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주의
나는 모바일앱 기획자다. 내가 다니는 회사들을 보통 IT회사라고 한다. 내가 IT회사에 입사한 이유는 바로 조직문화 때문이었다.
약 8년 전 워 라벨이라는 말이 있지도 않던 그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통 연봉이나 그 회사의 전망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나의 기준은 크게 달랐다. 내가 그 회사를 다니면서 내 삶이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야근이나 주말 근무, 군대식 조직문화가 없는 회사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도 워낙 취업이 어렵다 보니 한 군데도 합격을 못할 줄 알았는데 기적적으로 대학교 4학년 2학기 때 나는 3군데 회사에 동시에 합격했다.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 바로 그 3곳의 회사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그중에서 가장 조직문화가 좋을 것 같은 회사를 내 첫회사로 골랐다. 내가 포기한 회사보다 연봉이 천만 원이나 차이가 났지만 그것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연봉이 1억 원 차이가 났다면 흔들렸겠지만 천만 원 정도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 사실 한 3초 흔들렸다.
그렇게 입사한 회사는 역시 내가 기대했던 그대로였다. 내 친구들과 선배들로부터 들었던 그런 경직된 군대식 문화는 없었다. 회사의 대표가 앞에서 지나가도 가벼운 목례 정도만 했다. 회식에서 술을 강제로 권하지도 않았다. 회사 생활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팀 선배인 그녀는 내게 기획안 작성을 요청했다. 그로부터 1주일 뒤. 내가 보낸 기획안을 확인한 그녀는 나를 작은 회의실로 불렀다. 회의실에서 그녀가 말했다.
선미님 : 동휘 님.
나 : 네!
선미님 : 동휘 님 이거 생각이라는 걸 좀 하고 만든 거예요?
나 : (동공 지진)
선미님 : 아니 나는 이걸 보니까 생각을 하고 만든 것 같지가 않지? 왜 그렇게 느껴지지?
나 :...
선미님 : 아니 동휘 님이랑 입사동기 그 진웅님은 진짜 잘 하는데 동휘 님은 좀 별로네.
나 : (움찔)
선미님 : 동휘 님. 동휘 님은 내가 보니까 이 업계랑 좀 안 맞는 것 같아~
나 :...
선미님 : 이거 내가 피드백 줄테니까 내가 알려주는 그! 대!로! 고쳐서 다음 주에 개발자들한테 공유해요.
나 : 넵
그 사람 앞에서 내 기획서는 쓰레기가 되었고, 난 그 쓰레기를 정성껏 만든 생각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나는 진짜 재능이 없고 정말 이 업계랑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전문 가니까 그 사람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난 한 없이 작아지고 위축되었다.
나는 다시 그가 시킨 대로 내 기획서를 고쳤나 갔다.
며칠 뒤. 나는 우리 팀 1년 후배 지민과 기획안을 발표했다. 지민이 먼저 발표를 하고 뒤이어 내가 발표했다.
피피티 장표 앞부분에는 맨 처음 내가 생각했던 아이디어를 발표했다. 그리고 왜 그 처음 생각을 버리고 이런 최종안이 나왔는지 논리적으로 발표를 이어갔다. 당연히 그 논리는 내것은 아니었다. 9년 차 그녀가 시킨 대로였다.
모든 발표가 끝나자 개발자분 한 명이 말했다.
남자 개발자 1 : 근데 동휘 님... 나는 맨 처음 생각했다고 한 그 아이디어요. 난 그게 더 좋은데?
나 : 네?
남자 개발자 2 : 맞아. 나도. 나도 지금 최종안보다 처음 동휘 님이 발표한 게 더 좋아요,
남자 개발자 3: 그러게~ 왜 이렇게 바꾼 거예요? 처음 게 더 나아요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내 아이디어는 분명 쓰레기 취급받았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 날 쓰레기 취급했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동휘 님! 나도 맨 처음 아이디어가 더 좋은 것 같네. 그대로 진행해요~"
그녀의 놀라운 연기력이 빛을 냈다... 그리고... 다시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지민 님. 동휘 님처럼 발표 못해요? 얼마나 잘해 발표~ 동휘 님한테 좀 배워 발표 스킬을"
이건 또 뭔가 싶었다.
어쩜 그녀는 저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그리고 왜 또 저런 비수가 되는 말을 함부로 하는 걸까.
도대체 왜 그럴까...
# 이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으며 일부 내용은 개인보호를 위해 변경하였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깔아뭉개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 실력도 없으면서 말이죠 ㅠ
글보다 실감나고 재미있는 웹드라마도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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