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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무 Dec 02. 2022

거울 속의 거울

2022년 제3회 이병주 스마트소설 공모전 동상


  

   딱 걸렸다. 뱀눈과 마주쳤다. 놈이 따라준 소주를 테이블 밑 맥주잔에 붓고는 빈 잔을 입에 대려는 찰나였다. “뭐 하노?” 놈이 음침한 목소리를 날름거리며 내 빈 잔에 소주를 다시 가득 채웠다. “쭈욱 들이키라.” 놈도 알고 있다. 내가 없는 것이 많다는 걸. 그중에서도 알코올 분해효소가 없어 회식 때마다 칠성 소주를 마신다는 것도. 며칠 전부터 놈이 승진심사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빽도 배알도 없는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놈이 계속 나를 노려보고 있다. 설마 죽겠어? 에라이! ……. 놈이 킥킥댄다. 그러고는 옆에 앉은 여자 과장에게 오빠,라고 해달라며 잔을 건네고 술을 채운다. 미친 새끼. 아내의 회사에도 저런 새끼 한 마리가 있다고 했지. 그 잔을 가로채 내 목구멍으로 들이킨다. 놈이 뭐라 또 날름거리는데 들리지 않는다. 세상이 까맣게 뱅뱅 돈다. 구토가 올라온다. 일어서려고 비틀거리자 옆에 앉은 정 대리가 부축한다. 우욱, 화장실로. 노란 오줌으로 여기저기 얼룩진 변기를 부여잡자 지린내가 올라온다. 오랜만에 맛본 병어 회무침이 급발진하듯 목구멍에서 뿜어져 나온다. 얼굴에 토사물과 변기 물이 튄다.

토악질해댄다. 더러워, 더러워, 더러운 새끼. 세면대로 옮겨가 물을 틀고 얼굴과 입안을 불어 터지도록 씻고는 거울을 본다. 뭐지? 뭐야 이거. 알코올에 시뻘겋게 점령당해 있을 얼굴이, 서른아홉 번째 생일에 아내가 사준 하늘색 셔츠를 입고 있는 내가 거울 속에서 보이지 않는다. 거울이 아닌가? 아니, 분명 거울이다. 세면대 앞 손 소독제, 내 뒤의 검은 화장실 문, 그 문에 붙어 ‘잊으신 것 없으세요?’라고 묻고 있는 스티커는 좌우가 뒤집힌 채 선명하게 보인다. 거울이 바라보고 있는 화장실 안 모든 사물은 그대로 거울 속에서 비취는데 나만 없다. 분명 맨눈으로는 팔이며 다리, 머리를 뺀 몸통이 다 보인다. 손을 뻗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더듬는다. 무사하다. 다시 거울을 본다. 미치겠다. 없다, 내가. 어쩌지를 못하고 멍한 채 거울만 응시하고 있는데 검은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온다. 정 대리다. 이런, 그는 보인다. “과장님, 괜찮으세요?” 정 대리가 물으며 다가온다. “정 대리, 나 보여?”“네? 무슨 말씀이세요?”“거울 속에서 내가 보이냐고!”“네, 물론이죠. 보이잖아요. 안 보이세요 과장님?” 정 대리가 실실 웃는다. 그런데 그 실실거리는 눈가에 순간 어둠이 스친다. 불안한 듯 재촉한다.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나가시죠. 부장이 찾아요.” 그래 취한 거야, 취한 것뿐이야. 웅성대는 방의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자 놈이 날 바라본다. 내가 보이나 보다. 다행이다. 다행인 건가. “김 과장, 내뺀 줄 알았다. 뭐 하노, 다시 받아라.”


  목이 마르고 머리가 조여 온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는지 창밖이 거무스름하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마른세수를 한다. 쓱쓱. 살갗들이 내는 작은 마찰음에 정신이 번쩍 든다. 화장실로 달려들어 간다. 젠장! 없다. 거울 속에 내가 없다. 아니 정확히는 거울 속의 내가 안 보인다. 확인해야 한다. 옷을 대충 차려입고 회사로 가기 위해 사택을 나선다. 회사 정문 경비 아저씨다. 그의 안색을 살피며 다가간다. 다행히 인사를 건넨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놈이 졸고 있다. 직원들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갈라진 목소리들로 인사를 건넨다. 정 대리만이 괜찮냐, 라며 옆에 와서 알은체를 한다. 컴퓨터를 켠다. 까만 모니터에 반사되어 있을 내가 보이지 않는다. 하룻밤 사이 어긋나 버린 나에 대해 생각할 틈도 없이 졸고 있던 뱀이 일어나 삼 분기 실적 보고서를 빨리 달라고 소리친다. 한글을 띄우고 흰 바닥에 까만 글자들을 새기기 시작하자 거울이 잊힌다. 내가 잊히고 문자와 숫자들만이 흰 공간을, 멍한 시간을 채워나간다.

  구내식당에서 식판을 받고는 숟가락을 들어 내 얼굴을 비춰본다.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배는 고프다. 뱀이 독을 뿜기 전에 빨리 먹고 사무실로 올라가 보고서를 마저 써야 한다.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보고서를 올리고 또 전화를 받고 협조 문서를 작성하고 나니 퇴근 시간이다. 그제야 더럭 내 얼굴의 행방이, 아니 거울이 생각난다. 거울, 얼굴. 그래 얼굴. 어쩌다 거울 속에서 나만 나를 보지 못하는 것인지.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었더라. 희미하다. 나는 희미했다. 어느 순간 동기 중에서 나만 과장에 머물러있다는 걸 알았다. 뱀에게 물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승에 대한 압박감이 내 얼굴을 점점 희미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표정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부정했다. 나는 나를 끊임없이 반사했다. 결국 이제는 거울 속의 거울처럼 소실점을 지나 그 희미한 얼굴마저도 볼 수 없게 되어버린 걸까.


  금요일 저녁이다. 아내가 있는 집으로 가기 위해 고속버스를 탄다. 창가 좌석에 앉자마자 중년의 남자가 옆 좌석에 앉는다. 어둑해진 바깥공기가 버스의 모든 창을 거울로 만든다. 이렇게 집으로 갈 때마다 검게 흐르는 풍경 위에 떠 있는 내 얼굴을 보곤 했었는데. 옆 좌석 남자가 팔짱을 끼고 졸고 있는 모습이 창에 비친다. 나도 비칠 것이다. 지금 나는 어떤 표정일까. 졸고 있는 남자를 깨워 물어볼까. 창에 비친 제가 보이나요? 당신의 모습은요? 어쩌면 죽을 때까지 나는 내 얼굴을 못 본 체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얼굴은 이미 희미했었다. 하루 중 내 얼굴을 볼 시간이 얼마나 있다고. 남들에게만 보이면 되는 거 아닌가. 거울 밖의 얼굴이든 거울 속의 얼굴이든. 사람은 어차피 자기 얼굴을 직접 볼 수는 없다. 거울에 비친 모습도 좌우가 뒤집힌 허상이 아니던가. 내 첫인상이 어떤지, 어디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늘 타인이 말해주지 않았던가. 놈도 자신의 눈이 뱀눈이라는 사실을 화장실 변기에 앉아 똥을 싸며 알았을 것이다. 오줌을 갈기며 자신을 뒷담화하던 나를 통해. 배설의 장소는 가장 진실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이제 내 얼굴은 타인의 언어를 통해서만 가늠할 수밖에 없겠지. 아내가 섹시하다며 좋아하던 내 두툼한 입술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버스는 무심히 달린다.

  집에 들어선다. 아내가 변함없는 목소리로 나를 맞이한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반달눈 속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다. 그녀는 최근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 때문에 야근이 잦다고 일주일 내내 전화로 징징대기는 했었다. 나는 혹시, 하며 현관 좌측에 서 있는 전신 거울을 본다. 옷맵시를 즐기는 아내를 위해 큰맘 먹고 백화점에서 구입한 거였다. 역시나. 그 커다란 거울 속에서 나는 보이지 않고 아내의 지친 옆모습만 보인다. 나를 따라 아내도 거울을 본다. 순간 그녀의 반달눈이 거울 속에서 함몰한다. 이런, 알아버린 거야. 내가 보이지 않는 거야. 그녀가 여기저기 잘게 껍질이 일어난 입술을 떨며 말한다.

  “여보, 거울 속에서 내가 안 보여.”                








학교 과제로 제출했던 엽편소설(원고지 16매)을 그냥 묵혀두기 아까워 마침 '스마트소설' 공모전이 있기에 별 기대 없이 응모했었습니다. 그런데 덜컥 당선이 되어버렸지 뭡니까. 비록 동상이고 상금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저는 정말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큰 상을 타보신 작가님들은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서도.

그러나 지난 10월의 이야기고요,  설마 커피믹스 하나 못 타겠어? 하며 응모했던 단편소설들은 상심하여 찌그러져 있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저는 계속 쓰려합니다. 위의 소설이 실린 문예지를 받아보니 수상자 중에는 신춘문예 등단 소설가도 있었고요 시인도 있었습니다. 대상은 20대의 문학도가 수상했지요. 나름 뿌듯했지 뭡니까. 역시나 나이는 제가....

별것 아닌 소식을 굳이 전하는 것은 저도 이곳의 뭇사람들처럼 살짝 자랑도 하고 싶었고(네 목말랐습니다), 무엇보다 제 스스로와 당신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습니다. 아주 작은 열매라도 맺을 수 있도록 꽃을 피워보자고요. 큰 열매에 밀려 아지더라도 열매를 포기하지 말자고요.

포기만 하지 말자고요.



오늘 밤 자정 거대한 상대 포르투갈과 맞서게 될 우리의 전사들을 응원합니다. 온 에너지를 모아 '불 싸지를' 그 아름다운 영혼들을요. 대한민국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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