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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무 Dec 21. 2022

겨울 우체국에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쓸쓸한 가슴은 아직도 가고 있는지




추위랬다. 겉옷을 삼중으로 입고 털모자 쓰고 가죽장갑까지 끼고서야 집을 나선다. 쨍하고 날카로운 겨울 아침 공기가 콧속으로 훅 들어온다. 우체국이 있는 건널목 너머에 붕어빵을 파시는 노부부가 작은 트럭에서 짐을 내리고 있다. LPG 가스통, 붕어빵 틀, 할머니께서 앉으실 작은 의자가 차례로 내려온다. 오늘도 남편 퇴근 후 공원 산책 길에 붕어빵을 사 먹어야지 생각한다. 이천 원에 세 마리. 우리는 여섯 마리를 사서 공원 가는 길에 뜨겁게 두 마리씩 먹고 두 마리는 야식으로 남겨두곤 한다.


우체국 유리문을 열고 들어선다. 대기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번호표는 뽑지 않고 포장을 먼저 하기로 한다. 3호 박스를 골라 선물을 넣고 투명 테이프로 봉하고 주소를 적는다. 받는 이를 제대로 썼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창구로 간다.


  내용물이 뭐예요?

  옷이에요.

  영수증은 종이로 드릴까요, 모바일로 드릴까요?

  모바일로 주세요, 감사합니다.


올해는 조금 늦었다.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에는 보내곤 했었는데 하는 일 없이 바쁜 일상 속에서 깜빡했다가 아이가 보내온 연말카드를 보고 부랴부랴 준비했다. 요즘 아이들은 무*사에서 파는 브랜드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 그곳에서 맨투맨을 샀다. 유도를 하는 친구라 사이즈는 XL로 골랐는데 그것도 작을까 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아이가 중1 때 처음 만났고 새해에 고2로 올라가니 햇수로 4년 차의 인연이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주기적으로 주고받는 편지 속에서 아이는 마술처럼 쑥쑥 커갔다. 짓궂어 보였던 얼굴이 이제는 의젓하고 안정감이 있다.


"올해는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내년에는 더 좋은 성과를 낼 겁니다. 공부는 조금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는 저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는 스스로를 보면서 마음을 다잡고 있다는 카드 속 문장에 오래 머물렀다.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쓸쓸한 가슴*을 앓고 있던 터였다. 설레며 우편으로 보냈던 소설들은 파쇄기에서 폐기될 것이고 2년 동안 쓴 글을 묶은 브런치북은 구석에서 식어있다. 열심을 냈던 스스로의 모습은 외면한 채 초라한 결과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열일곱 살 아이의 시선은 달랐다. 희망은 성과가 아닌 '열심히 하는 자신의 모습'에 있다고 다부지게 말하고 있었다. 계속 달릴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기특하고 고마웠다.


선물은 적어도 금요일 전에는 도착할 것이다. 제발 이번에는 사이즈가 잘 맞아서 기쁜 마음으로 입어주었으면.

우체국을 나오니 붕어빵 천막이 완성되어 있다. 할아버지는 바람이 들어올 것 같은 틈을 자루 같은 것으로 막고 있다. 다리가 불편하신 할머니가 편하게 붕어빵을 구울 수 있게 모든 준비가 끝나면 할아버지는 작은 트럭을 끌고 돌아가신다. 그리고 저녁 8시쯤 할머니를 모시러 다시 오실 것이다. 어쩌면 우리 부부는 어느 날처럼 떨이로 남은 붕어빵을 선물로 하나 더 얹어 받아 넙죽 절하고 공원으로 향할지도 모르겠다.


강한 추위다. 나의 쓸쓸한 가슴은 아직도 어디론가 가고 있지만 곧 안착할 것이다. 따뜻한 봄이 오기 전에 붕어빵처럼 붉고 뜨거운 속을 담고 다시 우체국으로 향할 것이다. 아이가 전해준 동력으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쓸쓸한 가슴들은 아직도 가고 있는지

  허전한 길에

  씁쓸한 뉘우침은 남아

  안타까운 목마름의 불빛은 남아

  스산하여라 화려하여라

  - 김규동 <송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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