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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기쁨 Feb 19. 2024

기대지 못하는 사람

외로운 사람 #2

그녀를 집에 바래다 주기 위해 지하철을 타면 그녀는 언제나 나에게 기댄다.


가끔 나는 그녀에게 내 어깨에 기대면 편하냐고 물어보곤 한다.


"몸이 편한 거보다는 마음이 편해져."


그녀의 집은 지하철을 타고도 40분이 넘게 가야 한다.


몸이 더 피곤할 텐데 항상 돌아오는 대답은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곤 했다.


그리고 그녀를 바래다주고 홀로 집에 가는 그 순간 그제서야 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알게 된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이다.


이런 날은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할 것이다.


나는 이런 날에는 바닷가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어느 벤치에 앉아서 그저 파도가 치는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거나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그런 상상을 하곤 한다.


화요일은 손님이 거의 없다.


신기하게도 월요일이 첫 주의 시작이니 월요일에 없을 것 같은데 오히려 월요일이 바쁘고 화요일은 손님이 거의 없다.


손님 A는 항상 화요일에 느지막한 시간에 오신다.


그분 역시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화요일에 온다.


사실 이런 손님과는 대화하기가 쉽지 않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누군가의 방해를 받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혼자 자신만의 시간을 갖다가 조용히 집으로 가시곤 한다.


게다가 대화조차 잘하시지 않기 때문에 이름 정도만 알아도 그 손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거 있으시면 말씀하시라는 말만 건넨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나마 바에 동행으로 오셔서 조용히 담소를 나누시던 두 분이 집으로 돌아가고 그 분과 나만 남았다.


그 순간의 정적을 깨고 그가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바스키아는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의지해 본 적이 있나요?"


"물론이죠. 항상 누군가에게 기댈 순 없겠지만 정말 힘들 때는 가족에게도 의지해 본 적도 있고 친구들한테도 기대 보기도 하고 지금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에게도 기대곤 하죠."


"놀랍군요. 특히 여자친구에게 기대 봤다는 얘기는 좀 신선하네요."


"왜 신선한지 여쭤봐도 될까요?"


"글세요. 보통 여자가 남자한테 기대지 않나요? 하하하. 웃어서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웃을 수 있으셨다니 다행이네요. 웃으시니까 얼굴이 더 밝아 보이시는데요?"


"고마워요. 바스키아."


긴장이 풀렸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저는 변호사 일을 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는 사실 제가 원했던 직업은 아니에요.
어머니가 원하시던 직업이었죠.

다만 제가 어릴 적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고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항상 어머니는 저에게 '누구에게 의지하지 마라. 세상은 너 홀로 우뚝 서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에 대한 실망과 원망, 미움 같은 감정들이 느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의지해 볼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근데 누군가가 그런 절 보고 그러더군요.
한자의 사람 인(人)이 서로가 기대어 의지하는 모습을 현상화했다고요.

사실 그건 아닌데 말이죠.
원래 사람 인(人) 자는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있는 모습을 본뜬 형상에 불과할 뿐이니까요.

뭐 어떻게 해석해도 좋습니다.
어차피 세상은 사람 혼자 홀로 서서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어떤 의미로 해석하든 좋다고 봅니다.

근데 이젠 조금씩은 지쳐가네요.
저도 결혼을 약속한 연인이 있습니다.
 
지쳐갈 때 어딘가에 기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그럼 차라리 벽에 기대면 나을까 싶은데 뭔가 마음이 허전하네요.
벽은 그저 벽일 뿐이니까요.

그렇다고 연인이나 가족에게 절대로 기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내 모습이 힘겨워 보였는지 이걸로 연인과 자주 싸우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게 제 자존심일까요?
아니면 어릴 적 어머니가 항상 하시던 말씀에 대한 트라우마일까요?


"어려운 질문이군요. 솔직히 제가 심리학자가 아니다 보니 어떤 말을 하든 조심스러워지는군요."


"특이한 분이시군요. 남들은 '내가 틀렸다. 너 혼자 감당하지 마라. 기대고 싶으면 그냥 기대라'라고 하던데..."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부담을 준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닌지 여쭤봐도 될까요?"


"음... 그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군요."


외람되긴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마음의 짐도 같이 짊어지신 것 같아 외로워 보입니다.
솔직히 어딘가에 기댈 곳이 없다는 건 너무 외로워 보이네요.
 정말 힘들 때 연인에게 기대는 거 정말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Tony Bennett & Bill Evans - We'll Be Together Again (1975년 음반 The Tony Bennett/Bill Evans Album)


시간이 어느덧 새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남은 위스키 한잔을 가볍게 목으로 넘긴다.


"크... 저도 한번 누군가한테 그냥 기대 볼까요? 그럼 맘이 편해질까요?"


"그냥 에라 모르겠다 이러시면서 힘들면 힘들다고 연인에게 한번 마음을 기대 보시죠. 내심 그 연인분도 그걸 기대하지 않을까요? 정말 사랑한다면 자신에게 기대길 바랄지도 모르잖아요?"


그분이 갑자기 웃으시기 시작했다.


"하하하. 그냥 에라 모르겠다~ 그거 좋군요. 아참 이건 내 명함이에요. 혹시 도움이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도 좋아요. 시간이 많이 늦었군요. 그럼 다음에 또 봬요 바스키아."


그가 건네준 명함을 보며 마음속으로 기원한다.


마음의 쉼터가 될 수 있는 연인에게 기댈 수 있기를 바라며 건배!



개인적으로 나는 보컬 음반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때론 사람의 목소리가 내 마음의 감성을 건드리고 때론 편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어쩌면 그런 목소리에 의지하고 싶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편안함을 느낀다.


Tonny Bennett과 Bill Evans는 이 음반과 함께 2년 후 <Together Again>를 녹음했다.

특히 <Together Again>에 수록된 'The Two Lonely People'은 정말 애정하는 곡 중 하나이기도 하다.


피아노와 목소리로만 아주 심플하게 이뤄져 있지만 그 어떤 음반보다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Label: Fantasy

Title: The Tony Bennett/Bill Evans Album

Released: 1975


Tonny Bennett - Vocals

Bill Evans -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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