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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노 Feb 05. 2016

무민의 숲에서 어릴 적을 추억하다

이야기로 가득한 스톡홀름 유니바켄


처음에 고려했던 스톡홀름 일정에서는 유니바켄(Junibaken)이 없었다. 나부터가 말괄량이 삐삐를 친숙하게 보고 자란 세대가  아닌 데다가, 유니바켄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어서 홈페이지 디자인을 보고 아이들에게 맞춘 유아용 박물관이겠구나 예상했다. 그런데 말괄량이 삐삐의 집뿐만 아니라 무민 공원도 박물관 내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절기에 오픈하지 않는 핀란드 무민 공원 대신에 유니바켄을 가보기로 했다. 여길 다녀온 뒤로 스톡홀름은 반드시 자녀를 데리고 여행해야 한다고 어린 자녀가 있는 지인분들을 만날 때마다 꼭 이야기하곤 한다. 나도 어릴 때 누가 여길 데려와줬다면 좀 더 창의적인 아이로 자라나지 않았을까. 물론 이건 내 상상일 뿐이지만, 여길 부모님 손을 잡고 함께 올 수 있는 스웨덴 아이들이 정말 부러웠다.


출처: 유니바켄 무민 페이지 http://www.junibacken.se/mumin-pa-junibacken


유니바켄은 유르고르덴 섬에 위치하고 있는데, AF 채프만 호스텔이 있는 곳에서 페리를 타고 5분이면 유르고르덴 섬에 도착할 수 있다. 타서 몇 분 후에 바로 내리는 경험이 신선하다. 유르고르덴 섬에는 스칸센을 비롯하여 다양한 박물관들이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스피릿 박물관. 앱솔루트사에서 후원하는 박물관으로 술에 대한 박물관이라고 하는데 바깥의 바가 인상적이었다.


허둥지둥 달려가니 쿨하게 태워주셨다.


조식을 먹고 Li Peng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유르고르덴 섬에 도착한 시각은 대다수 박물관들의 오픈 시간을 훌쩍 넘긴 10시 40분. 해가 떠있는 한 시간을 그냥 흘려보냈다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다. 귀여워 보이는 노란색 트램 종점을 지나, 걷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바사호 뮤지엄으로 발길을 돌렸다. 넓은 잔디밭을 옆에 끼고 열심히 걸어 다양한 캐릭터들이 벽면에 그려진 유니바켄에 도착했다.



숙소를 나서 20분 만에 도착한 유니바켄 앞에는 유모차들로 빼곡했다. 빼곡한 유모차들을 보고 내 예상보다  어린아이들을 위한 놀이 박물관인가 싶어 뒤돌아 바사호 박물관으로 갈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내겐 스톡홀름 패스가 있으니까 잠깐 보고 실망스러우면 그냥 나가도 되겠지 싶어서 호기롭게 입장했는데 스톡홀름 패스에 유니바켄 입장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 2016년부터는 리뉴얼된 스톡홀름 카드에 유니바켄 입장이 포함되어있다. ) 티켓 발매소의 직원은 성인 가격인 159 크로나를 내면 입장할 수 있다고 했다. (한화 22000원)



고민하고 있으려니, 티켓을 결제하는 곳에서 바로 보이는 물품 보관소가 너무 예뻤다. 물품 보관소도 저렇게 예쁜데 다른 곳은 어떨까 싶어 입장권을 구매하겠다고 했다. (게다가 무민의 숲도 너무 궁금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카운터의 직원은 성인으로 보이는 동양인 여자가 혼자 아이들을 위해 꾸며진 박물관에 돈을 지불해서라도 입장하겠다고 하는 상황을 신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성인이 체험할 만한 시설이라고는 이야기 열차밖에 없다.) 결제를 마친 직원은 카드 결제 영수증은 티켓과도 같은 역할을 하니까 꼭 챙기라고 당부해주었다.


아니 그런데 정말이지 물품 보관소가 너무 예뻤다. 아이들에게 맞춰 높이도 낮고 크기도 아담했다. 동화 일러스트들로 꾸며진 커다란 공간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한쪽 천장에서는 안데르센의 동화에 나오는 백조 왕자들이 날고 있었다. 부모님을 따라온 아이들은 바닥에  주저앉아서 두툼한 겉옷을 벗거나 부모님이 짐을 다 넣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북유럽의 아이들은 참 귀엽다. 생김새도 인형같이 올망졸망 예쁘장하지만 또 얼마나 씩씩한지, 넘어져도 울지도 않고 쓱쓱 잘 일어난다. 그러고 보니 북유럽에서 아이가 우는 걸 본 기억이 없다. 정말 갓난쟁이가 아니면 잘 울지도 않고 아이가 문제를 일으킬 것 같으면 한걸음 뒤에서 부모가 확실하고 명료한 목소리로 제지하고 왜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지 차근차근 알려준다. 그래서인지 이 어린이 박물관에 있는 동안, 아이들끼리 서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겠다고 싸우거나 우는 모습을 본 일이 없어서 더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대신 아이들 초상권은 극히 민감한 부분이라 사진 찍기가 어려웠다. 내가 카메라를 맡기며 내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하기 전까지 모든 부모님들의 경계를 받아야 했다.



아기자기한 동화의 광장 Sagotorget


"아빠 내가 카페에서 빵을 사왔어요. 같이 먹어요."
"아빠, 케이크도 사오세요."
아이 눈높이에 맞춘 보석 가게의 거울과 선반

물품 보관소 바로 옆에 동화의 광장으로 가는 문이 있었다. 동화의 광장 건물 하나하나의 색감과 디테일이 얼마나 예쁘고 올망졸망한지. 내 큰 몸을 작은 보석 가게에 구겨 넣어 토끼 걸음으로 돌아다니려니 뒤에서 나로 가득찬 보석 가게에 들어오기위해 입구에서 여자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소인국의 걸리버가 된 느낌이었다. 서둘러 보석 가게에서 나오고 있는데, 옆의 카페에서 어린  남자아이와 아버지가 나왔다. 카페 옆 테라스에 가서 아버지에게 같이 앉으라고 하는 남자아이의 모양새가 퍽 귀여웠다. 곧 카페 놀이가 끝났는지 아버지가 카페에 가짜 빵과 바구니를 되돌려놓으러 갔는데, 그걸 창 너머로 바라보는 아이는 다음 놀이를 무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동화 마을에는 자갈이 깔린 광장을 밝히는 가로등들이며, 아이들에게 딱 맞는 사이즈로 줄어든 가게들이 있었다. 중앙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커다란 비행기가 착륙하여 곧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았고 곳곳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들이 가득했다.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곳은 시시때때로 달라졌는데, 커다란 나무 비행기는 언제나 인기였다.


엄마의 손에는 늘 카메라가 들려있다


동화의 광장에서 재미있게 노는 아이들을 보니, 나도 아이가 되고 싶어 졌다. 어릴 때는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어른들의 자유가 부러웠다면, 어른이 되고 나니 즐겁게 놀 수 있는 아이들의 자유가 부러워졌달까. 물론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촬영하느라 부모님들도 무척 즐거워 보였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는 동화의 광장을 나와서 옆을 보니 통로가 있었다.

Sagotaget?


유니바켄의 유명한 이야기 기차 Sagotaget



갤러리처럼 그림이 걸려있고, 동화책을 작업하는 책상을 복원해놓은 모습에 내심, 박물관이라더니 역시 동화 광장처럼 재미난 것만 있는 게  아니었어하고 납득하고 있었다. 동화의 광장 퀄리티가 너무 뛰어나서 가슴이 콩닥콩닥 거리는 중이라 박물관 전체에 그런 장소들이 준비되어 있다면 유니바켄에서 하루를 다 보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마저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방 제일 안쪽 벽면이었어야 할 자리에 괴상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벤치가 있는 네모난 트레인이 옆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부모님과 아이가 트레인에 올라타 어디론가 가는 모습이었다. 작은 열차 같은 모습이었지만, 처음 보는 형태였다. 놀이동산에 있는 기구 같기도 했다.



돈을 더 내야 하는 걸까 싶어서, 안쪽에 앉아있는 직원에게 물어보니 티켓을 보여달라고 했다. 영수증으로 받았던 티켓을 보여주니 그 위에 열차 모양의 도장을 찍어주었다. 내가 리프트에 탑승하자 직원은 리프트 위의 버튼을 클릭하여 사운드를 영어로 설정해주었다. ( 이 착한 직원은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더니 안타깝지만 지금은 한국어 지원이 없다면서, 나중에 꼭 한국어가 지원됐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러게, 그러면 나도 정말 좋겠다. 그래서 우선은 영어로 듣기로 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스웨덴어를 부탁하면 말괄량이 삐삐의 원작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목소리로 사운드가 지원된다고 한다. 이렇게 통탄스러울 수가! 정체를 모르는 채로 탑승한 이 열차는 유니바켄의 유일한 탈거리이자 자랑인 이야기 열차였다.


출처 유니바켄 홈페이지 http://www.junibacken.se/sevardheter/sagotaget


시작하자마자 느릿느릿하지만, 재미난 음성과 상황들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섬세한 인형들의 디테일은 정말이지 놀랄 정도랄까. 디즈니랜드나 에버랜드의 지구 마을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 기구들이 2D라는 정해진 레일에서만 이야기들을 관찰해야 했다면 이 이야기 열차는 리프트가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이야기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기도 하고, 옆에서 관찰하기도, 아래에서 위로 관찰하기도 했으니까. 계속해서 감탄하고 눈을 반짝거리면서 어떻게 이런 걸 다 만들 생각을 했는지 놀라워하다가, 이런 걸 보고 자라니까 스웨덴이 디자인 강국이지라는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스웨덴 아이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또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중간에 펼쳐지는 환상적인 광경, 앞의 리프트를 보면 위로 올라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0분 정도 열차를 타고나면 정말 아쉽게도 내려야 할 때가 찾아온다. 그 10분 동안 지겨울 새 없이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인 감각적인 배치에 넋을 잃은 상태로, 나는 또다시 심하게 콩닥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어른스럽게 통로를 지나 나왔다. 이 이야기 열차보다 더 멋진 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나온 그곳에는 말괄량이 삐삐 그래 바로 그 삐삐 롱스타킹(원래 이름은 : Pippilotta Viktualia Rullgardina Krusmynta Efraimsdotter Långstrump)의 집을 아이들이 놀기 좋도록 재구성한 놀이터가 있었다. 창으로는 스톡홀름의 운하가 내려다보이고, 햇살이 밝게 들어오는 그곳에서는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뒤죽박죽 빌라에서

금화가 가득 든 가방을 찾아보자!



삐삐의 빨래들이 걸려있는 빨랫줄이 뒤죽박죽 빌라에 연결되어 있고, 원숭이 닐슨 씨는 빌라 지붕 위에 앉아서 아이들을 지켜보고, 삐삐의 마스코트 말 아저씨는 저 멀리 잔디밭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집 안과 밖을 오가며 뛰어다니고, 부모님들은 카메라를 들고 아이들을 따라다니거나 아니면 창가 벤치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라는 이색적인 관광객은 잠시 시선을 둘 뿐 곧 아이들에게로 시선이 옮겨졌다.



삐삐의 집 2층 계단으로 올라가 보니 삐삐의 방으로 갈 수 있는 작은 입구가 있었다. 어른이 지나가려면 몸을 한껏 낮추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작은 통로라 처음에는 망설여졌지만 작은 입구를 통해 보이는 삐삐의 방이 너무나도 구경하고 싶었다. 몸을 최대한 숙여 입구를 지나 나오니 예전 기억 속의 말괄량이 삐삐가 기억이 났다. 양말은 짝짝이로 신고, 아빠는 식인종의 섬에서 왕이라 이야기하고, 옷장은 늘 엉망이던 쾌활한 말괄량이 삐삐가 정말 이 방에서 살았을 것만 같았다.

눈이 쌓이면 저기 방에 놓인 나무 썰매를 끌고 나갔을 테고, 심심하면 모니카와 토미를 꼬셔 테니스도 쳤겠지. 자기 집에 아이들을 불러서 보물 지도를 보여주며 보물을 찾으러 가자고 부추기기도 했을 거다.



이 삐삐의 방을 보면 딱 어릴 때 우리가 꿈꾸던 그 방과 매우 닮아있다. 내가 좋아하는 예쁜 어른 구두와 모자들, 알록달록 작은 침대에 협탁과 커다란 보물 상자로 꾸며진 다락방이라니. 문을 열고 나서면 넓은 테라스에는 화단과 물뿌리개가 있다. 옆에서는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올 수 있기까지 하니 아이들의 꿈의 집이 아닐까?

아니 그나저나, 금화가 가득 들어있는 가방은 어디 있는 것일까? 이미 아이들이 찾아 하나씩 집어간 것은 아닐지. 열 수 있는 모든 서랍과 가방은 활짝 열려있는 채였다. 아이들이 계속 드나들어 부산스러웠던 1층으로 찾으러 가기 위해 삐삐의 방에서 다시 기어나와 계단을 내려왔다.


목마! 나도 타보고 싶었지만 아이들에게 양보했다.


아이들은 본디 어지르는 것의 천재가 아닐까? 삐삐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어른으로써의 탄식이 새어나왔다. 현관에는 여행 가방의 모든 내용물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자리 잃은 서랍 하나도 함께 놓여 있었다. 발에 밟힐까 조심조심 안으로 들어서니  그곳은 아이들의 천국이었다. 한쪽에서는 요리 놀이가 한창이고, 마룻바닥에서는 퍼즐 놀이 중이었다. 서랍은 이미 전부 꺼내져 속을 드러낸 채였다.



이 곳에서 어른들은 이방인이었다. 철저하게 아이들의 키에 맞춰진 서랍과 의자 그리고 다양한 놀잇감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듯했다. 다만 주방 기구 쪽에는 아이들이 없었는데, 가까이 가서 만져보니 모든 놀잇감이(작은 병까지도!) 그 자리에 고정되어 가지고 놀 수가 없었다. 역시 뭐든 자신이 가지고 놀 수 있어야 즐거운 법인가 보다.



1층에서도 금화가 가득 들어있는 가방은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삐삐의 집인 것은 인정! 이토록 많은 아이들이 신나서 즐겁게 뛰어놀 수 있다니 여기는 삐삐의 집인 것이 확실했다. 혹시 알까, 아이들 눈에만 보이는 가방일지도 모른다.

금화가 든 가방을 찾느라 이리저리 다녔더니 허기가 졌다. 1층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계단은 삐삐의 집 바로 옆에 있었다. 앞서가는 가족들을 따라 내려갔더니 아기자기한 레스토랑의 풍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였다.



1층 레스토랑은 그야말로 아이들의 천국이었다. 지그재그로 연결된 단체석들과 천장에는 가짜 풍선과 서커스 우산, 깃발들로 꾸며져 있었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가득한 냉동고와 다양한 케이크들이 펼쳐져있는 디저트 테이블은 어른이 보기에도 화사하고 아주 달콤해 보였다. 가족들끼리 맛있게 식사하고 있는 레스토랑 곳곳에는 페스티벌처럼 컬러풀한 포스터와 장식들로 가득했다. 그렇게 레스토랑을 하염없이 구경하다 레스토랑의 맨 끝에 도착하니 무민이 어디론가 급하게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달콤한 사탕 기둥 사이로 하늘색 자작나무 숲이 펼쳐져 있고, 하얀 무민은 보온병을 들고 급하게 뛰어가는 중이었다.



무민의 숲 Mumin på Junibacken!


무민을 따라 가보자!


무민은 핀란드 캐릭터이지만 유니바켄에 2017년 1월까지 무민 가족이 잠시 이사 오기로 했다는 내용이 공식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었다. 어디에 과연 무민의 숲이 있을까 궁금했는데 1층 레스토랑을 빠져나오면 바로 무민의 숲이 있다.


무민의 숲 영상으로 구경하기

https://youtu.be/0VTwEKb0vHg


무민의 숲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이 따로 있는데 실제로 이 과정을 보니 내가 올라가 보지 못한 전망대가 너무 귀여워서 아이들이 다시 새삼 부러웠다. 무민의 숲 공간은 전반적으로 어두웠다. 색채도 어두운 색이 많았지만 아이들은 이 아지트 같은 분위기가 퍽 마음에 드는지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동굴과 나무둥치 미끄럼틀, 무민의 집은 고불고불한 통로처럼 어두웠고, 열매가 가득 달린 숲에서는 토실토실한 빨간 열매를 수확할 수 있었다. 우리가 쉽게 상상하는 아이들을 위한 장소와는 거리가 멀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들은 비밀스러운 놀이를 하는 것처럼 새로운 통로를 찾아내고, 전망대를 탐험하고, 소라껍데기 의자에서 다른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저 동굴을 따라 들어가면...



해티패트너들이 동굴에 있다. 처음에는 예상을 못해서 깜짝 놀랐다. 어른들에게는 손이 닿지만 아이들에게는 손이 닿지 않는 높이가 참 귀엽다.



무민의 집도 어른들은 들어갈 수조차 없다. 들어가려면 무릎을 꿇고 기어서 들어가야 하는데, 안쪽이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기어들어갔더니 어릴 적 외갓집 커다란 가죽 소파 뒤쪽에서 놀았던 생각이 났다. 어른들은 머리나 겨우 집어넣을만한 소파 사이 공간에 나와 사촌동생들은 기어서 들어갈 수 있었다. 소파 사이 공간을 지나면 벽과 소파 사이에 1명이 겨우 지나갈 작은 틈이 길게 있었는데, 그 틈이 너무나 좋아서 나랑 사촌동생들은 그곳에 담요도 가지고 가고, 장난감도 갔다 두었다. 우리가 하도 그곳에 예사로 드나들다 보니, 어른들은 먼지 구덩이를 기어 들어간다며 싫어하시면서 틈을 막아버리려고 하셨다. 하지만 사촌동생들과 우리는 나이를 먹어서 구멍에 들어가지 못할 때까지 줄기차게 들어가서 아지트 놀이를 하곤 했다. 나이를 먹고 외갓집도 좀 더 작은 집으로 이사한 후에 외할머니가 그 시절 어린 우리들이 외갓집에 방문한다고 하면, 먼저 그 소파를 들어내서 먼지를 청소하셨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제야 우리가 매번 무릎이 닳도록 들어가던 그 먼지 구덩이가 사실은 외할머니의 센스가 가미된 공간이었다는 것을 연필 두 다스 정도의 나이를 먹고서야 알 수가 있었다.

무민의 집이 딱 그 먼지 구덩이였다. 작고 어둡고 놀거리가 많은 아이들만의 공간. 무민 집의 창고는 제일 깊숙한 곳에 있었고  한쪽에는 가짜 쨈들과 와인들이 놓여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화덕 모양의 비밀 통로로 아무도 몰래 살짝 나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어른들은 결코 들어올 수 없을 것 같은 안전하고 포근한 장소였다. 하지만 우리 외할머니처럼 이 곳의 스태프도 매일 정돈하고 닦아내는 곳일 것이다.

이런 곳에서는 술래잡기가 제일 재밌는데, 지금은 내가 너무 커버려서 저 조그만 비밀 통로로는 나갈 엄두도 낼 수가 없었다. 창고에도 겨우겨우 머리만 집어넣은 상태였으니까. 지금 술래잡기를 한다면 십중팔구 술래는 나일 테지. 그 전에 아이들은 술래잡기에 껴주지도 않을 것 같다. 어쩐지 조금 슬퍼졌다.



무민의 집을 아이들에게 넘겨주기 위해(무민의 집에 어른이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뒤에서 자신들의 놀이터를 뺏긴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돌아나오면서도 너무나도 아쉬웠다. 입장권과 함께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물약을 판다면 좋을 텐데. 그건 또 지나친 어른의 욕심 같지만 너무나도 아이들의 시선과 즐거움이 부러웠다. 어릴 적 그때는 작은 것에도 새로운 이야기를 생각하고 새로운 놀이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어른이 된 지금은 아이들처럼 신나게 놀고 기뻐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다.

어른이 되면 시간이 빠르다고 느껴진다던데, 그게 사실은 인지와도 관련이 있다고 한다. 뇌는 효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중복된 정보를 지워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어릴 때는 모든 게 새로워 그걸 인지하고 처리하느라 하루가 길게 느껴지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일상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으니 시간이 더 빠르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리 생각하면 몸만 작아진다고 무민의 숲에서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 같다. 마음도 어려질 준비를 하고 와야 할 것 같다.



무민의 숲에서 동굴을 빠져나오니 유니바켄 샵이 나왔다. 다양한 동화책들과 인형, 아이들용 장난감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한 터라 짐을 늘릴 수는 없었다. 예전에 책 욕심에 책을 바리바리 샀다가 몸도 마음도 트렁크도 너덜너덜해져서 귀국한 적이 있음으로, 눈길도 못 주고 빠져나왔다. 물론 내가 예쁜 조카가 있거나 예쁜 자녀가 있다면 이 곳에서 반나절은 금방 보냈을 것 같다.

기념품 샵까지 오면 이제 유니바켄을 다 보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감탄하느라 제대로 만끽하지 못했던 이야기 열차가 아쉬워 다시 되돌아가 직원에게 한 번만 더 타고 싶다고 부탁해 한 번 더 이야기 열차를 탑승한 후에야 후련한 마음으로 바사호 뮤지엄으로 향할 수 있었다.




유니바켄 Junibaken

http://www.junibacken.se/


2016년부터 스톡홀름 카드로도 입장이 가능하다.

동화의 광장, 삐삐의 집, 갤러리, 이야기 열차, 레스토랑, 무민의 숲(2017년 1월까지)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해진 시간마다 연극 공연을 한다. 캘린더를 통해 몇 시에 어떤 연극을 하는지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영업시간 :

AM 10:00 - PM17:00 ( 8월 15일부터 6월 30일까지 )

AM 10:00 - PM 18:00 ( 7월 1일부터 8월 14일까지 )

9월부터 4월까지는 월요일에 오픈하지 않는다. ( 화 - 일 )

5월부터 8월까지는 월요일에 오픈한다. ( 월 -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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