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은행, 나만의 국가는 어떤 모습일까요?
1. 좋아! 근데 인터넷이 뭐야?
1994년, 월스트리트의 잘 나가는 헤지펀드 매니저였던 제프 베조스가 갑자기 창업병에 걸렸다. 그가 회사를 때려치우고 인터넷 사업을 하겠다고 가족들에게 얘기하자 그들은 "좋아! 근데 인터넷이 뭐야?" 라며 화답했다고 한다.
아마존이 이름을 Amazon으로 지은 이유에 대한 여러 설화가 있다. 그중 하나는 '인터넷 검색 결과가 알파벳 순서대로여서' A로 시작하는 이름을 골랐다는 썰이다. 아마존이 굳이 <책>을 사고팔기로 한 것도 당시에는 인터넷에서 뭔가를 거래한다는 게 사람들을 아리송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웹사이트에서 본 물건이 멀쩡하게 내 집 문 앞에 도착한다고? 그 미션 임파서블에 책이 가장 적절해서 골랐다는 말도 있다. 깨지지도 않고, 상하지도 않고, ISBN만 같으면 되니까!
2.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다
1993년, 마크 안데르센은 괴짜 개발자들만 접속할 수 있었던 인터넷을 머글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 모자이크라는 브라우저를 만든다. 그리고 그 바로 다음 해 넷스케이프라는 최초의 상용화된 브라우저를 만들어, 바야흐로 인터넷 시대를 열어젖힌다.
2011년, 그는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다(Why Software Is Eating the World)'는 유명한 글을 쓴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마치 아홉 살 인생처럼, 이미 인터넷과 소프트웨어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는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눈앞에서 온 세상이 집어삼켜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난세를 보스몬들은 꿋꿋하게 살아남았다. 돈과 권력.
다들 인터넷 결제 하지 않느냐고? 결제 내역에 대한 합의 (settlement)는 여전히 은행 안에서 이뤄진다. 오후 4시에 은행들이 문 걸어 잠그고 바로 그 합의를 시작한다. 인터넷은 그 합의가 이뤄지기 전후의 상태를 화면에 보여줄 뿐 (interface)이다.
심지어 권력, 특히 국가 권력은 여전히 종이 상에서 이뤄진다. 마지막으로 은행에 갔던 때는 까마득하지만 주민 센터는 얼마 전에도 다녀왔다. 지난주부터 인감 증명서를 온라인에서 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110년 만에!
3. 인터넷의 원죄 (The Internet's Original Sin)
2014년, 디지털 행동주의(digital activism)와 공공 정책, 커뮤니케이션 교수님인 이튼 주커먼은 '광고로 돈 벌어먹고 사는 게 인터넷의 원죄'라는 글을 썼다. 온라인 플랫폼들이 광고 수익을 올리기 위해 사람들을 감시하고 사적인 데이터를 긁어모으고 있다고 비판했다. 알고보면 그는 1994년에 닷컴 기업 1세대인 Tripod.com를 창업자다. 그 때 의도치 않게(?) 팝업 광고라는 걸 발명했다고 한다.
2019년, 8년 전 소프트웨어의 식탐에 대해 얘기하던 마크 안데르센은 '블록체인이 인터넷의 원죄를 사해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인터넷이 사람들의 눈에다 도파민을 쏘아대는 광고판이 된 건 애초에 인터넷에 내재된 결제 시스템 (native payment system) 이 없었기 때문에, 온라인상에서 가치를 전송하는 방법이 없어서, '조회수 따져서 광고료 받기'만 가능했기 때문인데, 이제! 드디어! 블록체인이라는 인터넷 특화 가치 전송 시스템이 나왔다는 것이다.
4. 넥스트 구글
차세대 구글은 누구인가? 어느 회사냐!를 맞추는 것보다는 어느 산업이냐!를 맞추는 게 쉽다. 넥스트 구글은 어디서 나올 것인가? 답은 정해져 있다. AI와 블록체인. 판돈이 어디에 걸려있는지를 보면 된다. 주식 시장, 혹은 전문 '꾼' 들인 모험 자본 (Venture Capital) 들이 어디로 쏠리는가. AI 아니면 블록체인이다.
그 둘은 모두 인터넷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던 것들이다. 인터넷의 확장판(크롬 브라우저 익스텐션)으로, 그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것 들을 탁 손가락 한 번 튕기는 걸 통해 가능하게 해 준다.
5.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에 만들어진 구닥다리 시스템들은 인터넷 시대에 멸종할 것이다
2024년 9월, 테크 세상을 주름잡는 연쇄창업가이자 투자자인 발라지 스리니바산은 네트워크 스테이트라는 이름부터 기상천외한 컨퍼런스를 주최한다. 싱가포르 옆의 한 섬을 빌려 3개월짜리 네트워크 스쿨을 만든다. 그는 '왜 투표나 입법은 종이로 하냐'며, 인터넷 네이티브 거버넌스, 정부를 통째로 온라인에 올려버리자는 얘기를 한다.
6. 민족 국가 모델은 끝났다
2021년, 발라지의 트윗을 보고 삘받은 어떤 한량이 있었다. ㅇㅇ저요 '우리가 국가를 만들어 보자'며 한껏 폼을 잡고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한 스타트업에 입사했다. 출사표까지 적었다.
민족 국가 모델은 끝났다
는 생각이 나의 시작점이었습니다. 랜덤한 장소에서 태어나 그 나라 사람이 되고, '새로운 정치'를 외치는 오래된 정치인에 투표하고, 세금 내라니 내고 돌려준다니 환급받고, 저 말도 안되는 법안은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건지 내가 왜 따라야 하는지, 이런 것들은 나부터가 싫었고 별로 지속 가능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국가'라는 걸 내가 선택할 수만 있다면, 새롭게 등장한 국가 비스무꾸리 한 하룻강아지들에 밀려 한국 중국 미국 모든 기성 국가들은 100전 100패 할 것 같았습니다. '소속감'이라는 건 더 이상 민족 국가(nation state)가 주기엔 뭐랄까... 말랑말랑하고 변화무쌍하고 재밌는 게 제일 중요하고 그런 것으로 바뀌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7. 국가 vs 개인, 내가 내 국가를 취사선택할 수 있다면?
딱 2년 전 이맘때쯤 떨리는 마음으로 태국 치앙마이로 떠났다. 두려움이 앞섰던 첫 노마딩 도시였다. 노마드들을 위한 도시라고 해서 갔던 곳인데, 역시나 태국 사람보다 백인들이 많은 도시였다. 그곳에서 만난 노마드들에겐 '웨얼 알유 푸롬?' 이라는 질문이 통하지 않았다. 교과서 다시쓰자 한 노마드는 시민권(citizenship)은 호주, 거주권(residency)은 멕시코, 혈통(?)은 또 그 두 나라와는 상관이 없어 보였으며 정작 나를 만난 곳이자 자신의 현 보금자리는 태국이었다. 그녀는 노마드 커플이었는데, 그녀의 파트너는 또 자기만의 국적 층위(?) 가 있었다. 모든 것이 K 정부로 일원화되어 있는 나와 달리 하나의 국체(state)에 모든 계란을 담고 있지 않았다.
우리가 정치인 자녀의 이중 국적에 언짢아하는 건 사실 부러워서가 아닐까? 나도 그런 선택권을 갖고 싶어!
8. 계좌 이체 말고 스트리밍 해주세요
우리가 월급을 월급으로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급여 업무가 귀찮기 때문이다. 그런데 돈이 소프트웨어가 되면 돈을 이체하는 한계 비용(marginal cost)이 0이 된다. 온라인 화폐는 스트리밍이 된다! 그러면 월급도 주급도 일급도 아닌, 말 그대로 '실시간으로 통장에 꽂히는' 무언가, 아직 단어도 없지만 마치 데이터 전송의 대역폭(bandwidth)을 따지듯 돈의 유량(流量)으로 나의 재력을 과시할 수 있다.
돈을 소프트웨어로 만드는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투표에 적용할수도 있다. 천 원이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갔다는 걸 증명할 수 있으면, 이 사람이 저 사람에게 1표를 던졌다는 것 도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 그러면 대선을 4년에 한 번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치를 수 있다.
9. 유튜브가 나만의 방송국이라면?
2024년, 오늘날 세상에는 6,400만 명의 유튜버들이 있다. 이들은 마치 개인 방송국을 가진 것처럼,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방송을 만들어 세상에 뿌리고 있다. 무소불위의 지상파 3사는 2011년 '종편'이 처음 등장할 때까지만 해도 'ㅉㅉ 떼잉 전문성 없는 것들 전파 낭비나 하고 있네' 싶었을 것이다. 하물며 초창기 유튜브는 얼마나 하찮았을까.
2005년, 유튜브 공동창업자 자웨드 카림은 '동물원 다녀옴ㅇㅇ(Me at the Zoo)'라는, 재미도 감동도 없는 19초짜리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다. 이게 유튜브 최초의 영상이다. 전 세계 방송국들이 이를 얼마나 하찮게 봤을까? 당시만 해도 '누구나 방송국이 될 수 있다'라는 말을 믿지 않았을, 믿는다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10. 나만의 은행, 나만의 국가는 어떤 모습일까?
웹3 세상의 아이돌 크리스 딕슨은 블록체인을 '온라인상에서 돈과 권력을 분배하는 기술'이라고 설명한다. 인터넷은 우리 모두에게 방송국을 하나씩 차려주었다. 블록체인이라는 확장판을 얹은 인터넷은 우리에게 은행과 국가를 하나씩 차려줄 수 있다. 이게 무슨 말일까? 우리 같이 실험해 보자.
좋아! 근데 블록체인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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