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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틸틸 Mar 26. 2018

도쿄5


유일하게 한국말로 인사 나눈 룸메가 떠나면서, 주머니에 쪽지를 넣어놓고 갔다. 늘어지게 자다 보니 인사를 못한 게 아쉬웠는데, 이렇게 마음을 담아놓고 갔구나. 우리는 왜 여행을 왔고 어디에 사는지와 어디가 좋았으며 어디를 갈 건지를 이야기했는데 서로의 이름은 묻지 않았다. 여행 중에 우리는 그렇게 인사를 주고받으며 속내를 터놓다가도 이름을 묻지 않는다. 이름의 특별함에 대해서 생각하다, 친구들하고 온 그녀가 저녁에 맥주 한잔 하자고 권해준 것도 참 고마웠다. 그럴 필요가 사실 없는 일인데, 피곤함에 거절했지만 다음날 사케를 마시자며 한 번 더 권해주는 배려도 고마웠다. 쪽지에도 남겨져 있지 않은 이름이지만, 에너지가 좋은 사람이라 기억할 것이다.


인사만 했는데, 어제는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이토야가 너무 좋아서 누구라도 붙잡고 이토야에 대해 설명해주고 싶었던 밤이었다. 망가가 너무 좋아서 이 나라에 온 친구라 이토야에도 흥미를 느껴 난 알찬 정보를 준 사람이었고, 아침에 다시 만나 계획을 묻는데 무계획인 내게 매일 진행되는 호스텔 피크닉에 대해 알려줬다. 이렇게 정보를 주고받았고, 바로 근처 작은 공원에서 같이 돗자리를 피고 벚꽃 구경과 간단한 스낵을 펼친다. 독일인 2명, 미국인 한 명, 나, 일본인 스탭과 대만인 스텝까지 6명이서 작은 돗자리에 옹기종기 앉아 벚꽃 아래에서 느긋한 일요일을 보냈다. 어느 여행지에서 만나는 그런 이야기들, 날씨가 참 좋았고 사람들의 웃음이 번졌고 모두가 평화로운 그런 날이다.





소풍이 끝나고, 캐럴을 따라나섰다. 내일 떠나는 친구라 오늘은 하나라도 더 보길 원해서 우선은 우에노 공원에 가서 한 바퀴 쓱 돌고, 지요다 공원으로 가서 제대로 둘러봤다. 산처럼 수북이 쌓여있는 벚꽃 아래서 배를 타는 모습들이 한없이 여유로웠다. 우리나라와 똑 같이 여행카페에서 만난 독일 친구 두 명. 그 독일 친구와 여행 중에 만난 멕시코 친구 그리고 지요다 공원에서 길을 헤매다 만난 네덜란드 부부. 그렇게  공원에서 재미있게 구경하고 타이완 음식을 먹었다. 어떤 이야기들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쓰지 않아야겠다. 맨날 혼자 다니다가 오랜만에 사람들하고 어울려서 열심히 걸었다니 신도 나고 활기도 생긴다. 어제만 해도 든 생각이 심심해도 외롭지 않으니 참 좋다 였는데 어차피 감정이란 지속적인 게 아니라 오늘 나름의 즐거움은 또 있었다. 계획은 레인보우 브리지까지 가는 거였는데 내 계획에도 없던 지요다 공원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쓰다 보니 다들 넉다운이 되었다. 낮에 한번 지요다는 다시 가봐야겠다.





어제는 벚꽃만큼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서 풍성했다. 사실 여행에서 만나면 다들 조금 더 오픈된 마음이고 즐거운 에너지가 가득해서인지 서로의 좋은 점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어제도 그런 하루였고 다른 친구들과 헤어지고 캐럴과 숙소로 열심히 돌아오면서 지나친 풍경들과 흘러가는 이야기들 그리고 네덜란드 부부의 내가 보지 못했던 특별한 결혼식 장면들이 너무 이뻐서 사진 보내주기를 부탁했다. 그래서인지 어제의 여파가 오늘도 이어져 못 일어나겠다. 오늘도 도쿄 날씨는 이렇게 좋은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 겨우 손가락만 이러고 있는데 역시 체력의 한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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