - Piano

John Coltrane - Tenor Saxophone

Sahib Shihab - Alto Saxophone, Baritone Saxophone

Idrees Sulieman - Trumpet

Julian Euell - Bass

Ed Thigpen - Dru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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