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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sian Nov 09. 2019

어린 날 기억의 지도를 펼치면...

시간을 거슬러 유년에 머무는 <작은 집 이야기>


 
옛날 아주 먼 옛날, 저 먼 시골 마을에 작은 집이 한 채 있었습니다. 아담하고 아름다운 집이었죠. 튼튼하게 잘 지은 집이었고요. 작은 집을 튼튼하게 지은 사람이 말했어요.
 
“금과 은을 다 주어도 이 작은 집은 절대로 팔지 않겠어. 이 작은 집은 우리 손자의 손자, 그리고 그 손자의 손자가 여기서 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오래도록 남아 있을 거야.”


「작은 집 이야기」 중에서
버지니아 리 버튼(1909~1968) 그림 글,
시공주니어(1993)
The Little House / Virginia Lee Burton(1942)



언덕 위의 작은 집은 매일같이 뜨고 지는 해와 차오르고 다시 작아지는 달을 바라본다. 계절의 흐름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자연을 지켜보며 온 몸으로 행복을 느낀다.


사계절이 지나간 자리엔 한 해 한해 켜켜이 시간이 쌓인다. 어릴 적 뛰놀던 꼬마들은 어른이 되어 도시로 떠나고 시골엔 점점 더 많은 길들이 새로 난다. 작은 집 주변으로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차고 집 앞에 전차가 생기더니 위로는 고가도로가, 땅 아래로는 지하철이 지나간다.


모든 것이 시시각각 빠르게 변한다. 밤은 낮보다 더 밝고, 공기는 매캐하고 소음이 진동하는, 별도 달도 숨죽여 밤이 사라진 도시. 시골은 그렇게 또 하나의 작은 도시가 되어가고... 그곳에 작은 집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어제도 오늘도 쉴 틈 없이 뛰어다니느라 바쁘다. 주인의 말대로 금은을 다 준대도 팔릴 수 없는 작은 집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낡고 초라해질 뿐이다. 과연 이 어여쁜 작은 집의 내일은 어떻게 될까.






그림책 「작은 집 이야기」를 볼 때마다 지금은 은평 뉴타운이 되어 몰라보게 변한 어릴 적 살던 동네 구파발이 생각난다.


가게 2층 다락방에서 삼 남매가 복작거리던 그 집도, 이슬비 내리던 날 엄마 따라 뒤편 언덕길을 올라가다 엄마가 “여기가 이제 우리 집이 될 거야.”라고 말하던 마당 있는 주택 집도 이젠 사라지고 없는 그곳. 어쩌다 약속이 생겨 가면 빽빽이 들어찬 아파트 숲과 화려한 쇼핑몰을 앞에 두고 왠지 모르게 먹먹해지는 그곳. 이젠 오직 기억 속 지도에만 존재하는 어릴 적 동네 우리 집.



요네하라 마리 <교양노트> 속 한 구절을 만났을 때,

나의 감각은 아스라이 멀어진 유년의 기억 속 지도를 펼쳐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내비게이션에 무모하게 길 찾기를 시도하는 기분이 들었다.


잘 때는 머리맡에 두고, 친구들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주고, 집에 놀러 온 어른들에게는 낭독을 부탁해 내가 느꼈던 감동을 함께하기를 바랐다. 아무튼 한 몸처럼 지니고 다녔으니 금세 너덜너덜해지고 말았다.

… (중략)

지금도 도시의 거리를 걷다 보면,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한 작은 집들의 비명이 들려온다. 다시 한번 그 배후에서 그림책의 집처럼 구원받지 못하고 철거당하는 무수한 집의 신음소리가 덮쳐온다.
 
_ 요네하라 마리 「교양노트」
   ‘그림책의 집’ 중에서...
 


작가의 문장 속에서 발견한 기억의 접점은 점점 선명하게 드러났다. 가게 위 다락방이 있던 집과 열세 살 무렵, 없는 살림에 알뜰살뜰 모아 부모님이 처음으로 장만한 집, 내 방과 책상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구름 위를 걷듯 기뻤던 날이 눈 앞으로 성큼 다가오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 생활 초년기, 동네 재개발을 앞두고 골목 어귀에 자리한 집의 담벼락이 허물어져지기 시작했다. 밤늦은 퇴근길, 그 골목 초입에 들어서면 길을 밝혀주는 오렌지색 가로등 불빛을 보고 안심하는 순간도 잠시. 살던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동네의 온기가 차츰 식어가는, 컴컴하고 적요한 밤 골목을 걸어가는 일은 생을 다해가는 집의 역사, 한 가족이 새겨둔 기나긴 추억의 시간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유년의 우리집과 동네 골목길은 흔적도 없이 스러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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