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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Mar 20. 2018

관계

2 is a perfect number

 평소보다 조금은 무거운 날 이였다. 매일과 같은 오늘이였는데도 유독 지친 컨디션이 스스로를 힘들게 했다. 집에 도착하니 아홉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끼니때를 지나서인지 배가 고프진 않았는데 대신 무척이나 달달한 커피가 땡겼다. 커피포트가 물을 끓이는 동안 손만 씻고선 머그컵에 믹스커피 두 봉지를 털어 넣었다.



 티비를 켜 습관적으로 보는 잔잔한 영화를 틀어놓고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직업 특성 상, 아직 한시간이나 더 남은 그의 일상을 두고서 나는 내 지친 오늘을 마구 마구 푸념하고 싶었다.



 평일에는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이 꼭 이런 날에는 부풀어진 풍선처럼 커지곤 했다. 밉지않은 투정과, 어리광을 부리며 나는 오늘 이래서 힘들었다 저래서 힘들었다 - 라며 하고 픈 말들을 내 안에서 정리하다보니 다시 또 지쳐버려 나는 그 마음을 멀리 밀어버리게 되었다.



 커피 두잔을 먹었음에도 밀려오는 노곤함에 쇼파에 누워 잠이 드려던 차, 퇴근을 한 그의 전화가 울려왔다. 오늘은 먼저 말하지 않아도 먼저 나를 물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샘솟고 있었다.



 “ 고생했어. “ 내 인사에 그는 “ 응. “ 이라고 대답하며 방금 전 까지 이어진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했다.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쳐진 목소리에 나는 하고팠던 투정과 푸념을 집어 삼키며 애써 물었다. “ 배고프지? “ 내 물음에 그는 대답과 함께 오늘 일과 중 기억에 남는 일을 내게 들려주었고, 나는 그의 오늘을 들으며 반대로 짙기만 했던 내 하루를 지워보려했다.



 “ 자기는 오늘 어땠어? 별 일 없었어? “ 당연하게 물어오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별안간 울컥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 왜 그래? “ 대답없는 묵묵한 공기에 그는 한번 더 내게 물었다. “ 그냥 좀 힘들었어, 이상하게 잘 지치고. “ 내 대답에 이젠 그의 공기가 묵묵해졌다. 밥은 먹었냐는 그의 말에 나는 아니- 라고 대답하며 몸을 일으켰다. 이상하게도 방금 전 까진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그의 물음 한 번에 거짓말처럼 배가 고파왔다. “ 그렇게 물어오니까 배고프다. “ 전화너머 슬리퍼 소리가 스치자 그는 내 행동을 예감한 듯 작게 웃으며 “ 옷 입어. “ 라고 얘기했다.



 “ 무슨 옷을 입어? “

 “ 나 지금 갈게, 밥 먹자. “

 “ 그럼 집으.. 아, 집에 먹을 게 없다. “

 “ 쌀국수 먹을까? “

 “ ... . “

 “ 왜 대답이 없어? “

 “ 이런 상황을 기다렸나 싶은 내가 웃겨서. “

 “ ... . “

 “ 위로가 너였나봐. 나도 참 피곤한 성격이다. “

 “ 말을 하고 싶은 날이있고, 말을 하기 싫은 날이 있을 뿐이지. 그리고 자기가 피곤한 성격은 아니야. “

 “ ... . “

 “ 저녁 없는 삶이 새삼 미안해지네. 십분 있다 내려 와. “

 “ 응. “



 덤덤함 속에 고마움을 느끼며 전화를 끊었다. 오늘 그는 내게 말로 위로를 건넸지만 나는 그러질 못했다. 가디건을 걸치며 지친 그의 하루를 어떻게 위로할까 했던 나는 따듯한 귤 차를 타 그를 만나러 내려갔다. 창 너머 내려오는 나를 보던 그는 두 손이 모자람을 보고선 문을 열어주며 웃었다. 귤 차야? 그의 말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가서 맛있는 쌀국수 먹자. “ 그러며 내 손을 끌어잡는 그의 손을 보며 나는 내 손을 포개었다. 고맙다는 말은 왠지 쑥스러워 그의 손을 토닥이는걸로 마음을 대신 표현했고, 그는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웃음진 얼굴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렇게 무거웠던 하루가 너 하나로 이렇게 가벼워 졌다. 꼭 어린아이가 된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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