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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노 Apr 22. 2016

여행지의 식탁에서

여행지에서 만난 집밥 Vol.2


포근하게 삶아진 감자, 진한 고기가 쫄깃하게 씹히는 미트로프, 강낭콩 그린빈 샐러드, 크리스마스 햄, 연어알과 양파가 버무려진 애피타이저, 청어 식초 절임, 호밀빵, 이탈리안 샐러드, 새콤한 주스와 우유, 쨈으로 가득 찬 식탁에서 함께한 따뜻한 점심


크리스마스 이브 점심때와 달리 가벼운 마음으로 점심을 먹기 위해 야니의 외갓집으로 향했다. 주방에 들어서니 뭔가 신기하게 뭔가가 많았다. 냄비에 그득, 볼에 그득, 식탁에도 그릇들이 가득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와 또 사뭇 다른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미트로프와 데워진 크리스마스 햄, 올리브와 토마토가 들어간 리코타 치즈 샐러드, 매쉬드 포테이토와 매쉬드 스위트 포테이토가 싱크대 옆에 차려져 있었고 옆 전기스토브 위 냄비 속에는 크리스마스 햄 위에 뿌릴 소스와 강낭콩 그린빈 샐러드, 삶은 감자가 들어있었다. 우리가 도착하고 바로 할머니의 진두지휘에 따라 주방 안에 음식을 덜어내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들이 기분 좋게 울려 퍼졌다. 손님이었던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주방에 모여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식탁 맞은편에서 바라본 야니와 제이드 그리고 야니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뒷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단란한 가족의 모습으로 보였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내 몫의 빈 접시를 가져다 삶은 감자도 담고, 스위트 포테이토도 담고, 매쉬드 포테이토도 담고, 햄도 담고 담고 담아도 끝이 없었다. 식탁 위에 있는 것들도 수북했으니까.



치즈며, 청어 절임, 이탈리안 샐러드, 호밀빵과 애피타이저들이 식탁 위에 가득했다. 케미에서 먹었던 호텔 조식보다 가짓수는 적었지만 더 맛깔스러워 보였다. 냉장고와 선반 사이를 오가는 할머니 손에서는 먹을 것이 계속 나왔다.



북유럽 여행에서 먹었던 그 어떤 식사보다 '만찬'이라는 말이 제일 어울리는 식사였다. 차가운 애피타이저부터 따뜻하게 데워진 음식까지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삶은 감자도 담백하니 포슬포슬하고 쫀득했다. 소스를 끼얹은 크리스마스 햄은 저번과 또 다른 맛이었다. 미트로프는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고기의 맛이 입안에 가득했다. 볼륨 있는 미트로프를 한번 먹고 매쉬드 포테이토를 먹으면 정말 잘 어울렸다.



연어알과 양파를 되직한 샤워 크림에 섞어먹는 색다른 메뉴는 처음에 꺼려졌지만 먹어보니 아삭하게 씹히는 양파와 톡톡 터지는 연어알이 묵직한 크림과 어우러져 맛있었다. 연어알과 묵직한 크림이 어울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여행 중에 은근히 그립기까지 했다.

*찾아보니 비슷하게 시도해볼 수 있는 레시피가 있다. 한글로 된 레시피이니까, 맛이 궁금하시면 시도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차려주신 음식을 조금씩 맛봤을 뿐인데도 배가 엄청 불렀다. 한 접시를 비우고도 맛있어서 또 덜어다 먹었으니 그런 것이겠지만 이 뒤에 또 디저트가 있을 줄이야! 할머니가 호기롭게 꺼내신 벽돌만 한 3색 아이스크림이 정확하게 3등분 되어 접시에 시럽에 조린 사과와 함께 담겨 나왔다. 정말 과장을 하나도 안 보태고 코팅된 유산지로 싸인 벽돌만 한 아이스크림이었는데 그걸 호쾌하게 3등분을 하실 줄이야. 나는 적어도 절반쯤은 다시 냉동실로 갈 줄 알았다. 할머니가 아이스크림을 냉동실에서 꺼내지자마자 야니와 제이드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웃은 나도 당황할 정도로 접시에 담겨나온 아이스크림의 양은 상당했다. 밥공기에 아이스크림이 가득 담겨나온 느낌? 초코, 딸기, 바닐라 맛 삼색 아이스크림은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 앞에서 팔던 아이스크림을 연상시켰다. 초등학교 이후로는 통 보질 못했는데 지구 반대편 핀란드의 식탁에서 만날 줄이야. 사과를 곁들여 먹으니 어릴 적 그 맛과는 전혀 달랐다. 새콤하고 달큼하게 씹히는 사과와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사르르 입 안에서 녹았다. 어릴 적 추억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식사 후에는 제이드, 야니와 함께 다니며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할머니께 보여드렸다. 사진을 보며 할머니가 해주시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즐거웠다. 허스키 썰매 영상을 보여드렸더니 할머니가 뉴스를 봤냐며 야니에게 핀란드어로 뭔가를 이야기하셨다. 야니도 이야기를 듣자 조금 놀란 것 같았다.


"(할머니 말씀 중) sjdnkfek gkdlsamkakf;de"

"(야니 통역중) 할머니 말씀이 이 보름달이 38년 만에 크리스마스에 뜬 보름달이래."

"38년 만에 뜬 보름달을 우리가 같이 봤구나. 우와!!! 우리 엄청 운이 좋았네."


계획하지 않았던 우연이 신기하기도 하고 반가웠다. 할머니는 우리가 썰매를 타는 동안 지른 비명 소리를 들으며 우후후하고 웃으셨다.




야니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헤어질 땐, 살짝 눈물이 났다. 한번 만나 다시 보지 못하는 인연이야 30년 삶에서 얼마나 많았을까. 그런데도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받은 것은 많은데 언제쯤 돌려드릴 수 있을지 조바심이 이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니 굳이 붙이지 않아도 말 끝에는 건강하시란 소망을 어렵게 엮어본다.


다시 만나 가득한 식탁에서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여행지 식탁에서 만났던 음식들


내가 만났던 북유럽의 식탁을 재현하고 싶다면, 크게 어렵지 않다. 커다란 호밀빵과 버터, 쨈은 기본이고 아래 요리를 준비해보자.


*미트로프

다진 고기를 식빵 모양으로 구운 요리

레시피 : http://allrecipes.com/recipe/16354/easy-meatloaf/


*생선알이 올려진 치즈감자

북유럽에서 자주 먹는 레시피. 간단 전채 요리

레시피: http://me2.do/xWcfTu56


*매쉬드 포테이토

북유럽에서 자주 먹는다. 메이퀸 품종 추천

레시피 : http://allrecipes.com/recipe/24771/basic-mashed-potatoes/


*매쉬드 스위트 포테이토

달달한 고구마의 맛이 브라우닝 되어 색다르다. 

레시피 : http://www.seriouseats.com/recipes/2014/11/the-best-mashed-sweet-potatoes-recip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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