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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노 Mar 29. 2016

핀란드 젊은 부부의 아침 식사

여행지에서 만난 집밥 Vol.1


핀란드 여행의 계기가 되었던 친구 부부 제이드와 야니는 오울루(Oulu)라는 핀란드 북쪽의 도시에 살고 있었다. 산타 마을로 유명한 로바니에미와 가깝기도 하고, 세계 최북단에 있는 종합 대학인 오울루 대학교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야니가 마지막 학기를 마치기 위해 오울루 대학교로 돌아오면서, 제이드와 야니는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학생 주택에서 신혼을 꾸렸다고 했다. 오울루는 관광으로 유명한 곳이 아니라서 평범한 여행 코스라면 들릴 일이 없을 테지만 나는 제이드와 야니를 만나 하루 오울루 관광도 하고, 그 다음날 아침에 함께 로바니에미를 가기로 했기에 헬싱키에서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 4시 반에 숙소에서 길을 나섰다. 첫차 시간이 일러서인지 도로에서 차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어두운 새벽 거리에는 굵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꺼내기에는 짐이 무거워 스키복 후드를 뒤집어쓰고 걷기 시작했다. 투둑투둑 굵은 비가 옷을 때렸다. 헬싱키를 떠나는 날 비가 와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헬싱키는 비가 오지만 저 위쪽의 오울루에서는 눈이 내리겠지.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북유럽의 도시를 드디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유럽의 크리스마스는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우리나라의 추석과도 같은 명절이라 그런지, 4시 50분에 출발하는 핀에어 버스 첫차 앞에는 핀란드 사람들로 가득했다. 운전기사에게 편도 요금을 계산하고 아늑한 리무진 버스에 올라탔다. 북유럽에 와서 통 눈을 구경할 수가 없었는데, 4일간은 북쪽의 매서운 추위와 무릎까지 오는 눈을 체험하리라 생각하니 두근거렸다. 헬싱키 반타 공항에서 비행기로 1시간이면 오울루 공항에 도착한다. 서울에서 부산을 오가는 것처럼 길지 않은 시간이다.



착륙하는 비행기의 동그란 창 밖으로 하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까만 활주로 사이에 드문드문 미처 다 치우지 못한 눈더미들이 보였다. 출구를 나오자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공항 내 카페와 가게 사이로 무민 인형이 눈에 들어왔다. 짐을 찾고 나오자 가족을 마중 나온 사람들이 두툼한 외투를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작지만 예쁘게 꾸며진 오울루 공항이 마음에 들었다. 제이드를 어떻게 만나야 할까 고민했는데, 오울루 공항이 워낙 작아서 나가자마자 제이드와 야니가 탄 차를 만날 수 있었다.




고운, 배고프지? 얼른 아침식사하러 가자!



나와 함께 로바니에미로 가는 일정을 위해 제이드와 야니가 야니의 어머니께 차를 빌렸다고 했다. 실용적으로 생긴 자동차를 보며 내가 신기해하자 북쪽 지방일수록 튼튼한 차종을 선호한다고 제이드가 설명해주었다. 겨울에는 오울루의 모든 승용차가 의무적으로 스노우 타이어를 사용하도록 정해두었다고 하니 내가 새삼 북유럽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어두운 아침을 헤치며 제이드가 오늘의 일정을 대략 설명해주었다. 아쉽게도 요 며칠은 날씨가 좋지 않아 눈이 얼기 시작했다고 제이드가 이야기해주었다. 눈으로 가득한 풍경을 보고 싶었던 터라 아쉽기도 했다.


핀란드인인 야니는 이 정도 추위는 가볍다면서 코트 하나만 걸치고 맨손으로 다녔다.


핀란드 학생들이 이용하는 학생 주택은 어떨지 기대하며 도착한 제이드와 야니의 집은 곧 1월에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라 세간살이가 많지는 않았지만 깔끔하고 적당한 크기의 야니의 아시아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집이었다. 구석구석 제이드가 꼼꼼히 챙긴 살림이 귀엽게 느껴졌다.


냅킨부터 음료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제이드


들어서자마자 현관 옆 벽면에 걸려있는 '행복'이라는 두 글자에 웃음이 나왔다. 무슨 말인지 아냐고 야니에게 물으니 'Happy'라고 대답했다. 제이드가 아침 식사와 도시락을 준비하는 동안 (야니가 아르바이트 중에 먹을 저녁 도시락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야니는 제이드를 조금씩 도우면서 내게 집을 안내해주었다. 나중에 들으니 요리는 제이드가, 그 뒤에 뒷정리는 야니가 분담해서 한다고 했다. 제이드는 제법 익숙한 모습으로 부엌을 돌아다녔다. 냉장고에서 꺼낸 오렌지 주스와 햄, 치즈, 버터, 요거트처럼 보이는 무엇을 꺼내 늘어놓았고 어제 먹다가 남은 브리토 재료로 야니의 도시락을 준비했다.



누가 학구파 커플은 아니랄까 봐 벽 중앙에는 손수 그린 시간표까지 있었다. 시간표조차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곳곳에 조금씩 있는 산타클로스 장식이나 크리스마스 초콜릿 트리 박스가 동양화들 사이에 놓여 있는 것도 제이드와 야니다웠다. 제이드가 평소보다 힘을 줘서 차린 아침식사와 도시락이 완성되고 식탁에 모여 앉았다. 아쉽게도 의자가 2개뿐이라 야니는 서서 먹겠다고 했다. 평소에 바나나나 시리얼로 아침을 간단히 먹는다고 했는데 오늘 식탁에 놓여진 가짓수만 보아도 오늘을 위해 제이드가 신경을 쓴 티가 역력하게 났다. 고맙고 또 제이드를 만나러 오기를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핀란드에서 인기있는 Viili 요거트를 알려주는 제이드, 그릭 요거트보다 끈끈한 점성이 특징이다.
깨가 쏟아지는 제이드 야니 부부


제이드가 맨 처음에 먹어보라고 권한 것은 Viili라는 요거트였다. Viili는 핀란드식 요거트라고 하는데, 몸에 좋고 건강하다고 해서 핀란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고 했다. 제이드가 이번에 사 온 맛은 바닐라 맛인데 저번에 베리맛을 먹고 맛이 있어서 나에게 맛보여주기 위해 특별히 사다 두었다고 했다. 혼자 헬싱키 슈퍼를 가서 장을 볼 때는 요거트인줄 알고 스쳐 지나갔는데 통 모양도 큼직한 것이 뭐가 다를지 궁금했다. 뚜껑을 열어 숟가락으로 떠보니 끈끈한 낫토처럼 점성이 있고 덩어리처럼 미끄덩하다.



밋밋한 맛과 미끄덩한 식감에 깜짝 놀라 제이드를 바라보니 제이드는 맛있게 잘 먹고 있었다. 그릭 요거트와 전혀 다른 미끄덩한 질감의 Viili를 어떻게 마저 먹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제이드가 챙겨준 바나나를 잘라서 섞어 먹었다. 과일과 섞어 먹으니 운동하는 선수들이 먹는 건강식처럼 느껴졌다. 실제로도 운동하는 사람들이 자주 먹는 간식이라고 한다. 이 Viili라는 핀란드 요거트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신기한지 유튜브에도 영상들이 제법 있다. 찾아보니 Viili는 핀란드/스웨덴 식 요거트로 독특한 질감이 특징인 듯했다.


치즈처럼 쭉쭉 늘어나는 Viili 핀란드 요거트 영상 : https://youtu.be/9bxiOc9BdTQ



핀란드식 요거트를 먹고 나서, 시리얼을 먹으려는데 오븐에서 '띵'하는 소리가 울렸다. 제이드가 부엌 오븐에서 라이스 브레드를 꺼내왔다. 낙엽처럼 생긴 빵인데, 속이 말랑해 보이는 무언가로 채워져 있었다. 언뜻 보면 파이 같기도 했다.




이게 뭐야?


핀란드 사람들이 자주 먹는 쌀로 만든 빵이야. 맛있어! 먹는 방법을 알려줄게.



아무래도 제이드는 오늘 아침 식사로 내게 핀란드 사람들의 음식들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Viili는 겉모습이 요거트와 비슷해서 방심했다면, 이 빵은 대체 어떻게 먹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알고 보니 이 낙엽처럼 생긴 빵은 까라야린삐리까(karjalanpiirakka)라는 핀란드의 전통 빵으로 버터와 우유에 죽처럼 끓인 쌀을 얇은 호밀 반죽 안에 넣어서 구운 페이스트리라고 한다. 집집마다 만드는 방식이 다르다고 하는데, 대중적인 빵인지 슈퍼에만 가도 한 뭉치씩 팔고 있었다. 쌀로 만든 생경한 빵의 모습에 놀란 나를 위해 제이드가 먹는 방법을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누군가는 번데기같다고 하는 까라야린삐리까 일명 쌀빵 / 밥빵


따끈한 까라야린삐리까 위에 제이드가 먼저 버터를 발랐다. 말랑한 속 위에 버터를 바르니 조금 스며드는 거처럼 보이기도 한다. 보기에 느끼해 보이는 빵인데 버터를 왜 바르는 걸까 궁금했지만 나중에 먹어보니 빵 자체는 담백하고 말랑해서 버터가 고소하게 잘 어울렸다.


선생님처럼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제이드


탱글하고 부드러운 속 위에 버터를 바른 후에 기호에 따라 햄이나 치즈를 얹어 먹는다고 했다. 이렇게 만들어서 먹으면 두 개정도만 먹어도 든든하니 포만감이 든다고 했다.


제이드는 햄 한장, 치즈 한장을 올렸다.
나는 욕심쟁이니까 햄 두장에 치즈 한장


햄과 치즈의 선전을 기원하며 입에 한입 물었다. 바스락하고 겉의 호밀 껍질이 속의 말캉한 속과 함께 씹혔다. 짭조름하고 고소한 치즈와 짭짭한 햄이 버터가 스며든 빵과 잘 어울렸다. 맛있어서 하나 더 먹고 싶었지만 우유를 부어둔 시리얼이 가차 없이 불어나고 있었다. 바나나에 요거트에 까라야린삐리까 그리고 시리얼까지 모두 먹고 나니 더없이 배가 불렀다. 특히 까라야린삐리까가 정말 신기하고 맛있었다. 나를 위해 이렇게 준비해준 제이드가 고마웠다. 이렇게 정말 핀란드식 집밥을 얻어먹으니 내가 해외에 왔다는 실감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창 밖으로 제이드가 늘 보았던 풍경을 함께 살피며 내 친구가 정말 핀란드 남자와 결혼해 핀란드에서 살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제이드, 너 결혼 잘한 것 같아.



생경한 문화와 식재료로 가득한 핀란드라는 나라에 적응하느라 고생했을 제이드와 그런 제이드를 뒤에서 챙겨주는 야니를 보며 진심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런 결혼이라면 해도 좋겠다고, 그래서 둘이 어떻게 만났는지를 물어볼 수밖에 없었던 따뜻한 아침이었다.







PS



제이드와 야니가 살았던 깔끔하고 정갈한 학생 주택은 1971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엘리베이터의 버튼이 고풍스럽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밑에 적힌 1971년이라는 연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학생 주택 1층에는 세탁실과 사우나실이 있다. 학생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으로 임대해준다고 한다. 유학생들과 핀란드 학생들이 임대하는 학생 주택은 건물이 다르다. 실내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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