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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 Jul 03. 2017

남김없이 천천히 한 끼

참나물 페스토 파스타 샐러드



시작은 참나물이었다. 한약재 같기도 한 향, 어른들은 향긋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냄새가 난다고 표현할 부류의 초록 야채들을 나는 무척 좋아하는데 참나물도 그 한 종류다. 특히 삶거나 구운 돼지고기에 곁들이면 좋은데, 수육이나 한 번 해 먹을 심산으로 장바구니에 넣었다. 늦은 시간 찾은 마트 마감세일, 심지어 1+1이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고기를 먹은 주말이 지나 식사 약속이 며칠 이어지자, 냉장고에 남은 녀석들의 푸른빛이 조금씩 옅어질 기색을 비춘다. 엥겔 지수가 절대적으로 높은 1인 가구로서의 삶에서 얻은 지혜는 장은 조금씩, 자주 보아 멀쩡한 음식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간혹 욕심이 이렇게 과해져 1+1에 손을 뻗는 때는 고개를 축 늘어뜨린 야채의 시체를 건져내어 쓰레기통에 넣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 쉽다. 사뿐히 내려앉아야 할 야채들은 이 시기가 되면 온 몸에서 흘러나온 수분 때문에 철퍼덕 떨어지고 만다. 아, 더 늦기 전에 남은 한 봉지의 참나물을 처리해야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렇게 향이 강한 허브류를 그들의 좋은 치즈, 마늘, 올리브유, 견과류와 함께 섞어 만능 소스인 페스토를 만들어왔다. 페스토는 '부수다'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pestâ'에서 온 말이라는데 그 어원이 입증하듯 만드는 모든 과정이 부수는 것이다. 풀과 마늘, 견과류를 빻고 단단한 치즈를 갈아 넣고 올리브유를 들이부어 매우 격하게 섞는다. 기호에 맞게 소금으로 간하여 밀봉 후 보관하면 끝. 요즘엔 믹서기에 적당히 넣고 갈면 되니 집에서도 얼마든지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소스가 페스토다. 서양의 풀만 된다는 법도 없다. 향이 좋은 미나리, 깻잎, 시금치 등 우리 땅에서 자라는 풀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데 참나물도 여기에 해당한다. 남은 참나물을 좋은 일에 쓸 수 있는 찬스. 재료들이 서로 어우러지도록 하루 이틀 냉장 숙성하면 더 좋다. 냉장고 구석에 남아 있던 호두를 탈탈 털어 함께 넣고 믹서에 쌩 갈아두면, 남은 일주일이 든든하다.



 




며칠 뒤, 냉장고 정리를 시작한 김에 고기 먹고 남은 다른 쌈들과 지인에게서 건너온 방울토마토 한 봉지를 꺼내 놓고 처치해야 할 녀석들로 어떤 조합을 만들어볼까 궁리했다. 밥만 얼른 지어 비빔밥을 해 먹어도 좋고 고기를 한 근 또 사다 구워 먹어도 (언제나처럼) 좋을 것이다. 그러나 눈에 띈 것은 엊그제 만들어 둔 참나물 페스토다. 후텁지근한 날, 더 이상의 조리는 무리이니 찬물에 야채를 씻어 넣고 페스토만 두르면 된다. 풀만 먹기는 허기가 심하게 진 배를 위해 파스타를 후닥닥 삶아 곁들이기로 한다. 식당에서도 팔던 콜드 파스타가 오늘의 메뉴다.



 



하나, 먼저 씻은 야채를 댕강댕강 잘라 볼에 넣는다. 쭉쭉 찢어 넣어도 마치 제이미 올리버가 된 것 같은 내추럴함이 있겠지만 나는 늘 썰거나 자르는 편을 택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깔끔한 단면이 좋기 때문이다. 썰기의 연속, 물기를 빼 둔 방울토마토도 반으로 자른다. 기다란 아이는 길게 썰면 예쁘던데, 칼질이 서툰 내게는 아직 무리이므로 그저 편하게 썬다. 통째로 넣은 방울토마토는 잘못하면 먹다가 그 육즙이 입 밖으로 분사되는 경우가 있어 낭패니 써는 것에 의의를 둔다.







냉장고에 마침 몇 알 남지 않은 아몬드 봉지가 있기에 모조리 털어 넣어 본다. 비빔밥이나 샐러드나 내용물이 풍성하면 좋다.







셋, 삶아진 면을 넣는다. 콜드 파스타에는 나선형으로 꼬부라진 푸실리(Fusilli) 면이 적당하다. 새끼손가락만 한 길이라 포크로 콕콕 찍어 먹기 편하면서도 안에 구멍이 뻥 뚫려 소스를 가득 머금은 면에 비해서는 담백하다. 꼬여진 골 사이사이에 적당히 소스가 배어 들고, 냉장고에 조금 넣어 두었다 먹어도 너무 퍼지지 않아 식감이 적당하다. 우리 음식이나 서양 음식이나 면 요리하면 건조한 면 보다 생면이 부드럽지만, 오늘처럼 탱글탱글 단단해야 하는 샐러드에는 건면이 낫다. 색색이 더해진 푸실리는 보기에도 기분이 좋으니 합격이다.











넷, 슈퍼푸드라고 엄마가 보내주신 햄프 시드도 솔솔 고루고루 흩뿌려준다. 그리고 나의 비법소스 참나물 페스토를 적당히 퍼서 넣으면 끝...이어야 하는데, 치즈가 빠지면 왠지 아쉽다. 햄프 시드를 치즈처럼 쓰겠다는 나의 다짐은 점점 더 희미해진다. 무엇이든 적당량이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심리적 타협과 함께다.







이제 마구 섞고 상을 차릴 차례. 이대로 퍼먹어도 좋지만, 편평한 그릇에 조금씩 덜어 먹으면 보울 안에 숨었던 야채들을 하나하나 관찰하며 먹을 수 있다. 건강한 음식은 눈으로도 함께 먹어야 더욱 즐겁다. 오늘의 작은 실천, 인공첨가물 0, 내가 만든 음식, 제철 재료 활용, 알뜰살뜰 살림꾼... 각종 키워드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냉장고 안 갖은 재료, 남김없이 천천히 한 끼. 참나물 페스토 파스타 샐러드










※ 삼청동 코지홈과 공동 기획하여 추구하는 가치를 담아 작지만 야문 매거진을 만들고 있습니다.

     코지홈 블로그 blog.naver.com/cojeehome










YUL

일상이 모여 인생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중요한 가치는 일상에서 실천하고 싶습니다.

블로그 : blog.naver.com/yulscountry 
인스타그램 : @withtp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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