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l Jun 19. 2017

경주를 멈추고 연주를 시작하다

숨막히는 추격보다 나의 템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등하교라는 말보다 출퇴근이 더 익숙한 말이 되어 버린 성인이 되어 보니, 교복 입은 학생들이 참으로 대단해 보인다. 하루 종일 같은 책상,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자세로 정면을 바라보며 칠판에 적힌 글자를 받아 적고, 선생님이 지시하는 대로 밑줄을 긋고 별표를 치고 빨간 펜으로 표식을 남기다 틈틈이 눈치껏 시계를 바라보며 남은 시간을 계산하는 시간을 매일 성실히 견디고 있다. 끝나고도 학원으로, 독서실로 향하니 어른들의 야근과 잔업, 특근과 자기계발의 숨 막히는 스케줄 못지않다. 유아를 벗어나면 유치원이든 학교든 출퇴근을 하는 삶이 시작되고, 아주 오랫동안 그와 같은 삶을 지속할 테니 출근이 싫은 어른이 ‘학생일 때가 좋다’는 생각을 하는 것 역시 어떤 측면에서는 모순적이다.


음악, 미술, 체육시간은 예외다. 학생들은 저들의 두 발로 걸어 교실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으로 가야 한다. 하루 종일 지겹도록 마시고 내쉬어 온 네모난 교실, 공기마저도 각진 듯 숨 막히는 공간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큰 전환이다. 칠판과 선생님과 교과서와 시계를 번갈아 보는 대신 도화지를 보고, 음표를 보고, 공의 움직임을 관찰하니 눈도 덜 지겹다. 손에는 펜 도종이도 아무것도 없어도 될 때가 있고, 붓이 들리기도 하며, 때로는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교과서를 넘기는 소리, 칠판에 분필이 부딪히는 소리, 혹은 깜빡 잠에 든 친구들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듣는 청자가 아니라 목소리를 높여 노래하고, 물통에 붓을 요란하게 씻어내며, 응원의 함성을 내지르는 화자가 된다. 문제의 정답을 찾기보다 어떻게 노래할지, 어떤 스케치를 할지, 어떻게 뛰고 구를지 제 답을 찾는 데 집중하는 시간이다. 어른 들이밀린 일거리를 들고 동네 인근의 카페를 찾아 새로운 인테리어, 내 것이 아닌 찻잔을 손에 쥐고 잔잔한 음악이 연출하는 공간에서 기분전환을 하듯, 일주일에 몇 안 되는 학창 시절의 예체능 시간은 이 또래 아이들에게 그나마 숨통을 여는 시간이다.


패턴 드로잉 워크숍, 어른도 아이도 그저 모두 제 답을 찾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나의 중학교 음악실 피아노 위에는 꽤 근사해 보이는 삼각뿔 형태의 나무 박스가 얹어져 있었다. 딱히 자주 쓰지는 않는 물건인지, 검정 피아노에 쌓인 먼지가 짙은 나무 박스 위에도 가벼이 올라타 있었다. 대대손손 내려오는 오래된 물건 같아 보이고, 작은 손잡이가 달려 있는 것을 보면 안 쪽에 작은 거울이 달린 보석함일 것도 같았다. 당시 음악 선생님이 미스코리아의 전형인 긴 머리 웨이브에 반짝이는 귀고리를 즐기는 화려한 취향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전혀 터무니없는 추측은 아니었다. 선생님이 그 문을 열어젖혀 내보여 준 어느 수업 시간, 드디어 그 비밀이 풀렸다. 시계추 같은 바늘이 왔다 갔다 하는 그것은 메트로놈이라는 기구였다.


추가 달린 온도계의 모습을 이 기구는 연주의 속도를 조절하여 연습할 수 있도록 고안된 기구다. 작동법은 꽤나 아날로그적인데, 원하는 숫자에 놓이도록 추를 조절하고 바늘의 첫 움직임을 위해 툭 건드려주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1분에 내가 추를 놓은 그 지점에 적힌 숫자만큼 바늘은 왔다 갔다 하며 규칙적이고 일정한 소리를 내고, 그 소리에 맞추어 연주의 빠르기를 조절한다. 1815년 독일의 멜첼이 특허를 획득한 방식으로 메트로놈이라는 단어는 ‘측정하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metron’에서 왔다. 즉, 이는 속도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빠르게’ 혹은 ‘느리게’처럼 주관적 해석이 가능한 표현을 ‘bps=80’과 같이 누구나 동일한 이해가 가능하게 표준화한 것이다.


혁신적인 이 도구는 모든 음악인에게 사랑받지는 못했다. 연습에 있어서는 모범적인 자세로 악보에 적힌 지시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소리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할지 모르나, 결과적으로 음악적 질을 높이는 것은 악보를 소리로 옮기는 테크닉이 아니라 곡을 해석하는 연출자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같은 곡이라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관객이 받는 느낌은 무척 달라지고 음악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그 느낌에서 비롯된다. 즉, 관객은 기술로서의 음악이 아닌 혼이 있는 예술로서의 연주를 기대하는 것이다. 누구나가 아니라 세상에 오직 그만이 연출할 수 있는 탁월함을 사랑한다.





달리는 사람들의 모임


잠시 한 곳에 정박했을 뿐, 모든 배는 서로 다른 루트를 향한다
다른 차, 다른 속도여도 나의 템포에는 맞다
누군가의 템포가 실린 수공예 부채를 천천히 휘저어 바람을 만든다.
여름, 더위에 지친 날은 잠시 정자에 머물러 땀을 식힌다.






마치 교복을 입은 학생 때처럼, 우리에게는 누구나 집단에 속해 있다. 좋은 성적이든 높은 인사고과든 그 집단의 주류가 되기를 욕망하며 졸업을 하고서도 여전히 벗지 못한 교복이 있다. 속한 집단이 요구하는 속도에 맞춰 앞서가려고 혹은 뒤처지지 않으려 뛰고 또 뛴다. 좀 더 빨리, 좀 더 멀리 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사람 살이가 누군가와 겨루는 경주일 수는 없다. 같은 직장에 다니고, 같은 직업을 가진, 같은 나이의 사람이라고 다 같은 코스를 돌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잠시 비슷한 모양의 트랙을 지날지언정 각자의 삶이라는 고유한 코스 위 유일한 선수다. 무조건 더 빨리 달리기 위해 경쟁할 필요가 없다. 비슷한 트랙이어도 누군가에게는 내리막일 길이 누군가에게는 오르막이 될 수도 있는데, 옆 사람 보고서 무심결에 따라 뛰었다가는 금세 지치기 십상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체력을 알고, 나의 코스를 파악하고, 현재의 지점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삶은 경주라기보다는 연주에 가깝다. 제 각각의 방식으로, 오직 그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연주다. 우리는 숨 막히는 추격전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어떻게 연주할지 적절한 템포를 찾는 중이다. 무조건 빠르기보다는 긴 연애를 하듯 적절한 밀당이 필요하다. 무엇이 적절한가 정답은 없다. 각자의 속도로 구성한 각자의 템포, 제 답만이 존재한다.






※ 삼청동 코지홈과 공동 기획하여 추구하는 가치를 담아 작지만 야문 매거진을 만들고 있습니다.

      코지홈 블로그 : blog.naver.com/cojeehome







YUL

일상이 모여 인생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중요한 가치는 일상에서 실천하고 싶습니다.

블로그 : blog.naver.com/yulscountry 
인스타그램 : @withtpot
이전 01화 현재 속도 0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