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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sian Dec 17. 2019

쩬니 쩬니

간식은 맛있어


둘째 꼬망은 모든 게 빠르다. 그리고 자유롭다. 적응력도, 눈치도. 한번 마음에 들면 그게 무엇이든 흠뻑 빠져들어 나의 간섭이나 잔소리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만큼 고집이 강해 절대 굽히는 법이 없다. 첫째 윤과는 확연하게 다른 게 이 점이다. 부모의 육아에 대한 사전 경험이 있고 없고의 차이에서 비롯된 관점의 차이 때문일까. 둘째 아이 육아는 웬만하면 ‘관대하게’ 넘어가는 편이다. 둘째의 똥고집을 꺾으려 할수록 감정소비만 한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이건 첫아이 육아 시절에는 상상하기 힘든 그림이다. 첫 육아, 나도 남편도 부모 노릇은 처음이라 모든 게 낯설고 두렵고 미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매사에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때론 예민 모드가 발동해 직감과 육감을 포함한 온 감각의 날을 바짝 세우곤 했다. 생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아기가 소화가 잘 된다는 모유만 먹는데도 배앓이(영아 산통)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날. 부모 필독서인 <삐뽀삐뽀 119 책>을 뒤적거리니 배앓이하는 아기가 편해지는 자세에 대한 정보가 나와 있었다. 남편은 책의 그림을 보고 곧장 두 팔꿈치를 ㄴ자 형태를 만들어 가슴 아래 배에다 붙이고 손바닥을 쭉 펴서 삼각대 지지 모양을 만들었다. 그렇게 되면 굽힌 팔이 아기가 등을 대고 누울 수 있는 받침대가 되어 아기를 마주 볼 수 있게 된다. 아기의 두 다리가 남편의 가슴팍에 올라가므로 가스가 나와 배앓이가 편해진다는 원리다. 하지만 아기의 울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두어 시간을 내리 울어 젖혔다. 목소리가 쉴 정도로 너무나 간절히 울어대니 초보 엄마와 아빠의 마음은 점점 타들어 갔다. 옆에서 지켜보던 친정 엄마도 발을 동동 구르다가 당신도 겁이 났는지 병원에 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붙잡고 다급히 가방을 싸들고 남편과 집을 나섰다. 남편은 여전히 아기를 마주 안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에서 나와서 종종걸음으로 비탈길을 한 10미터쯤 내려갔을까. 부룩, 부룩, 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말하길, 신생아 윤의 방귀소리라고 했다. 점차 울음소리가 낮아지고 잦아들더니, 아기는 한결 편한 얼굴로 곤히 잠들었다. 초보 엄마 아빠의 쪽잠의 서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온몸을 바짝 긴장케 하는 공포의 배앓이 시간이 다가올 때면, 남편은 주저하지 않고 빛의 속도로 아기를 마주 안는 자세를 취한다. 맨 처음, 어찌할 바 몰라서 우왕좌왕하던 모습은 간 데 없이 경험에서 비롯된, 안정감과 여유를 장착한 아빠로 점차 성장하고 진화하는 한 인간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첫 육아의 길은 경험해 보지 않아서 미처 예상도 할 수 없이 직면하는 수많은 ‘처음’을 통해 아주 조금씩 나아져 간다. 쪽잠과 토끼눈이 되어 육체의 기운을 바닥까지 쏟아내어 고된 자아를 질질 끌고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첫 돌’이라는 영광스러운 시간이 도래한다. 그렇게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뒤 만난 두 번째 아기 꼬망은 아무래도 형을 길러 본 엄마 아빠의 육아 경험, 그 특수를 마음껏 누린다. 이제야 겨우 초보 딱지를 뗀 부모지만, 전보다는 확실히 좀 더 여유가 있어진 건 사실이다. 겪어봐서 아는 노하우 덕에 때론 기다릴 줄도 알고, 때론 서둘러 지름길로 가기도 한다. 아이도 자신이 서열상 둘째라는 걸 태어나기 전부터 아는 것인지 생존 전략을 구사한다. 형의 텃새를 이겨내고 존재감을 입증하기 위한 ‘애교’라는 무기 앞에서 부모는 한없이 너그러워지고 만다. 꼬망이 생후 10개월 무렵부터 새우깡을 달고 살고, 좋아하는 간식의 역사가 형인 윤보다 앞당겨 시작된 건 다른 이유는 없다. 단 하나의 이유를 대자면 둘째라서. 그게 전부다. 녀석에게 다섯 살 형아 손에 들린 그 모든 것이 결국 제게도 허용된다는 걸 약삭빠르게 알아차린 것이다. 같은 시기 윤의 간식은 후기 이유식을 먹는 중이었음에도 맛이 느껴지지 않는 쌀 과자나 말린 과일류가 전부였다. 약국에서 주는, 허울만 비타민일 뿐 당 함유량이 높은 캐릭터 비타민도 윤에게는 4분의 1조각만 허락했으니까. 자체 검열이 꽤나 심했던 엄마인 나도 둘째 꼬망은 말릴 수 없는 존재. 결국 지고 말았다. 첫돌이 지난 뒤 맛보는 무한대의 간식 세계. 말랑말랑 포도와 곰젤리의 식감은 그 어떤 식재료에서도 느낄 수 없는 새로운 경지였을 터. “쩬니 줘, 쩬니 쩬니.” 그렇게 해서 곰젤리를 찾는 아기 곰이 탄생하고 말았다. 비단 젤리뿐이었을까. 간식 욕망을 자제시킨 나의 영향 탓인지 윤은 초콜릿이나 단맛 나는 과자는 잘 안 먹지 않는데 비해서 꼬망의 간식 식탐은 생각보다 엄청나다. 형뿐 아니라 엄마와 아빠가 먹던 과자도 언젠가는 제 손에 들어갈, 결국은 탐닉하고 말 꼬망의 간식이었으니까.


그래도 재미있는 건 간식 세계에도 평행이론이 존재하는지 30년이라는 시간을 돌고 돌아 만난 과자는 그 이름만으로도 정겹다. 새우깡과 고래밥, 양파링과 포카칩, 고구마깡 그리고 죠리퐁. 함께 먹으면 꼬망이 좋아하는 ‘단짠단짠’의 매력을 전부 맛볼 수 있는 과자류의 스테디셀러. 손이 가요 손이 가, 10개월 차에 자꾸만 손이 가던 새우깡의 힘이 이리도 크다.



단 한 번, 네버랜드

소소하고 사사롭게
너의 말이 다가온 날들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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