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방백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아나 Mar 20. 2018

나는 새 것이 두려워

신발과 인간관계

얼마 전 자고 있는 사이 많은 눈이 내렸다. 밤사이 녹아내린 눈을 밟다가 오른발 뒤꿈치에 불쾌한 감각이 스며들었다. 신발 밑창이 닳아 양말이 젖었다. 닳아 없어진 밑창 너머로 낡은 깔창이 보였다.


"신발 사야겠네."


이후 신발을 구경하러 다니기도 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신발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깔창을 조금 더 두꺼운 것으로 바꿔 아직도 그 신발을 신고 있다. 다리가 아픈 탓에 코디나 기분이나 날씨에 맞춰 신발을 신는 일은 불가능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신을 수 있는 신발 자체가 몇 없었다.

 

그러나 현관을 나설 때마다 그동안 신었던 신발들이 난잡하게 늘어서서 한 번씩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고등학교 때 신었던 신발. 대학교 입학하고 신었던 신발. 휴학하고 신었던 신발. 운동할 때 신었던 신발.

지저분하게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신발들을 보며 지금 신는 내 신발도 결국 그중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 생각하며 일어섰다.


'이젠 신을 수도 없고 쓸모없는 신발들을 왜 버리지도 않고 내버려뒀을까.'


의식하고 모아둔 것도 아닌데 막상 버리려니 왠지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신었던 신발들을 잠시 만지는 것만으로도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다시 신으면 왠지 그때처럼 내 발에 착 맞을 것 같았다. 누구나 그렇듯 새 신발을 사면 새것의 냄새와 함께 당분간 내 발에 길들이기 위해 작은 상처 한 두 개쯤은 감수해야 한다.

 

다리가 아픈 내게 신발을 길들이는 시간은 고통이었다. 어릴 땐 그게 싫어서 새 신을 사면 잘 안 나가려고 했을 정도였다. 이제 그 정도로 큰 상처가 나지도 않고 그 정도로 아프지도 않지만 나는 여전히 새 신발을 사려할 때마다 고민에 빠진다.


내 발에 맞는 신발을 사야지 하는 생각보다는 지금의 이 편안한 신발을 정말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새삼스레 깨달았다. 난 어릴 때부터 늘 새로운 것을 두려워했다. 기억을 더듬어봐도 딱히 새로운 것에 대한 상처는 없었다. 나는 그냥 그동안 익숙해져 온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일이 싫었다.


편하고 익숙한 것을 포기하고 불편하고 낯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인간관계도 똑같았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나는 어리고 어리석다.


중학교 때는 새 학기 때마다 기도했다. 내가 아는 친구와 같은 반이 되기를. 그리고 한 명이라도 아는 친구가 있으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익숙하게 그 친구에게 다가가 웃어 보였다.  친한 사람들끼리만 반을 이뤄 3년 내내 함께 지낼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고등학교 때 실현되었다. 두 반 밖에 없는 과에 들어가 대부분의 친구들과 3년을 함께 보냈다. 심지어 담임선생님도 두 번이나 똑같은 분이셨다. 새로운 것이 좋다던가 지겹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편안히 느껴지는 그 안정감이 좋았다. 오늘과 다를 바 없는 내일이 온다는 것이 좋았다.


이렇게나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니 당연히 내 인간관계는 좁아터졌다. 손가락 하나당 한 명씩 하고도 서너 개쯤의 손가락이 남는다. 그래서 늘 두렵고 칼 위를 걷는 기분이 들곤 한다. 신발의 밑창이 닳아 양말이 젖어 어쩔 수 없이 새 신을 사듯 사람도 같을까.



위태롭던 관계가 제자리를 찾아가면 지금과 같은 순간이 영원하길 기도한다. 잠시의 위기는 그저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내게는 그 편이 더 편안하고 좋아서. 


이미 닳아 없어진 신발의 밑창을 새 깔창으로 바꿔 잠시 틀어막듯 나는 위태로운 관계를 유지하려 미친 듯이 발버둥 친다. 조금이라도 그 순간을 이어가고 싶어서 의미 없는 노력을 기울인다.


당신에게 나만은 특별한 존재이길 바라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간다. 그것이 대책 없는 어리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외면했다. 당연하게도 그쪽이 내게 더 익숙하고 편하니까. 


나는 여전히 새 것이 두렵다. 바꾸진 못하더라도 그저 남들만큼이라도 용기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게도 손에 꼭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새것을 잡을 수 있다. 지금의 나는 손에 쥔 것을 흘려보낼 수 있을까.


아주 잠시 상상한 것만으로도 나 자신이 무너져내리는 감정이 흘러들어온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감정이 밑창처럼 닳아 없어지는 것도 새 것을 길들이는 것도. 내게는 아직 버거우니까. 억지스러워도 지금을 이어갈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겠어. 그 편이 내게는 더 익숙하고 편하니까.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신발은 정말 조만간 바꿀 예정이다. 다만 늘 신던 브랜드의 것으로. 그 편이 더 내게 익숙하고 편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죽음에 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