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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기쁨 Feb 12. 2024

적을 만드는 사람

지나친 승부욕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적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이다.


이런 날씨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차라리 시원하게 쏟아지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거 같은데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었을까? 


바에 오시는 손님들의 얼굴에도 이런 무거운 마음이 느껴질 정도로 지쳐있어 보인다.


그날은 그렇게 자주 오는 손님은 아니지만 동갑내기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Z가 오랜만에 방문을 했다.


그 당시 24살로 나이는 같았지만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을 가지 않고 바로 군대에 입대하고 제대하자마자 일찍 사회생활을 한 친구였다.


바에 오는 분들의 나이대를 생각하면 꽤나 어린 나이인데 처음 이 바에 온 것도 회사 선배분들 따라왔다가 분위기가 좋아서 내가 여기서 아르바이트하기 전부터 자주 오던 친구였다.


"바스키아! 오랜만!"


이 친구의 인사는 항상 간결하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간결함에서 오는 경쾌함이 느껴진다.


"어휴. 비가 이렇게 내리니 더 우울하구먼."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고?"


그러자 Z의 얼굴에는 '옳다쿠나'하는 표정이 스쳐 지나가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이봐! 내 얘기 좀 들어보라고.

친구들이랑 술 마시면 말이야.
꼭 우리는 게임을 한다네.

자네 스타크래프트 좋아하나?

난 말이야. 이래 봬도 레더에서도 상위를 달리는 실력자라고!
팀을 나눠서 PC방 내기를 하는데 꼭 답답한 친구 한 넘이랑 팀을 먹는단 말이지.

그래도 내가 누구인가? 레더에서도 먹어주는 실력자야!
거의 멱살을 잡고 캐리 해서 이긴다네!

어느 날인가 술 먹고 게임을 하는데 그 친구랑 팀을 먹기 싫어서 화를 냈지.
그래서 다른 친구랑 팀을 먹고 게임을 하는데 아니 이 친구도 답답한 건 똑같더라고.

내가 뭐라 말을 막 하면서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했는데 결국 졌어.
그래서 내가 그 친구한테 엄청나게 화를 냈지.

그것뿐이 못하냐고.

언제부턴가 친구넘들이 나랑 같이 게임을 안 하려고 하더라고.
술 먹고 게임한판 하는 게 이게 또 즐거움인데 말일세.

근데 알고 봤더니 이 녀석들이 나만 빼고 지들끼리 다른 곳에 가서 스타크래프트도 하고 FPS게임도 같이 하고 이러고 있더라니깐! 


"근데 궁금한 건 꼭 친구들을 모든지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건가?"


"무슨 소리야! 게임은 이기기 위해서 하는 거지 지려고 게임을 하는 건 아니잖나."


"그럼 친구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친구들도 이기고 싶을 텐데 항상 자네만 이기려고 애쓰는 거 같아 보이는군."


"그건 그 녀석들이 못하니까 지는 거지."


"너무 사소한 거에 목숨을 거는 거 아냐? 친구들인데 잘할 수도 있는 거고 못할 수도 있는 거지. 이기려고만 하려고 너무 승부욕을 앞세운 게 아닌가 해서 하는 말일세."


"..."


침묵으로 일관하던 Z는 더 이상 이와 관련한 대화를 나누지 않고 화제를 전환해서 농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암튼 오늘 즐거웠어. 담에 보자고."


친구로서 하는 말인데 다른 건 몰라도 자네 친구들한테까지 그러지 말게.
적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별거 없네.
사소한 일에 지나친 승부욕을 앞세우는 거라 생각하네.
물론 중요한 일이라면 승부욕을 발동시켜야지.
거기에는 동의한다네.
하지만 그런 일로 친구들까지 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냥 가볍게 즐기라고.


"짜식. 충고 고마워."


갈 때도 역시 경쾌하다.


문을 여는 소리 또한 경쾌하게 들리는 건 나의 착각일까?



Freddie Hubbard - All Or Nothing At All (1960년 음반 Open Sesame)


우리는 살아오면서 은연중에 적을 만들기도 하고 친구를 만든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음에도 한 가지는 알 수 있다.


친구를 만드는 건 쉽지 않다. 


친구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뭐가 됐든 친구를 만드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적을 만드는 건 순식간으로 정말 쉽다는 사실이다.


가끔 나의 쓰잘데기 없는 욕심 하나로 너무나 쉽게 적을 만드는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더 이상 불필요한 적을 만들지 않길 바라며 건배!



소위 명반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수많은 평론가들이나 당대의 재즈 청자들에 의해 회자되는 작품일 것이다.


그중에 트럼페터 Freddie Hubbard의 데뷔작인 <Open Sesame>는 명반이라는 평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하드밥의 정수를 제대로 관통하는 작품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신인으로서 첫 데뷔작을 Blue Note에서 발매했다는 사실, 거기에 피아니스트 McCoy Tyner를 위시해 Sam Jones와 Clifford Jarvis가 만들어내는 완벽한 리듬 섹션, 그 위로 Blue Note의 또 다른 진주라 불리는 테너 주자 Tina Brooks와 프런트 라인에서 이들에게 절대 꿀리지 않는 명 연주를 뿜어낸다.


그의 수많은 명작 중에서 개인적으로 항상 첫 번째로 꼽는 작품이기도 하다.


Label: Blue Note

Title: Open Sesame

Released: 1960


Freddie Hubbard - Trumpet

Tina Brooks - Tenor Saxophone

McCoy Tyner - Piano

Sam Jones - Bass

Clifford Jarvis - Dru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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