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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나몽 Mar 11. 2016

다르게 흐르는 같은 시간

떠난 이는 언제나 아쉽다, 남는 이들보다.



휴.. 분노의 젤라또.

차비보다 비싼 아이스크림 하나 먹으려고 기어코 걸어서 시내 중턱까지 올라갔다.
이렇게 곳곳마다 의자도 있고 공원도 있는데
주변 신경 안 쓰고 동양 여자애 한 명 마음 편히 넋 놓고 앉아있을 곳은 없다.

오늘은 하루 종일 괜스레 서럽고 짜증 난다.


마음에 없는 위로 같은 거는 더 더 싫다.
긍정의 힘이고 뭐시고 다 싫다. 모든 것에 분노가 끓고 있지만

지나면 또 괜찮아지겠지 하고 달디 단 젤라또와 함께 또 한 번 삼킨다.



기분이 이렇다 보니 괜히 작년에 다녀온 한국에서의 서럽고 불편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2년 전 다녀왔던 한국을 그리워하며 손꼽아 방학을 기다렸고, 또다시 2년 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한국에 도착해서 느낀 처음과 마지막의 감정은 같았다.

먹먹함이나  섭섭함 뭐 그런 것들.


나는 떠났을 때의 스물다섯의 기억 그대로를 가지고 있는데

그들의 시간은 내가 없이도(물론 당연하다) 아주 잘 흘렀다.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멋있어지고 교양 있어졌지만 훨씬 차갑게 느껴졌다.

물론, 스무 살 초반 그대로의 친절을 기대한 것도 바랬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같이 흘려보낸 시간 속의 그들만의 세계, 그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들의 일상 속에는 내가 없는 게 당연했고, 나는 그 속에 잠깐 있는 이방인이었다.



그동안 외국 생활을 하며 얻은 것이라고는

외로움에 적응하는 방법과 그 공허함을 받아들이는 방법,

생존본능에 따라 본능적으로 배어버린 어설픈 프랑스어와 요리실력,

전국 각지에서 온 유학생들과 외국인, 그리고 정착인들과 마주하는 인간관계,

유학생들 사이에서의 필살의 우정이나,

타지 생활을 하는 모두가 모두를 의지하고 가깝게 지내다 보니 눈감을 수 없는 그들의 본모습,

그래서 받는 상처,

의지했던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익숙함,

그러다 보니 사람에게 쉽게 정을 주지 않게 되는 무관심 등등 수 없이 많다.

눈에 보이게 살도 많이 쪘다.


한국에서 지인들을 만나면

살이 포동포동 오른 나를 쳐다보는 특유의 눈빛들이 있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눈빛이던가,

심술인지 뭔지 모를 막말을 던지던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배를 잡고 웃는다던가(그리 웃긴 건지도 모르겠지만).


- 얘가 대체 어떻게 생활을 한 거야. 뒤룩뒤룩 살쪄서 -


따위의 눈빛. -

잠깐 말하자면 나 그렇게 뚱뚱하지 않다. 예전보다 많이 쪘지만 4자를 앞에 뒀던 사람이 5자 후반대를 찍고 있으니 예전보다 튼튼(?)해 보일 수밖에 없는 건 인정.


사실 유학생들의 체중 증가는 자기 관리가 부족해서 일수도 있지만

한국에서 요리를 해본 적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대체 현지의 재료를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해 먹어야 될지 몰라서 그냥 막 먹는다.


흔히들 말하는 악마의 잼이나 무거운 버터를 듬뿍 발라 바게트를 뜯어먹는 다던지,

시리얼로 삼시 세 끼를 찍으며 배부를 때까지 먹는다던지,

겨우 요리한 모든 음식에 치즈와 함께 온갖 소스를 뿌려먹는다던지,

드레싱이 넘치고 있는 샐러드를 한 바가지 만들기도 하고,

양 조절을 못해 사인용 스파게티를 한 번에 다 삶아 어쩔 줄 몰라한다던지,

너무 좁은 기숙사에 살아 스트레칭 한번 제대로 못해본다던지...

이런저런 사실적 핑계는 굉장히 많다.


아, 너무 멀리 왔구나. 본론으로 돌아가서.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은 누구라 할 거 없이 굉장히 반갑다.

정말이지 너무 반가워서 안 친했던 사람과도 인사를 하고 지나간다.

이 말인즉슨,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이 지나치게 눈에 띄게 된다는 거다.


   외국물 먹고 와서 그런가 뭔가 변했다. 사람이 밝아졌는데? 활발해졌는데?로 시작해서 점점

  외국물을 좀 오래 먹어서 그런가 왜 이렇게 튀게 행동해?

  현실에서 떨어져서 그런가 뭔가 철이 안 든 느낌이야  등등.

  이런 말들을 누군가 만날 때마다 들어야 했다.


그리고 난 뒤에는 내 유학생활 이야기를 물어본다.

얘기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힘든 이야기도 하게 되어있었다. 마냥 즐겁기만 한 생활은 아니니까.

힘들었던 이야기를 시작하는 동시에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하다.

누가 가라 했느냐, 네가 선택한 거 아니냐, 유학은 너 혼자가냐, 재냐는 듯 눈초리에 민망함이 얼굴을 덮기 일수였고, 나는 그들 대화에 공통점을 찾지 못해 그들의 그라운드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나는 이 불편함이 부담스러워서 많은 약속을 취소했다.


게 중에 가까운 사람들과 카페에 옹기종이 모여 있다 헤어졌을 때도,

오늘 이 만남에 스스로 눈치가 없었나 하는 언행이나 행동을 한 번씩 한 것 같아서 (그때그때 바로 알아차리긴 한다) 계속 불편했다.

한 번은 이 사람들과 잡담을 하던 중 저녁을 안 먹은 내가 야식 먹을까? 좀 더 있다가 들어가자. 어디 가자. 같은 말을 꺼낸 적이 있었다. 그렇게 말을 꺼냈다가 그중 한 명이 ' 나몽아 우리 이제 야식 안 먹어, 몸 관리 해. 우리  그때랑 달라. 많이 바뀌었어. 너도 관리 좀 해야지 이제 같이 늙어가는데' 라며 무안을 줬고, 난 민망함에 얼굴이 붉그락 거렸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내가 왕년에 말이야 하며 온갖 영웅담과 허세를 늘어놓으며 낄끼빠빠 모르는 눈치 없는 복학생이 된 느낌이었고, 그게 뭐라고 그날 밤 나는 너무너무 힘들었었다.


알고 있다 내 안에 멈춰있던 그 시절의 '내 사람'들은 그들만의 시간이 함께 흘렀고, 한 살 한 살 먹어가며 많이 성숙해졌다. 그리고 다 함께 그 시간들을 보내며 같이 변해왔고, 안타깝지만 그 시간 속에 나는 없었다. 그걸 너무 잘 알고 있고, 부정하고 싶지만 뼛속까지 이해가 되기에 그 섭섭함을 그냥 삼켜야 했다.


짧지 않게 지나가 버린 내가 없던 그들의 시간,

그리고 그들이 없던 나의 시간들이

각자의 추억 담아 빠르게 지나갔고,

나는 나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잘 보내왔다는 걸 잘 알기에 뭐라고 할 수 없었다.


매번 기대에 부풀어 한국에 가지만 늘 받는 느낌은 같다.

꺼이꺼이 목놓아 울고 싶고,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사람에게 상처받은 것처럼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먹먹함이 하루 종일 내 기분을 좌지우지했지만

그들을 이해해야 했기에 더 힘들었다.


갑자기 안은영 작가의 [여자공감]에서 읽었던 내용이 생각난다.







나로선 강과 산, 깨끗한 공기를 얻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곳이 국내이건 국외이건 내가 원하는 가치들을 위해 떠나와야 할 인간관계, 그리하여 결국 끊어지고 말 인연들이 아까웠다.
숨 막히는 일상에서 가끔씩 벗어나 실낱같은 여유를 얻어 이렇게 콧바람 쏘이는 것으로 만족하면 됐지, 싶었다.

사실은 내가 버려야 할 것들보다 내가 잊힐까 봐 두려웠다.
내 속마음의 두려움, 이게 팩트다. 떠나는 사람은 생생한 추억을 안고 떠나오지만, 떠나보낸 사람은 동시에 추억도 함께 흘려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내 "좋은 사람들"은 내가 훌쩍 떠나는 것을 한사코 반대할 거라는, 강력하다 믿고 싶으나 사실은 허약한 추정이 뇌리를 맴돌았다.  

대니의 한마디에 나는 다시 사람들 속에 내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어. 그들은, 혹은 그(녀)는 정말 나를 믿고 애착하고 있을까.
나는 혹시 '만인의 연인' 병이라는 과도한 자만에 빠져 있는 건 아닐까. 이러한 착각들이 내 삶을 잠식하고, 스스로 자유를 얽매고 있는 건 아닐까.

[여자공감 - 안은영]





만 프로 공감된다.

또다시 시간이 흘러 한국에 갈 땐 또 다른 시간이 흘러있을 거고, 또다시 나는 먹먹함에 잠식되어있겠지.

막상 이런 생각들, 이런 글들을 쓰고 나니 내가 좀 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소중한 내 사람들, 내가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을 때도, 숨이 다 죽어버린 축 쳐진 시금치 같을 때도 옆에 있어준 사람들이 그립긴 하다.


오늘은 글이 정말 안 써진다. 엉망진창이어서 마무리가 안된다.

더 센치해지기 전에 일단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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